"교체가 갖는 의미보다 '무엇이 어떻게 바뀌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바뀌어야 할 부분은 반노동자적 정책이다."

지난 9일. 전북대학교가 개교 50주년을 맞아 개최하고 있는 '정치 지도자 및 대선 후보 초청 강연회'에서 첫 강연자로 나선 '국민 승리 21' 권영길 후보(민주노총위원장)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노동자를 위한 사회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권영길 후보는 이날 강연회에서 다른 후보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대통령 5대 기본조건'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권후보가 올 대선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진보세력의 정치세력화이고 이러한 정치세력화를 이룰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다른 후보와의 차별화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번 강연은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내세우고 있는 '대통령 5대 기본조건'을 살펴보면 권후보는 무엇보다 '통합력'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21세기 통일 시대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 대통령에게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은 남과 북을 하나로 이어줄 수 있는 통합력"이라고 주장하며 그는 무력에 기초한 통일의 대표적인 경우인 예멘과 흡수통일의 전형적인 경우인 독일의 예를 들면서 통합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하고 있다.

두 경우 모두 통합력의 부재가 사회혼란을 야기하고 있음에 주목하면서, 우리 사회가 안정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요구되는 필수조건인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선 통합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이러한 남북 대통합 이외에도 우리 사회가 경제 대통합과 지역 대통합을 요구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 중 지역 대통합과 관련, 그 해결점을 '진보'에서 찾고 있는 부분은 다른 후보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부분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권후보는 진보가 곧 평등을 의미한다고 전제한 뒤 "평등은 차별을 없애지는 것이므로 결국 우리 사회의 지역간 차별을 없앨 수 있는 세력은 바로 진보세력인 우리뿐이다"라고 주장함으로써 다른 후보들과의 차별화에 일조했다.

경제 대통합과 관련해서는 정경유착을 근절시키고, 경제민주화를 이룩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자금은 여야당 할 것 없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없앨 수 있는 사람은 5명의 후보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바로 그들이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라며 자신만이 경제대통합을 이룩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임을 내세웠다.

이밖에 그는 민주화 기여정도를 판가름하는 '도덕성', 보수물결이 아닌 자유로움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창조력', 현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 그리고 '인간성'을 다섯 가지 기본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인간성과 관련해서도 "평등을 위한 정책, 제도, 정치가 무엇인가를 심사숙고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인간성 회복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면서 이 또한 보수세력이 아닌 진보세력만이 할 수 있는 것임을 강조했다.

강연에 이은 질의응답 시간에는 국민회의와의 연합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관심을 모았는데 국민회의와 연합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는 것이 권후보의 강력한 입장이다. 권후보는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나 자신이 정권교체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또 갈망해 온 사람이라면서 "정권획득을 위해 누구와 손잡는 식의 정권교체라면 누가 이를 진정한 의미의 정권교체라 말할 것이며, 누가 구시대 낡은 정치를 청산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말해 다른 정당과의 연합가능성을 전면 부인한 바 있다.

92년 대선 당시 전국연합은 김대중 후보와 정책연합을 한 바 있고 현재는 한국노총이 국민회의와 정책연합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의 연합가능성을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이 김대중 후보가 92년 대선 패인을 분석하면서 '당시 전국연합과 정책연합 한 것이 실수였다'고 공식석상에서 여러번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낮은 가능성 속에서 한국노총이 국민회의와 정책연합을 한다해도 권후보는 "진보정치, 진보연합은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못박음으로써 국민회의와 연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편, TV 토론회에서 권후보가 제외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거부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다른 방법을 통해 새로운 길을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다른 후보들을 정경유착, 부패정치, 지역패권 정치를 뿌리내리게 한 보수정치인이라 비판하며 기존 정치세력들에 비해 비교적 때가 덜 묻었음을 강조함으로써 다른 후보와의 차별화를 최대한 꾀하겠다는 권후보의 전략을 그대로 보여준 이날 강연회에는 노동자, 학생을 비롯 2백여명이 참석해 큰 호응을 얻었다. 오는 15일에는 조순 민주당 총재 그리고 28일에는 이인제 후보의 초청 강연이 있을 예정이다.

<김수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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