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운동장 특설무대에서 오후 5시 반부터 '97 의혈사랑 축전 개막행사와 북한동포돕기 문화제가 열릴 예정입니다. 많은 참여바랍니다"

어제의 거리 선전전에 이어 오늘도 오후 3시가 안된 시각부터 학생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주최측의 홍보는 끊이지 않는다. 한편에서는 완벽한 무대장치를 위해 애쓰는 자봉단들의 손놀림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시간은 5시를 서서히 넘어가고 있고 관중석은 여느 때처럼 썰렁하기만 하다. 바람이 부는 가운데에도 총학생회장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무대장치에 올라가 청룡이 역동하는 듯한 대형 걸개그림을 무대에 거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가수 박학기와 그룹사운드 시나위가 공연을 합니다.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이와 같은 선전이 나가지 주위에는 이들의 팬인 듯한 학생들이 "우리 박학기랑 시나위만 보고 가자"라며 옆의 학생을 이끈다.

우여곡절 끝에 '97 의혈사랑 축전 개막제와 북한동포돕기 문화제가 예정시간을 넘겨 개막되었다. 추수감사제를 지내고 개막제에 이어 북한동포돕기 문화제가 시작되자 제법 많은 수의 학생들이 관중석을 메웠다.

이윽고 문화제가 시작되고 초대가수의 공연이 이어졌다.

"와! 와! 오빠"

장내는 순식간에 열광했고 관중은 점점 늘어나 약 2백여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자봉단도 힘이 솟는 듯 여기저기서 모금함을 들고 모금운동을 벌이기 바쁘다.

"조그만 정성이라도 좀 도와주세요. 동포들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그러나 행사가 진행되어도 여전히 밑 부분을 보일 뿐 성금은 쌓이지 않는다. 이제는 자봉단도 제풀에 겨운 듯 모금함을 한구석에 쌓아 놓고 잠시 쉬고 있다.

드디어 시나위의 순서가 오자 관중석에서 얌전히 관망하던 관중들이 순식간에 무대 앞을 장악했다. 시나위의 음악을 크게 따라 부르고 그에 따라 몸짓도 천태만상이다. 앙코르곡까지 부르고 물러난 시나위. 그러나 그와 함께 약속이나 한 듯 그 많던 관중들이 무엇에 쫓기듯이 관중석에 앉지도 않고 그대로 통로를 따라 빠져나가고 있다. 폭풍 뒤의 고요함이랄까 사회자의 소리도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관중들에 묻혀버린 듯 하다. 남은 것은 약 40여명의 관중과 여전히 밑을 보이고 있는 모금함. 그리고 모금함 제작비만 겨우 모인 것 같다는 주최측의 푸념.

인기 연예인의 공연 한번에 의해 그 의미마저 퇴색돼버린 듯한 북한동포돕기 문화제. 물질적인 도움은 고사하고라도 인기 연예인에 의해 마음으로부터의 관심마저 외면당한 듯한 이번 북한동포돕기 문화제를 보고 점점 통일이 멀어져감을 느낀다.

<정기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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