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북풍'조작 사건 조사가 계속 진행됨에 따라 안기부가 `국가안보'란
이름으로 자행한 수많은 조작사건들에 대해서도 재수사 요구가 일고 있다.
이로써 선거시기의 북풍공작뿐 아니라 민주화 열기가 높았던 80년대와 90년
대초반까지 공안정국을 조장해 국면전환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온 안기부의 역
할들 역시 도마위에 오르게 되었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필적감정사 김형
영씨가 뇌물수수허위감정 혐의로 구속되면서 다시 제기된 91년 강기훈 유서
대필사건 재수사 요구를 필두로 89년 중앙대 안성캠퍼스 이내창 총학생회장
의 의문사 및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각종의 공안사건들에 대한
전면 재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89년 당시 전국의 학생들을 비롯해 사회전반을 흥분시켰던 이내창 총학생회장
의 죽음은 공안조작이라는 명백한 혐의아래 단순 실족사로 검찰의 수사는 종결
되었다.이내창열사의 시신은 89년 8월15일 전남 거문도 앞바다에서 발견되었
다. 곧바로 진상규명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위원장:서원, 당시 예술대 사
진학과.4)가 꾸려지고 중앙대 조사단과 당시 한겨레신문기자들의 조사가 진
행됐다. 조사과정에서 이군의 죽음은 부검결과에서 나타난 타살흔적, 당시의
공안정국 조성분위기, 안기부 여직원과 동행한 사실 등 공안타살의 의혹이
점차 짙어져 갔다.사건 해결의 중요한 열쇠였던 안기부 여직원과의 동행 사
실은 당시 거문도 한 다방의 여종업원을 비롯해 이씨의 시신이 발견된 곳을
왕복운행하는 배편의 선장 등 목격자의 증언을 통해 확인됐으나 이후 검찰의
조사과정에서 이같은 증언이 전면 부인됨에 따라 단순 `실족사'로 수사가 마
무리된 것이다.

진상규명 공동대책위를 비롯해 사회일각에서는 이총학생회장의 죽음을 두고
`공안타살'이란 결론을 내리고 명확한 진상규명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결국 의
문의 여지만을 남겨놓았다. 이후 이군과 동행한 혐의를 받았던 당시 안기부 여
직원이 한겨레 신문기자 이공순씨(37)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고소
하기도 했으나 이는 지난 96년 대법원 판결에서 무죄선고로 끝을 맺었다.92년
중앙대 동문들을 중심으로 발족해 소식지 `어깨동무'를 발간하는 등 지속적으
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내창열사 추모사업회 장건상 사무국장은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의 안기부는 어떤 권력도 침해할 수 없는 성역이었기 때문이다.
장사무국장은 "현시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향은 지금까지 안기
부에 의해 희생되고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들과 연대해 투쟁하는 길밖에 없
다. 최상의 효과가 주어진다고 해도 책임자 처벌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
다.아직 사업회는 새롭게 부각된 이내창 의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잡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철저하게 가려져 왔던 안기부에 대한 모든
의혹들을 하루빨리 밝혀내야 한다는 의견에는 공감했다.이제 안기부의 그 철
옹성같은 성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북풍' 관련한 안기부의 전 고위간부가
대거구속되는 등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나 여기서 마무리 지어질 수는 없다.
지금의 새대통령이 누구보다 안기부의 피해자였다면 이총학생회장의 의문사
를 비롯해 아직도 미해결된 많은 사건들에 대한 명확한 재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책임자의 법적 처벌, 피해자의 명예회복
도 아울러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전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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