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인권을 찾는 길은 아직도 요원한가. 심의 거부로 난항을 거듭한 제2회 인권영화제가 지난 9월 27일 개막해서 8일간의 역정 끝에 10월 4일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영화제 주최측인 인권운동사랑방(대표:서준식)은 당초 예정했던 기독교연합회관을 포기한 채 홍익대학교에서 행사를 강행했으며, 시작한지 4일만인 지난 9월 30일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발부로 시련을 겪었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은 이번 인권 영화제는 모두 24편의 작품을 상영할 계획이었다. 6월항쟁중 명동성당 농성투쟁을 담은 '명성, 그 6일의 기록', 대만의 정치테러 시대인 1950년대에 질곡의 삶을 살아가는 지식인을 그린 '호남호녀', 일본인 반전 운동가의 시각으로 태평양 전쟁을 파헤친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 등 소문만 무성했으나 실체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명작들이 상영리스트를 가득 메우고 있다.

세다가 지난 3월 제2회 서울다큐멘터리영상제에서 심의문제로 상영이 취소됐던 두 작품인 제주 4·3항쟁을 다룬 '레드 헌트'와 중국 천안문 사태를 기록한 '태평천국의 문'이 복권되었다. 뿐만 아니라 제작기간 11년, 상영시간이 9시간 30분에 이르는 클로드 란쯔만 감독의 '쇼아(Shoah:프랑스에서 사용되는 히브리어로 '지구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가장 큰 재앙'을 뜻한다)'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증언하고 있는데, 이 초대작 다큐멘터리의 선정사실과 그 용기만으로도 인권영화제는 소기의 성과를 이미 확보했다는 평을 들은 바 있다.

그러나 이같은 각종 찬사에도 불구하고 인권 영화제 개최에 따른 난항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영화제는 당초 동국대학교 연극영상부와 공동주관으로 동국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개막 한달전에 대학본부로부터 상여불가 통보를 받았다. 이어서 기독교연합회관과 홍익대를 상영장으로 낙점했으나 기독교 연합회관이 외부압력을 이유로 대관거절 입장을 전해왔고, 홍익대 마더 난색을 표명하면서 시설물 보호요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30일 새벽 1시30분께 영장발부 즉시 학내 수사를 강행한 경찰 측은 "이번 영화제는 사전심의와 공연신고를 하지 않은 불법행사인데다 학교에서 29일 집행위원장 서씨를 고소하고 시설물 보호요청을 해와 압수수색이 불가피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영화제 공동주관인 홍익대 학생회와 준비위원회는 크게 반발을 하고 나섰다. 홍익대 학생회 한 간부는 영화제 준비과정에서 있었던 안기부, 문체부, 교육부 등의 외압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토로하며 "압수수색 과정에서 한총련 관계자만 16명이 검거되었다. 영화제를 빌미로 한 학생운동 탄압의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라고 말했다. 경찰의 불법검문과 강제 물리력 행사에 대한 규탄집회가 계속되는 가운데, 인권영화제 준비위원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치르겠다"는 태도를 고수하면서 홍익대 내에서 상여장소와 일정을 여러번 수정한 끝에 영화제를 마쳤다.

지난 여름 만화계와 영화계를 덮친 공안바람의 한기가 아직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인권영화제가 겪은 난항은 현존하는 심의제도와 공연법에 대한 회의를 다시금 야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인디포럼 97'과 '퀴어 영화제'가 '영화·대중음악 등에 대한 사전심의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당국과의 마찰 끝에 무산된 바 있어, 인권영화제 개최를 성공이냐 실패냐로 보는 시각에 따라 사전심의 관련 논란이 다시 한 번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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