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배타적 블록권을 형성하면서 한ㆍ중ㆍ일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연대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구의 근대성이 실패하고 동양사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동아블럭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섣부른 낙관보다 여러 변수를 고려한 신중론이 득세하고 있는 가운데, 동아시아 담론의 흐름을 점검해 본다. <편집자 주>

제10회 국제중국철학회 서울대회가 '동아시아 철학의 현대적 의의'를 주제로 지난 6월 22일부터 25일까지 열렸다. 서구국가를 비롯 15개국 1천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룬 이변 대회는 몰락해 가는 서구문명의 대안으로서 동양적인 것에 대한 관심의 정도를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우리 학계도 여기에 예외는 아니어서 '시대로부터의 탈출'만이 우리 학계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 인양 동양적이라는 말을 여기저기에 도입하고 있다. 불론 동양적인 것이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닌 이상 그 말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은 분명 존재하고 있으며 상당수 사람들은 그 기반을 한자와 유교라는 문화적이 공통성 속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동아시아를 얘기하고 동아시아적 가능성을 모색할 때 한자와 유교라는 공통분모를 당연시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 공통분모의 견고함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여지를 미리 차단해 버리는 결과를 낳게 하였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그 공통분모는 빈약하게 짝이 없다. 물론 한중일 만큼 문화적 공통성이 많은 지역도 드물겠지만 동아시아 연대의 가능성을 보장해 줄만큼 그 기반이 튼튼하다고는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아직까지도 한일 간에는 연대의식보다는 대립감정이 많이 남아 있는 상태고 이러한 대립감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양국은 자국의 실리만을 앞세우며 그 연대 가능성을 어렵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결국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지난 2월22일 학술단체 협의회(공동대표: 박진도,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와 일본의 학단협 격인 포럼 나인티즈 공동주체로 열린 '동아시아 평화ㆍ자립ㆍ연대를 위하여'가 갖는 의의는 클 수밖에 없다. '인권과 여성','정치' 등 양국간 비교분석이 가능한 지점들을 의의에 대해 학단협 김혜린 간사는 "동아시아 냉전 종식을 위해 한일 시민사회에 요구되는 노력이 무엇인지를 모색하는 자리였다"고 평하고 있다.

일본과의 대립감정도 문제지만 근대 이후 거의 단절된 상태로 지내 온 중국의 경우도 3국간의 학술교류를 막고 있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중국과는 학술교류를 위한 그 어떤 밑그림도 제시해 줄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의 경우 그 동안의 자료수집을 통해 미비하게나마 중국을 파악하고 있다고는 하나 북한과의 교섭만을 해 온 중국이 우리에 대해 아는 것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학술교류를 더욱더 어렵게 만들어 가는 요인을 중국인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중화주의다. 정재서 교수(이화여대 중문과)는 "중국의 겨우, 근대 이후 우리와 단절된 상태였기 때문에 중국은 우리를 아직도 자국의 속국 특히 문화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국가로 간주하고 있다"며,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중화주의가 학술교류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은 패권의식에 젖은 위험한 파트너에 불과하다"는 한경구 교수(강원대 인류학과)의 지적이 지나치게 부정적인 평가가 아님을 말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중화주의와 더불어 학문교류를 방해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양국간 학술행사가 심도 있게 진행되지 못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교류의 폭에 있어선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내용적 깊이가 이를 뒷받쳐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언론사나 대학교 주최의 대규모 학술 행사가 아닌 연구소 단위 소규모 학술행사의 경우, 대부분이 심도 깊은 학술논의 보다는 친교나 관광위주로 흐르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동아시아 논의들이 활발해 지면서 유교문화와 한자문화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한중일 3국은 상호간에 연대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으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 공통분모라는 것조차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동아시아 학술교류를 위해서는 국가 간에 교환교수, 초빙교수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를 가지고 공동연구 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전체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특정 국가 위주의 통합을 얘기하는 것이 아님을 유의해야 한다. 특정 국가를 논의의 중심에 놓는 것은 또 다른 제국주의적 발상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학술교류와 관련해서 출판분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최근 민음사의 경우 근대성 담론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을 시작으로 일본 지성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음사는 '오늘의 현대지성' 시리즈 가라타니의 저서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을 펴낸 데 이어 철학자인 이마무라 시토시 그리고 매스이미지론으로 절리 알려진 요시무토 유메이 등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인들의 저서를 지속적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진정한 동아시아 시대가 가능하기 위해선 상대방 분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연대감을 형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분야에서의 노력이 요구되겠지만 무엇보다 지식인들의 학술적인 교류와 이를 진지한 고민들이 뒤따를 때 진정한 연대의 길로 한걸음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김수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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