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네스 한젠:얼마전 저는 어느 미국신문 일면기사를 읽었습니다. "타이타
닉-선장 슈미트-구명보트를 탄채 바다위를 표류하던 그가 뉴펀들랜드 해안
동쪽에서 발견되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노르웨이의 배인 `포스하겐'이 그
를 발견하여 정신치료를 위해 오슬로로 데려갔다고 합니다. 허무맹랑한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요?

엔첸스베르거:사람들은 자신을 직접 위협하지 않는 재앙에 대해서는 흥미를
느낍니다. `타이타닉'에 반영된 노스탤지어를 도외시하고 생각해본다면, 재앙
이라는 것은 진정시키고 흥분시킨다는 두가지 측면에서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교통사고 재앙의장소를 천천히 지나가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며, 그 다음에 그들은 그 사고가 그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
합니다.

포스네스 한젠:그 당시의 사람들은 배의 침몰을 경고의 조짐으로 느꼈을까요?

엔첸스베르거:나는 그 배의 침몰이 당시의 사람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쳤으
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더욱이 텔레비젼, 라디오 등의 대중매체를 통한 자
극이 없었다는 것이 큰 이 유가 될 것입니다.

포스네스 한젠:그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습니다. 침몰사진
이 단 한 장도 없지만, 우리는 오늘날 침몰하는 괴물의 명백한 모습을 떠올
릴 수 있습니다. 고요하고 별이 뜬 맑은 밤, 검은 선체, 빛이 나는 배의 둥
근 창들, 모든 것들이 심연 속으로 향해 가고 있었죠. 그와는 달리 누가 우
주선 `챌린저'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엔첸스베르거:또한 걸프전쟁에 대해서도! 어쨌든 우리는 최근의 전쟁까
지도 거의 잊어버렸지 않습니까. 이모든 대형 사건들의 기술적인 완벽한 재
현은 우리들의 환상과 상상을 통한 공감의 능력을 파괴합니다. `챌린저호'가
폭발했을 때 우리의 상상력은 산산히 부서졌습니다.

포스네스 한젠:오늘날 수많은 보도들이 난무하는 가운데,우리가 보아야 할
실제의 순간은 진정한 의미를 상실한 것일까요?

엔첸스베르거:그것은 역사가 더이상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
리가 전쟁을 1년후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도대체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우리의 시간감각은 변하고 우리의 기억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타이타닉'-전
시회에서 성유물 숭배를 보여주는 이유중 하나가 바로 이때문일 것입니다.
그 장면은 마치 기술적인 그리고 종교적인 물신숭배의 문화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물론 그 이외에도 인간적인 면모도 간혹 나타납니다. 그 4월의 밤에
이야기되었던 모든 운명들….

포스네스 한젠:"우리들은 신사로서 침몰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
하고 있지요.

엔첸스베르거:바로 그것입니다.
전달되지 않았던 빙하에 대한 경고, 대답하지 않는 신비스러운 배,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 물론 악사들도. 작가가 그런 소재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전
혀 놀라운 일이 아니지요.

포스네스 한젠:그 모습은 바로 인간의 오만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엔첸스베르거:인간의 부분적 생태학적인 사고 역시도 오
늘날의 기술문명이 내뿜는 마법적인 힘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즉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우연의 소산인 빙산은 인간이 창조한 기술의 발전을
나락속으로 추락시킵니다. 바로 자연의 보복입니다! 제가 `타이타닉의 침몰
'이라는 서사시를 썼을 때 무엇보다도 배를 하나의 소우주로, 하나의 사회의
거울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제 작품속에서 쿠바가 세계혁명을
위한 일종의 실험대로 작용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이 영화
는 그것을 경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헐리우드 영화는 역사를 너무 쉽게
소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계급투쟁은 전혀 표현되지 않습니다. 영화의 호
화로움이 계급투쟁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피상적인 미학의 승리인 것이다.

포스네스 한젠:인간들은 철저하게 합리화된 시대에 신화를 필요로 합니다.

엔첸스베르거:그렇습니다. 그리고 이상적인 인물을 필요로 합니다. 현실의 신
화가 적을수록, 현실의 이상이 적을수록 대체신화와 대체이상을 더욱 많이
요구받게 됩니다. 그것은 숭배의 대상입니다. 대체신앙과 사이비종교도 그래
서 생기는 것입니다.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죽음은 최초의 잠재적 비극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포스네스 한젠: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것을 실제적인 것인 양 개인적
으로 겪고 비극적으로 느낍니다.

엔첸스베르거: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현실속에서 위대함과 감동을
그리워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용물이 있습니다.

포스네스 한젠:비극에서 우리 모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엔첸스베르거: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스턴트 카타르
시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점에 있어서 비록 `타이타닉'이 물론 대단한 신
화라고 해도…, 나는 새로운 `타이타닉' 영화에서 유사함을 볼 수 있습니다.

포스네스 한젠:…그러나 진주의 내부에 있는 핵심으로는 결코 들어가지 못
하는 것이지요. - Der Spiegel 1998년 13호에서

번역.정리:장진원 <독문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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