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를 내다보는 이 시점에서 학계에서는 21세기를
위한 준비들로 분주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술기외면에서는 '대안모색'
이라는 화두에 초점을 맞취 '생태학적 세계관으로의 인식전환', '지식인 문
제', ' 과학기술의 새로운 논의를 위하여' 3개의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호부
터는 '지식인, 이 시대 지성을 이끌어 가는가'라는 주제로 지식인 문제를
4회 연재한다 <편집자 주>

지난 2월 17일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와 학술단체협의회에서 "학문
정책을 세우자"고 제창한 바가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대학에는 교육은 있어
도 학문은 없고, 교육정책은 있어도 학문정책은 없다.그리고 교육정책 중에
서도 초중등교육 정책은 있어도 고등교육 정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 특히 사회의 생산력 발전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인문사회계
열의 대학 및 연구와 관련된 정책은 최근 들어 약간의 연구진흥을 위한 지원
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한국에서의 대학원은 사실상
대학의 곁다리로서 존재하고 있는데, 학문이 대부분 수입되므로 대학원은 오
직 석사, 박사 졸업장만을 주는 기능 밖에 하지 못하게 된다. 교수 채용시
금전수수도 용납할 수 없는 현상이기는 하나, 더 심각한 것은 우리의 대학에
서는 비판이 없고 논쟁이 없으며 독자적인 지식생산 능력이 없고 정신이 없
으며 교육의 철학이 없다는 점에 있다.그리고 대학을 움직이는 논리가 학문
적인 논리가 아닌 정치의 논리와 경제의 논리라는 점에 있다. 우리의 정치가
그러하듯이 함부로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학자로서의 생명줄을 좌
우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박사과정생들이나 젊은 학자들이 선배들과 충돌할
소지가 있는 주장을 내세울리 없고, 수입한 이론의 권위에 기대는 것만이 가
장 안전한 길이 될 수 밖에 없다.그러니 대학이 연구기관으로 설수있는 날은
까마득하고 그저 교수들은 교사로만 만족해야 하는 실정에 있게 된다.

선후배끼리 교수가 되었으니 그저 싫은 소리 하지 않고 편하게 지내는 것이 최
선이며, 또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동료를 교수로 채용하기 마련이다.이러한 대
학, 학문현실을 개혁하기 위해 필자를 포함하여 젊은 연구자들이 80년대 중
후반 학술운동론을 제창한 바 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도 당
시 학술운동론이 제기했던 과제들은 거의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당시
의 학술운동론은 비판적 학문건설과 학문사회의 개혁이라는 두가지 과제를
제기하였다.비판적 학문, 민중민족적 학문의 건설은 그 이후 치열한 사회구
성체 논쟁, 각 분과학문 소장 연구자 주도의 학회 수립운동, 대안적 교과서
집필, 새로운 사회지나 잡지 창간 등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학회의 개혁운동
은 커리큘럼 개정 운동, 강사노조운동 등으로 나타났다.이 중에서도 당시의
젊은 석.박사 과정생들이 주로 치중한 것은 전자의 작업, 즉 대안적인 방법
론과 이론, 실천적인 학문 수립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러한 움직임은 87년
6월 항쟁과 7.8월 노동자 대투쟁의 분위기에 고무되어, 지난 세월 우리 대학
을 짓눌러온 식민지적 담론구조를 해체하고 우리의 조건과 현실에 바탕을 둔
새로운 학문 건설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10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
서 보면 그간 많은 새로운 연구성과가 쏟아져 나왔고, 새로운 연구 분야가
개척되기도 했다. 북한학, 여성학, 한국근현대사, 계층계급론, 국가이론, 정
치경제학 등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가 나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불행
하게도 그러한 흐름들은 초기의 문제제기적 수준에서 체계적인 연구성과로
나아가지 못하고 중도에서 좌절한 경우가 많고, 구체적인 실증작업으로 연결
되기 보다는 이론적인 논의에 그치기도 했으며, 그러한 이론을 무기로 하여
실천적인 작업에 연결되기 보다는 아카데미즘에 안주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그러한 굴절을 겪은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90년대 이후 우리사회의 전
반적인 보수화 경향, 학생운동의 쇠퇴, 대학문화의 소비문화로의 포섭 등이
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새로운 학문 건설을 위한 운동은 싹을 보이기가 무
섭게 찬바람을 만나 좌초되기에 이르렀다.그리하여 IMF를 맞아 온나라가 위
기에 처한 오늘, 우리는 다시 21세기적 학술운동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오늘의 시점에서 학술운동은 우선 대학의 자정운동에서 출발하지 않
을 수 없다. 과거에 대학이 권력의 시녀노릇을 하였다면 오늘의 대학은 경쟁
력 담론, 상품 소비문화에 침투되어 사회나 국가에 별로 건설적인 기여를 하
지 못하고 있다.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압력을 극복하고 교수와 학생 모두가
학문활동이나 지적인 교류활동을 중심으로 다시 만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해
야 할 것이다. 90년대 들어서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엄청난 액수의 기
업발주 프로젝트가 관련 학자들에게 쏟아졌다. 그리하여 학자들은 이제 외부
용역 과제에 모든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어서 실제 우리사회의 발전전망을 수
립하는데 필요한 연구과제의 수행과 문제제기, 토론 작업은 뒷전으로 물러나
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같은 대학의 부패와 기능부재 상황을 극복하지 않고
서는 이론의 생산과 교류 자체가 어렵게 된 것이다.

21세기적 맥락에서 제기되는 학술운동은 이제 과거처럼 민족민중의 학문 수
립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조건에 바탕을 두되, 세계의 학문사회
와 발을 맞추고, 그들에게도 유용한 이론적 자극, 아이디어나 정보를 줄 수 있
는 우리 스스로의 지적인 자산을 만드는 작업에 치중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필자는 학문 인프라의 구축 작업이라고 말하고 싶다.학문의 인프라가
없이는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남의 처방이나 대안에 의존하여야 하
며, 나아가서 우리의 정신세계를 우리의 지식틀로 인도하지 못하는 정신적 문
화적 불구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세계화된 오늘의 현실은 경제질서의 단일
화에도 불구하고 문화, 정치 질서의 차별화를 여전히 낳고 있는 바, 우리가 나
름대로의 정체성을 가진 문화적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서 이러한 새로운 학문
의 건설은 가장 중요한 과제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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