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태어날 때부터 갖춘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으로
사전에 정의하고 있다. 이런 사전적 정의는 선천적 재능을 중시하는 것이지
만 선천적 재능만으로 천재가 될 수는 없다. 아무리 타고난 재주가 뛰어나도
부단한 노력과 교육의 뒤받침없이는 천재의 탄생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선천
적 재능과 후천적 노력이 조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이런 선천적 재
능과 후천적 노력이 조화가 된 사람을 우리는 `천재'라고 부른다.`농구 천재
' 허재 동문(사범대 체육교육학과 88년 졸)은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는 선
수이다. 농구계에서 천재성을 발휘하고 있는 그는 피나는 노력과 훈련으로
`농구 천재'가 된 것이다.중앙대 시절, 그는 강동희, 김유택과 함께 `허동택
트리오'라고 불리는 황금멤버를 주축으로 연.고대의 아성을 깨고 1985년 5월
전국대학농구대회 우승을 비롯해 1986년 농구대찬치 2차대회를 우승으로 이
끈다.곧이어 1987년 3월 춘계 대학농구연맹전 우승을 놓치지 않아 `중앙대
전성시대'를 열어간다. 대학 농구 정상의 자리를 지켜나가던 그는 88년 기아
자동차에 입단해서 `현대-삼성의 재벌시대'를 마감시킨 주인공이 되었고, 그
후 농구대잔치에서 5연패의 위업을 이루면서 기아의 7회 우승의 금자탑을 세
워 신생팀인 가아를 농구 명가의 반석 위에 올려 놓는다.일약 한국 최고의
슈팅가드가 된 그는 현란한 드리블, 돌파력, 저돌적인 슈팅, 그리고 특유의
승부근성으로 팀이 고비에 있을 때마다 위기에서 탈출시키는 저력을 발휘한
다. 그래서 `승부사', `농구황제', `농구9단'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면서 부동
의 국가 대표가 되어 88올림픽대회에서는 각국 선수를 대표하여 선수선언을
하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한다.하지만 그의 화려한 농구인생의 첫출발은 단순
하기 그지없다. 단지 공이 좋았기 때문이다.허재선수의 부친인 허준씨는 아
들의 유년시절에 대해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해서 앞집 담장에 공을
던지고, 차는 바람에 담장이 무너져 변상을 한 적도 있다"면서 자신이 좋아
하는 일에 열중하던 것이 지금의 허재를 있게 했다고 말한다. 더불어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은 백마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된다. 그에게 스승은 그가
흔들릴 때마다 잡아주는 버팀목이 되어준다. 특히 정봉섭 중앙대 체육부장과
의 만남은 그가 뛰어난 농구선수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코
트에서 만큼은 `지기 싫다'는 승부근성이 보여주는 그의 경기모습은 중앙인
들에게 희열과 감동 그리고 연대감을 심어준다. 자신의 위치에서 `성실'함을
최대 목표로 하는 그는 일상의 우리들로 하여금 한번쯤은 자신의 생활을 되
새겨 보게 한다.
/중앙의 80년이 있기까지/ 승부근성 뛰어난 농구 천재(농구선수 허재 동문)
- 기자명 중대신문
- 입력 1998.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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