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내가 맡고 있는 4학년의 수업에서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나 고민은 무엇입니까?”하고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진로와 취업’을 가장 먼저 대답하였으며, ‘자신의 정체성’ ‘이성친구/결혼’ ‘성적/능력’ 등이 그 다음을 잇고 있었다. 이는 많은 학생들이 미래 즉, 졸업후의 자신의 모습에 대한 관심과 불확실성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성적이나 능력 쌓기’는 아마도 이러한 불안과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현실적인 최선의 방법이나 수단쯤으로 여기고 있는 듯 했다.

이것이 학생들이 생각하는 현실이라면, 학생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선생으로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혹은 ‘학생들은 나에게 어떤 것을 기대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는 기회가 있었다. 이때 문득 떠오른 것이 ‘학생들은 선생에게서 아무 것도 기대하고 있지 않을 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대학교수는 전공지식이나 교양지식만을 전하고, 단지 그것에 의해 성적을 주는 입장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진로나 취업에 별로 도움을 줄 것이 없다고 믿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교수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성친구나 배우자를 소개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미 서열화된 출신학교가 정해진 그들에게 남은 중요한 일은 좋은 학점을 얻거나 자신의 능력을 배양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그것을 얻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으며, 다른 사람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을 마치고 나가는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며 지혜로움이다. ‘지혜’는 사물의 가치판단이나 사고방식, 그리고 세상을 바르게 보는 눈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혜를 우리의 선생들이 우리에게 물려주었고, 이것을 깨달은 우리가 다시 학생들에게 물려주려고 하고 있다. 지혜는 도전과 실패로부터 얻어지며, 많은 경험과 문제해결의 방법을 깨침으로서 얻어질 수 있다. 즉 이것은 역동적인 가치기준이며, 정체된 지식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제한된 특정의 문제해결에만 기능을 할뿐이며, 반면에 지혜는 모든 문제해결의 방법이나 기준으로서 기능을 한다. 따라서 이것은 전공서적을 통해서 얻을 수도 없으며, 혼자서도 얻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학의 교수는 학문이나 지식의 전수자가 아니다. 학생들에게 학문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며, 실패의 경험을 통해 먼저 얻은 깨달음을 전하고, 사물에 대한 바른 가치판단을 공유하고자 한다. 학생들에게 진정 필요한 존재로써의 선생의 역할은 여기에 있다. 따라서 학교에 잘 오지 않다가도 요령 있게 시험을 잘 본 학생들보다, 열심히 학교생활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참된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강의시간에 눈이 빛나고 있는 학생들은 진정 지혜를 얻고자 하는 학생들임에 틀림이 없다.

김재휘 <문과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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