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학에 ‘무의사결정’이라는 개념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요즘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 유행이다. 동아리 성폭력 사건에 피해자와 가해자 둘 다 학생회관 출입금지를 내리는 동아리연합회, ‘총학생회장 산하기구’ 폐지안에 입장이 없다며 자랑스레 입장문까지 내는 총학생회(총학), 교수-학생 성폭력사건에 연대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학생회. 이런 일들이 중앙대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한 학생 대표자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향’은 곧 ‘편향’이 된 세상에서 중립은 대표자에게 남은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지향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 누구와도 싸우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 모든 결정을 익명 커뮤니티에 맡겨 두고, 익명 커뮤니티의 주류를 ‘여론’으로 추종하는 것. 학생 대표자들은 책임과 비판에서 자유로워졌고, 학생회는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곳이 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대신 익명 커뮤니티의 여론을 거스르고 무언가를 지향하려는 대표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중대신문 제2005호 1면 머리기사 제목은 ‘불완전한 학생자치’였다. 기사에서 말하듯 학생자치는 점점 무너지고 있다. 부끄럽지만 우리 학부도 이제 비상대책위원회 3년차를 맞이했다. 학생자치가 위기라는 말은 이제 진부할 지경이다. 그동안 수많은 원인분석이 나왔지만, 학생자치가 무너지는 가장 큰 이유는 학생회가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곳’이 됐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것도 지향하지 않을 사람을 뽑는 선거, 모두가 중립을 지키는 회의, 이런 학생자치에 뛰어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대학 생활을 기꺼이 내던질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니 투표율은 떨어지고 회의는 시간 낭비에 불과하며 학생회를 하겠다는 사람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정책학 교과서는 무의사결정을 지금의 현실을 유지하려는 정치 활동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중립’의 상징으로 통하지만, 사실은 오늘의 세상을 아무 문제 없는 것으로 추인하는 가장 정치적인 활동이다. 

  이별조차 안전해야 하는 세상에 동의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는 여성주의 학생회가 필요하다. 공장에서 동물(‘애완견’이든 ‘고기’이든)을 뽑아내는 세상에 동의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는 비거니즘 학생회가 필요하다. 등록금 반환율 1.5%에 동의할 수 없고, 총장선출제도 개선 공약을 전면 불이행하는 총학에 동의할 수 없다면, 특정 대기업의 지시보다 학생과 학문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우리에게는 더 강한 민주적 학생회가 필요하다. 오늘의 세상에 동의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는 세상과 불화하는 편향된 학생회가 필요하다. 

이현수 학생 
공공인재학부 비상대책위원장 
공공인재학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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