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로 변신한 여왕이 건넨 독사과를 베어 물고 죽음의 잠에 빠진 백설공주. 가히 비탄에 잠길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사진출처 다음 영화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소꿉친구로 변신한 여왕이 건넨 독사과를 베어 물고 죽음의 잠에 빠진 백설공주. 가히 비탄에 잠길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사진출처 다음 영화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가장 아름다운 피로  
마법은 풀려.  
넌 내 심장을 가질 수 없어.”                     
영화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中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백옥빛 피부와 새빨간 사과를 자연스레 연상시키는 이 대사는 모두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동화 『백설공주』 속 왕비의 대사다. 어릴 적 우리가 열심히 동화책을 뒤적거리며 접했던 무수한 이야기를 기록한 자는 독일의 그림형제다. 새롭고도 환상적인 동화의 세계를 처음 맛봤던 그때를 떠올리며 그림형제와 동화 이야기 속으로 함께 빠져들어 보자.

  그림형제가 쌓아온 메르헨 나이테 
  1812년, 그림형제는 독일 민간에 떠돌던 옛이야기들을 수집해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이야기 : Kinder-und Haus­märchen』를 발표했다. 책에 실린 이야기는 그림형제의 창작이 아닌 민담들을 모아 정리한 것으로 한국에서는 ‘그림 동화’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라푼젤, 헨젤과 그레텔, 빨간 모자,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이야기가 포함돼있다.

  최문선 교수(충남대 독어독문학과)는 보고, 알림, 이야기, 소문을 뜻하는 독일어에서 기인한 ‘메르헨(Märchen)’과 ‘동화’라는 용어에 관해 설명했다.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이야기』라고 칭하는데, 이는 원래 어린이 메르헨과 가정 메르헨이라는 뜻을 지녀요. 틀린 번역이라고 할 수만은 없으나 메르헨이 한국에서는 동화로 번역된 거죠. 원래는 ‘킨더 메르헨(Kinder Märchen)’이 어린이 이야기인데 그냥 메르헨 자체가 동화라고 받아들여지게 되며 혼란을 빚기도 했어요.”

  김정철 교수(경북대 독어독문학과)는 그림형제가 민담을 동화로 모은 계기는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깊다고 이야기했다. “산업혁명으로 사회 및 가족 구조가 바뀌며 사람들이 과거에 무관심해졌어요. 동화가 끊길 위험에 놓였죠. 1700년대 중후반 인간의 합리성과 이성을 중시하던 계몽주의 사회 속에서 동화는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였고요. 이에 그림형제는 우리 정신이 들어 있는 무언가를 모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모은 것이 결국 동화가 됐죠.”

  어쩌면 그 무엇보다 새하얀 
  『백설공주』 속 왕비가 사냥꾼을 시켜 공주를 죽이고 허파와 간을 꺼내오라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봤는가. 『신데렐라』에는 두 언니가 황금구두를 신기 위해 발가락이나 뒤꿈치를 자르는 내용이 나오며, 『헨젤과 그레텔』에서는 남매가 마녀를 펄펄 끓는 가마솥으로 밀어 넣는 것이 핵심 장면을 이루기도 한다. 흔히들 『개구리 왕자』 속 개구리가 공주와의 입맞춤으로 왕자로 변했다고 알고 있으나 그림형제 원작에 따르면 공주는 입맞춤은커녕 개구리를 벽에 내동댕이쳤다. 얼핏 상상하면 무척 섬뜩하고 잔인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박상재 전 한국아동문학학회 회장은 그림형제 책 속 잔인한 장면에 관해 논했다. “독일에서 전해오는 민담을 수록했기에 잔인한 장면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원래 어린이용 이야기는 아니었고 출판을 거듭하며 어린이가 읽을 수 있도록 바뀌었죠. 그림형제는 교훈을 전달하기보다는 전해온 그대로 기록돼야 가장 사실적인 이야기를 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 수집한 이야기를 윤색하지 않도록 했어요. 잔혹동화에 해당하는 내용이 사실인 경우도 있지만 흥미를 부추기기 위해 더욱 강하게 개작·각색된 허구의 이야기도 많답니다.” 

  최문선 교수는 이를 인간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이야기로 간주했다.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동화’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선정적인 부분을 파고들면서 동화의 성적이고 잔혹한 요소 때문에 무시무시하다고 말한다면 거꾸로 이해한 거죠. 저는 ‘알고 보면 자연스러운’이라고 생각해요.” 인위적이지 않고 가장 순수하고 순전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동화가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어린이와 유사성을 띤다는 것이다.

  그림형제의 민담에 잔인하고 끔찍해 보이는 요소가 깃들어 있음은 그림형제가 이야기를 함부로 재단하거나 변형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표일 수 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삶의 원형을 담아낸 이야기. 그 이야기는 우리 삶의 이면적 실체를 다양하고도 정확하게 담아냈다.

  뿌리는 같지만 열매는 달라요 
  그림형제의 동화가 월트 디즈니사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영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백설공주를 다룬 최초의 장편 만화 영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흰 피부와 빨간 입술, 검은 단발 머리를 한 백설공주 이미지가 우리에게 익숙한 이유다.

  『백설공주』를 각색한 영화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아름답고 착한 백설 공주, 마녀인 여왕의 등장, 마법의 거울, 백설공주에게 도움을 주는 난쟁이 등 원작과 많은 공통점을 공유한다. 그러나 영화 속 백설공주와 여왕의 관계는 더욱 숙명적으로 밀착돼 있다. 여왕의 마력을 무력화하고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백설공주 뿐이며 백설공주의 심장을 얻으면 여왕이 불멸의 존재가 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이다.

  그림형제의 원작에서는 여왕이 달궈진 쇠구두를 신고 죽을 때까지 춤을 추며 최후를 맞이하는 반면 영화는 치열한 싸움 끝에 백설공주가 여왕을 찔러 죽이며 막을 내린다. ‘가장 아름다운 피로 마법은 풀려.’ 거친 숨을 내쉬며 강렬한 눈빛을 한 백설공주의 모습. 그의 주체성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처럼 동화와 영화는 닮은 듯 다른 요소를 차용하고 있다.

  그렇게 서서히 마침내 
  김정철 교수는 동화가 문화콘텐츠로 제작될 때 나타나는 장점과 성장 가능성에 관해 설명했다. “동화는 구체성이 없죠. 『백설공주』를 원작으로 읽으면 5분도 채 안 걸릴 수도 있어요. 이런 동화가 당대 시대정신에 맞춰 문화콘텐츠로 확대될 때, 만드는 사람이 얼마만큼의 상상력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발전 가능성은 굉장히 풍부해요. 이때 주의할 점은 기본적으로 동화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거죠.”

  최문선 교수는 민담을 엮어 동화를 만들고, 동화를 영화로 재생산하는 과정이 갖는 의의를 설명했다. “동화나 영화를 통해 묻힐 수 있는 이야기를 몇백 년 동안 이어지게 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죠.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다시 한번 그림형제의 원본에도 관심 갖게 되고요. 흥미로운 이야기 소재는 계속 함께 하겠죠.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앞으로의 시대 흐름과 달라지는 가치관에 따라 때로는 비판을 받기도, 맞춰가기도 하며 변화해 나아갈 거예요.”

  현재 이곳과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이야기. 누군가는 유치하다고 또 잔혹하다고 간주하는 이야기. 그러나 동화는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담은 것에서부터 출발했기에 그 자체로 인간과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치’하고 ‘잔혹’하다는 바로 그 이야기가 과거 우리의 모습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어쩌면 먼 훗날 우리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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