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탄 쏘지마!’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사진제공: (사)이한열기념사업회
‘최루탄 쏘지마!’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사진제공: (사)이한열기념사업회

폭력은 문제 해결의 손쉬운 도구
사회와 함께 폭력 양상 달라진다

국민의 주권의식 고양 필요해
합당한 과거사 청산이 동반돼야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비롯된다는 점을 명시한다. 국가는 자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니며 그 대가로 공권력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았다. 그러나 국민을 지키기 위해 사용돼야 할 공권력이 국민을 향하는 아이러니가 반복되고 있다. 국가 폭력이 계속되는 원인을 진단해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봤다.

  그들은 어떻게 총을 들 수 있었나
  황병주 역사문제연구소 연구부소장은 정부가 정권 안정 도모를 위한 효율적인 수단으로 국가 폭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참사가 되풀이된다고 언급했다. “폭력은 끔찍하지만 사실 기능적 효과가 큽니다. 이로 인해 폭력이 여전히 이어지는 거죠. 윤리적으로는 어긋나지만 폭력을 통해서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하면 현실적이고 제일 편하다는 겁니다.” 그는 일부 정치 세력이 자신의 정치적 방향성을 관철하기 위해 군사주의적 효율성을 지닌 국가 폭력을 행하고 있으며 이는 일반적인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병진 강사(동명대 학부교양대학)는 정치 권력층의 이해관계가 마치 국가를 대변하는 듯 선전하기 때문에 국가 폭력이 일어난다고 언급했다. “자신들의 이득을 마치 전체 주권자의 이익인 것처럼 포장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확대·재생산되면서 국가 폭력의 명분이 발생하는 것이죠.” 전명혁 교수(동국대 대외교류연구원)도 이와 비슷한 의견을 표했다. “보통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형태의 정권은 ‘국가를 위해서 국민의 권리와 자유가 국가에 종속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언급하며 시민의 권리를 억압하는 행위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어요.”

  대통령 권한이 비대해 국가 폭력이 쉽게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정민 교수(성균관대 사학과)는 독재정권 시기에 강화된 대통령의 권한이 일부 유지됐기 때문에 국가 폭력이 거듭될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유신체제 당시에 대통령 권한을 막강하게 설정해둔 부분이 현재까지 완전히 개선되진 않았어요. 대통령 임명에 의해 수많은 정부 요직이 결정된다는 점이 그 대표적 사례죠. 대통령이 정치적 반대세력을 통제하기 위해 공권력을 이용한다면 결국 이는 국가 폭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21세기에도 여전합니다 
  과거 무력 진압 위주로 진행됐던 국가 폭력의 양상이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물리력 위주의 국가 폭력은 줄었지만, 문화예술계를 향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문화예술인들을 교묘하게 감시하고 괴롭히는 등의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이병진 강사는 사회적 요구가 다양해짐에 따라 국가 폭력의 형상도 함께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회 자체가 하나의 작동 방식으로 통용될 수 없는 다원화 사회로 가는 추세라고 봅니다. 그런데 기존 질서 체제를 유지하는 틀과 제도는 상대적으로 세분화 된 사회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죠. 이러한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고차원적인 형식의 국가 폭력이 탄생하게 된 겁니다.”

  황병주 부소장도 사회 양상이 달라지면서 문화적 영역 통제가 일어났고 이에 따라 국가 폭력이 발생한다고 언급했다. “사회가 바뀌면 이에 걸맞게 국가 폭력의 행사 방식도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중요하지 않았던 문화적 영역이 확장됨에 따라 문화를 향한 구조적 개입이 발생했고, 결국 그런 모습으로 국가 폭력은 변화했죠.”

  이어 그는 현재 사회적 갈등 구도가 더욱 심화됐기 때문에 민주화 이후에도 국가 폭력이 지속된다고 이야기했다. “이전에는 민주주의라는 개념 하나로 사회적 갈등 구도가 형성됐어요. 하지만 자본주의의 성숙과 계층 구조가 복잡해짐에 따라 이해관계와 사회적 요구가 다양해졌죠. 그만큼 갈등 해결이 어려워졌고 사회적 적대와 균열이 강화되면서 결국 국가 폭력을 또다시 찾게 되는 거죠.”

  1987년 6.29 선언 이후 민주화를 쟁취했지만 국가 폭력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특히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국군기무사령부는 위수령 발령을 검토해 서울특별시 도심에 병력을 배치하려고 했다. 이정민 교수는 기득권층이 민주화를 기점으로 위축된 그들의 특권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 폭력을 행사한다고 지적했다. “특권층은 과거 그들이 누렸던 이익을 지키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국가 폭력은 변형된 모습으로 계속 발생하는 거죠.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에도 국가 폭력이 잔존하는 근본적 원인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희생의 쳇바퀴를 멈추자
  전두환씨가 사망한 23일 오전, 전라남도 강진군의 한 저수지에서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됐다. 피해자는 5.18 당시 총상을 입고 하반신이 마비됐고 평생 트라우마와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가 폭력은 수많은 피해자를 남겼음에도 그 겉모습만 바꾼 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국가 폭력이라는 악의 고리를 끊으려면 어떠한 논의가 필요할까.

  임채도 인권재단 들꽃 상임이사는 국가 폭력이 계속되지 않게끔 견제하려면 시민으로서 주체의식을 갖춰야 한다고 언급했다. “사회 공동체 내에서 일을 진행할 때 국가의 힘을 동원하면 매우 효율적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시민들이 공론의 장에서 의견을 나누고 합의하며 일의 방향을 결정해야 합니다. 여전히 국가는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이 국가의 집행과정과 결과에 관여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해요.”

  과거의 국가 폭력에 합당한 징벌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정민 교수는 이전 국가 폭력을 향한 엄중한 처벌이 선행돼야 한다고 전했다. “해방 이후 친일파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고 이들은 지금도 정치적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어요. 군사 정권을 이끌었던 정치 세력 역시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소멸되지 않고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죠. 국가 폭력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법적·사회적 장치를 만드는 작업도 미비했습니다. 친일파와 독재자를 향한 법적 처벌이 얼마나 철저하게 이뤄졌는지 생각해봐야 해요.”

  황병주 부소장도 이에 동의했다. “과거의 잘못된 국가 폭력이라고 하는 추상적인 명사 뒤로 숨지 말고 국가 폭력의 실제 행위자들을 확실하게 조사해야 합니다. 합당한 책임을 묻는 사례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야 해요. 이런 관습이 자리 잡았을 때 국가 권력자들의 자기 검열과 성찰적 행위가 강화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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