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들은 5월만 되면 아파요. 5월이 너무 싫고요.” 5.18 민주화운동을 겪은 이명자 오월어머니집 관장이 기자에게 전한 말이다. 국가 폭력을 경험한 후에도 피해자들은 여전히 트라우마 속에서 살고 있다. 그들의 트라우마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그들을 위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고민해봐야 할 때다. 

  트라우마에는 이유가 있었다 
  국가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피해자들의 일상 곳곳에서 나타난다.  특히 가족의 부상과 고통,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볼 때마다 느끼는 쓰라린 감정은 이명자 관장을 괴롭게 했다. “어느 날 남편이 군인들에게 너무 맞아서 흰 러닝셔츠가 피로 붉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 아들들은 아빠가 사형수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고요. 이것만으로도 저에게 충분히 트라우마였습니다. 게다가 단란하게 살고 있는 평범한 가족을 보면 ‘우리 가족도 그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가슴이 아파요.” 

  그럼 트라우마는 그들만의 전유물일까? 김명희 교수(경상국립대 사회학과)는 간접적으로 국가 폭력에 노출된 사람도 트라우마를 가질 수 있다고 짚었다. “5.18에서 벌어진 학살을 사진과 영상 자료로 접한 사람들이 바로 그 예시입니다. 그들은 5.18 집단 트라우마의 핵심적 양상을 공유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죠. 최근 정신의학적 진단 기준에 따르면 국가 폭력을 참상에 간접적으로 노출된 사람도 동일한 형태의 트라우마를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국가 권력에 의한 감시와 통제로 인해 트라우마가 강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가 권력의 감시와 통제는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가해자의 부인이자 2차 인권 침해입니다. 피해자들이 고통을 말할 수 없도록 억압하는 거죠. 실제로 5.18 경험자들이 겪는 트라우마의 대부분은 이로 인해 강화됩니다.” 이처럼 국가 폭력은 감시나 통제와 같은 또 다른 국가 폭력을 발생시키고 트라우마는 더욱 심해진다. 

  국가의 폭력이라는 그 자체에 주목하는 의견도 있었다. 김석웅 심리건강연구소장은 폭력의 주체가 ‘국가’이기 때문에 트라우마가 더욱 지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는 엄연히 개인을 지키는 법적 기구이고, 국민은 그런 국가가 당연히 개인을 지켜줄 거라고 전제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켜줄 거라고 믿은 국가가 자신들을 보호 영역 밖으로 내몰면 그들은 사회와 이웃으로부터 고립돼버리죠. 해당 구조가 피해자들로 하여금 세상을 향한 기본적인 신뢰를 무너뜨리고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게 한답니다.” 

  치유를 위한 ‘우리’ 
 
국가 폭력의 당사자가 생각하는 트라우마 치유의 출발점은 어디일까?  이명자 관장은 국가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책임자의 사과와 진상규명이 없는 상태에서 피해자들에게 트라우마는 계속 남습니다. 한이 풀리지 않는 거죠.” 

  우리 사회는 엄연히 국가 폭력의 트라우마를 온전하게 치유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를 지닌다. 김명희 교수도 트라우마 치유의 첫 단계로 진상규명과 진실을 기억하는 문화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트라우마를 온전하게 치유하기 위해서는 ‘왜 본인에게 이러한 참상이 일어났는지’에 관한 충분한 설명이 필요해요. 또한 진상규명을 통해 밝혀진 진실을 사회적으로 기억하는 문화도 자리 잡아야 하죠. 재발 방지와 제도 개선, 국가의 2차 가해로 손상됐던 피해자들의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입니다.” 

  이명자 관장은 공동체가 연대하며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안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사실 제3자에게 국가 폭력의 아픔을 말하긴 어려워요. 그래서 피해자 어머니들끼리 모여 서로 아픔을 보듬고 트라우마를 이겨내려고 합니다.” 이어 그는 광주에 개관할 국립트라우마센터에 관한 기대도 표했다. “광주에 국립트라우마센터가 들어올 예정입니다. 앞으로 해당 센터가 폭력으로 고통받았던 모든 이들이 함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기대하고 있어요.” 

  이에 관해 4.3트라우마센터의 한 관계자는 주어진 역할을 다해야 함을 전했다. “국가 폭력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는 만성화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치유와 사회적 지지, 상담 및 재활 프로그램 제공 등이 필요해요. 국가트라우마센터의 설립과 운영의 법적 토대가 마련된 만큼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폄하를 멈춰주세요! 
  국가뿐만 아니라 우리도 그들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5.18 유공자가 가산점을 받아 공무원 자리를 싹쓸이한다’는 유언비어가 퍼지기도 했다. 이명자 관장은 이와 같은 폄하 발언을 멈춰야 한다고 호소했다. “5.18 국가유공자를 향한 폄하 발언에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은 피해자를 향한 폄하 발언을 하면 처벌할 수 있는 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조금 나아진 상황이에요. 점차 폄하 발언이 없어지길 기대합니다.” 

  김명희 교수는 사회적 ‘무지’와 잘못된 ‘관점’으로부터 폄하 발언이 비롯됐다며 사회적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국가 폭력을 일회적인 사건으로 보는 사회적 방관이 피해자와 그 가족이 겪는 고통을 재생산합니다. 그들을 위한 배상을 ‘권리’가 아닌 ‘시혜’로 보는 관점도 잘못됐죠. 인권 침해의 피해자인 동시에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주체로 국가 폭력 피해자를 인식할 수 있도록 그 방향성을 전환해야 합니다.” 

  김석웅 소장도 국가 폭력 피해자를 향한 올바른 사회적 인식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위해서는 희생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국가 폭력은 사회적 인식이 굉장히 중요해요. 따라서 그들의 희생이 어떤 의미와 역사적 교훈을 갖는지에 관한 교육이 필요하죠. 결국 이러한 교육을 통해 성숙한 사회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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