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예술이 있어 을지로는 얼어붙지 않을 거야
  • 이서정 기자
  • 승인 2021.11.29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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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등 대한민국 역사의 굵직한 사건을 겪으며 변화를 거듭해 온 을지로. 조명, 타일도기, 공구, 미싱 등 상공업 장인들의 땀방울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을지로의 기술 특화 거리는 여전히 그들만의 음으로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똑똑, 문화예술가들이 을지로의 문을 두드립니다. 재료 및 공구 상가와 다양한 문화시설의 공존은 을지로만이 가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죠. 을지로가 예술을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시다면, 함께 을지로로 떠나봅시다! 최수경 기자 petitprince@cauon.net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모습. 공업사 사이에 위치한 카페의 벽화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기술과 예술의 공존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사진 최수경 기자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모습. 공업사 사이에 위치한 카페의 벽화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기술과 예술의 공존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사진 최수경 기자>

낡고 좁은 골목골목 빼곡히 자리하고 있는 간판들. 밝고 화려한 색색의 조명과 금속을 갈아내는 날카로운 소리까지. 을지로의 첫인상이었다. 강렬한 풍경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군데군데 전시회를 위한 스튜디오와 이색적인 분위기의 필름현상소, 재즈 바이닐이 울려 퍼지는 레코드 바, 카페 겸 편집숍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흑백 거리 속 선명한 빛을 발견한 듯한 순간이었다. 

  구불구불 을지로 타임라인 
  을지로 일대에서는 일찍이 근대적인 형태의 제조 산업이 시작됐다. 1910년, 한국 최초의 상설 영화관인 경성고등연예관을 시작으로 경성극장, 중앙관 등이 생기며 영화 전단을 찍기 위해 인쇄소들이 자리 잡았다. 일제강점기 경성 도시 계획의 주요 거점으로 지정된 을지로는 1920~1930년대엔 방직, 인쇄업 등 경공업을 위주로 발전해나갔다.

  공업이 발전하고 상업가가 형성되며 을지로는 점차 자본주의에 입각한 근대 도시의 모습을 갖춰 갔으나 해방 직전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일제강점기 말 일제가 을지로 일대를 소개공지대, 즉 공습에 의한 화재로 불이 번지지 않게 하려 비워 놓은 공간으로 조성한 것이다. 이후 6.25 전쟁을 지나며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상태로 방치된다. 이렇게 을지로는 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피난민과 지방 이주민의 임시 거처가 되기도, 빈민촌이 형성되기도 했다.

  불행 중 다행일까. 거주와 상업 기능이 혼재했던 을지로 일대는 1966년 도시 개발 사업을 통해 판자촌 주민들이 빠져나가며 자연스레 상업 공간으로 변화했다. 1968년에는 국내 최초 주상복합건물 ‘세운상가’가 들어섰다. 강남개발과 제조 산업의 쇠퇴로 그 발전이 잠시 주춤하기도 했으나 청계천 복원이 이뤄지며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빛을 발하게 됐다.

  뚜벅뚜벅 거리를 걷다 보면
  ‘도면을 들고 을지로에 가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을지로에는 없는 기술과 자재가 없으며 솜씨 좋은 장인들이 한데 모여 있다. 을지로의 기술 특화 거리는 1950년대 6.25 전쟁 이후 1990년대까지 한국 경제발전에 따라 그 번영을 함께했다. 특히 1960년대 당시 전국의 조명기구가 전부 을지로에서 판매됐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한국 조명산업의 중심지였다.

  명진시보리를 운영하는 최진일씨는 을지로에 자리 잡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먹고 살기 위해 을지로에 정착한 지 대략 30년 정도 됐죠. 청계천 일대가 원자재를 포함해 모든 것들이 밀집돼있어 구하기가 쉽거든요. 명진시보리의 주 품목은 조명인데, 생산하는 사람이 주문을 내려주면 그 형태에 맞게끔 물건을 만들어주고 있죠.”

  그는 을지로 기술 특화 거리 속 상생의 연결고리에 관해 덧붙여 이야기했다. “이곳에서는 가방을, 저곳에서는 운동화를 만든다고 생각해봐요. 가방을 만들기 위해 온 사람이 우연치 않게 운동화 가게를 보고 ‘내가 또 필요한 거네’하고 들르겠죠. 서로 연관돼 있고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함께 공유하고 상생할 수 있는 거예요.” 조명, 타일도기, 공구, 미싱 등 기술 특화 거리에서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기울여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조명가게 덕분일까. 오후 7시 을지로는 환히 빛나고 있다. 사진 이서정 기자
조명가게 덕분일까. 오후 7시 을지로는 환히 빛나고 있다. <사진 이서정 기자>

  퐁당퐁당 을지로에 빠진 문화예술 
  기계만 가득하던 을지로에 새롭게 자리 잡은 이들이 있다. 바로 ‘문화예술가’다. 을지로 골목은 타일, 공구, 조명, 도기, 가구, 미싱, 철강 등이 한 곳에 밀집돼있어 상용화 되지 않은 부품이나 재료를 구해야 하는 예술인에게 인기가 많다. 그렇게 을지로3가역은 젊고 실험적인 한국 예술 세계의 통로가 됐다. 2016년 말 을지로에 정착한 ‘공간형’은 예술의 가치를 구현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비전 아래 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다방면으로 지원하고 관객과의 소통을 목표로 운영되는 갤러리이자 화랑이다.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공간형’ 갤러리의 모습. 작업만 보이도록 바닥부터 천장까지 새하얗게 칠했다. 사진제공 공간형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공간형’ 갤러리의 모습. 작업만 보이도록 바닥부터 천장까지 새하얗게 칠했다. <사진제공 공간형>

  장성욱 공간형 디렉터는 을지로가 문화예술 특화 거리로 변화한 과정을 이야기했다. “10여 년 전부터 세운상가 등에 젊은 작가들이 터를 잡고 스튜디오를 운영해왔죠. 노후한 건물 재개발을 갈망하는 주인들이 낙후된 건물을 리모델링하지 않은 덕에 낮은 임대료를 책정했는데요. 이것이 많은 다양한 전시 공간 및 젊은 청년 작가들의 유입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2015년 5월 오픈한 ‘신도시’는 미술가, 디자이너, 음악가와 사진가가 운영하는 곳이다. 신도시 관계자는 을지로가 상업적으로 덜 개발돼 다양성과 역사가 공존하는 점이 매력적이라 말했다. “을지로는 제조 및 재료 업체들이 밀접한 곳이기에 예전부터 많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위치해 있었어요. 신도시 역시 작업실 형태로 시작했죠. 근처 다양한 문화시설과 오래된 맛집, 찻집, 술집 등 즐길 거리 외에도 작업에 필요한 재료 및 공구 상가들이 공존하고 있어 을지로에 오게 됐죠.”

을지로3가역에 위치한 바(bar) ‘신도시’. 스튜디오와 클럽 및 공연장으로 운영되며 공연, 상영회, 파티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연다. 사진출처 신도시
을지로3가역에 위치한 바(bar) ‘신도시’. 스튜디오와 클럽 및 공연장으로 운영되며 공연, 상영회, 파티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연다. <사진출처 신도시>

  기술과 문화가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시도한 결과, 현재 을지로는 ‘핫’하고 ‘힙’한 동네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배웅규 교수(도시시스템공학전공)는 을지로가 일명 ‘힙지로’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를 밝혔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을지로의 오래된 산업지대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장소로서 그 의미와 매력을 지니죠. 사람들로 하여금 힙지로라는 표현을 만들어내고요. 젊은 예술가와 예술 활동이 느린 시간과 만나며 아주 독특한, 하나의 새로운 예술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성큼성큼 ‘진짜’ 을지로를 향해
  2017년, 재료를 구입하러 을지로에 방문한 작가들을 대상으로 전시공간 ‘상업화랑’을 연 양찬제 상업화랑 대표. 그는 을지로의 도시재생과 문화예술가들이 주고받은 영향에 관해 설명했다. “작가가 작업실로 운영하며 카페를 병행하기도, 술 마시러 온 사람들이 전시공간에 들러 전시회를 보고 가기도 하며 확실히 을지로의 콘텐츠가 다양해졌죠. 젊은 친구들이 실험적으로 운영하는 공간도 많고요. 그러다 보면 주변에 장사 잘 되는 카페나 술집이 많아지고 점차 확장된다면 월세가 오르며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죠.”

  장성욱 디렉터는 ‘힙지로’의 시대는 끝났다는 입장이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레트로가 중요한 문화 키워드였고 수십 년 다져진 레트로의 모습을 이미 갖고 있었던 을지로에는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었죠. 현재는 기존 공간의 상권들을 식당이 차고 들어오며 을지로의 문화와 산업을 파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것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어지면 힙지로 문화는 끝난다고 생각해요.”

  양찬제 상업화랑 대표는 을지로가 보여줄 수 있는 그대로의 환경이 중요하다고 논했다. “조명·타일가게, 철물점이 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인프라예요. 이제 그 물건들을 사러 을지로에 방문한 이들에게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게 됐어요. 고무패킹을 사러 왔는데 전시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호프집이나 와인 바도 다녀오고. 한 공간에서 나타나는 이 모든 풍경은 을지로만이 지닌 중요한 장소적 특징이자 매력이죠.”

  산업 노동과 문화예술, 접점을 찾아보기 힘든 이질적인 두 영역이 을지로 한가운데서 조우했다. 이 우연한 만남이 우매한 대치로 전락해선 안 된다. 깊게 뿌리 내린 을지로의 역사와 오색 빛의 매력을 지키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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