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페우스여… 그 뒤를 돌아보지 마오
  • 권지현 기자
  • 승인 2021.11.22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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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pheus', Hugues Jean Francois Paul Duqueylar. 리라를 든 오르페우스. 고뇌하는 듯보인다.
'Orpheus', Hugues Jean Francois Paul Duqueylar. 리라를 든 오르페우스. 고뇌하는 듯보인다.

음악으로 세상을 구한 영웅 
사랑을 위해 죽음에 뛰어들다 
오르페우스는 죽었지만 
그의 음악은 죽지 않으리 

“너 때문에 흥이 다 깨져버렸으니까 책임져.” 리라로 디오니소스 축제의 흥을 돋운 남자, 오르페우스. 그는 그리스 신화 속 가장 이름난 음악가였다.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즐거움과 감동을 줬던 오르페우스는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의 비극적 주인공이기도 하다. 오르페우스가 연주하는 아름답고도 슬픈 선율에 귀를 기울여보자.

  음악으로 세상을 구한 영웅 
  오르페우스는 기원전 6~5세기 그리스 문학에서 처음 언급됐다.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고대 전승은 트라키아의 왕 오이아그로스라고 설명하지만 현대판 그리스 신화에는 태양·음악신 아폴론이라고 서술한다. 오르페우스의 출생에 관해 김상엽 교수(단국대 자유교양대학)는 종교적인 부분이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아폴론을 숭배하는 폴리스(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에서는 아폴론을 아버지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와 달리 오르페우스교는 디오니소스를 숭배하기 때문에 디오니소스의 도움으로 왕이 된 오이아그로스를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오르페우스의 음악성은 이아손의 아르고 호 원정대에서 돋보인다. 이아손은 아버지의 동생에게 뺏긴 왕위를 되찾는 데 필요한 황금 양가죽을 구하려고 아르고 호 원정대에 참가할 영웅을 모집했다. 이름난 음악가였던 오르페우스도 원정대에 참여했다. 그는 리라의 아름다운 선율로 노 젓는 선원들에게 힘과 용기를 줬고 선원들 간의 불화도 해결했다. 아르고 호 원정대가 세이렌을 맞닥뜨렸을 때 오르페우스가 가진 능력은 무엇보다 두드러졌다. 3명의 바다 요정 세이렌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선원들을 홀리고 그들을 바다로 빠트려 잡아먹곤 했다. 오르페우스는 세이렌에게 맞서 리라를 연주했고 세이렌으로부터 영웅들을 지켜냈다. 이렇게 오르페우스의 음악은 인간과 동식물뿐만 아니라 무생물까지도 감동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훗날 그의 음악은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이를 되찾기 위해 쓰인다.

  한순간의 행동이 부른 영원한 이별 
  오르페우스 신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을 고르자면 그의 연인 ‘에우리디케’다. 원정에서 돌아온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하지만 머지않아 에우리디케는 뱀에 물려 죽고 만다. 슬픔에 빠진 오르페우스는 지하 세계로 내려가 에우리디케를 돌려달라 하기로 결심한다. 살아있는 오르페우스가 과감히 죽은 자들의 세계로 내려가는 모습은 그가 에우리디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여준다.

  그는 음악으로 뱃사공, 지하 세계의 입구를 지키는 케르베로스와 세 명의 심판관을 감동하게 함으로써 마침내 지하 세계의 왕 하데스와 왕비 페르세포네를 마주한다. 오르페우스가 부른 간절한 노래에 감동한 하데스는 에우리디케를 지상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허락한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지하 세계를 빠져나갈 때까지 뒤따라오는 에우리디케를 절대 돌아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조건을 받아들인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이를 보고 싶은 욕구를 참고 지상을 향해 걸어갔다. 지상을 향해 발을 내디뎠을 때 마침내 그는 뒤를 돌아봤다. 에우리디케의 발은 아직 지하 세계에 머무른 채였다. 결국 그녀는 지하 세계 속으로 사라져버렸고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다시 볼 수 없었다.

  하데스가 요구한 ‘뒤를 돌아보지 말 것’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오르페우스 신화에서 죽음은 땅의 영역과 명확히 분리돼 있는데, 여기서 죽음이 삶과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한 고대인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본 행위는 죽은 자들의 침묵을 방해한 것이며 고대인들은 이를 신성모독이라 여겼다고 한다. 최혜영 교수(전남대 사학과)는 그리스 신화 속 ‘보다’의 의미에 담긴 중요성을 설명했다. “고대에는 어떤 사람이 보면 안 되는 것을 봤을 때 불경죄로 눈이 머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보는 행위가 신성모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죠.”

  김기훈 강사(서울대 서양고전학전공)는 인간이 가진 믿음과 신념의 불완전함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했다. “오르페우스 신화에서 ‘뒤돌아보는’ 행위는 일종의 규약을 깨버리는 상황입니다. 이는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나약한지를 시사하며, 반대로 신앙이나 신념을 유지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죠.”

  오르페우스의 리라는 멈추지 않는다 
  현대에 오르페우스 신화는 <흑인 오르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그리고 뮤지컬 <하데스타운> 등 다양한 문화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오르페우스 신화가 예술계에서 주목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최혜영 교수는 오르페우스가 감성적인 영웅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오르페우스 신화에는 사랑과 이별 등 공통적으로 인간의 깊은 곳을 건드리는 소재가 많아요. 감성을 자극하는 예술작품을 만들기에 적절하죠. 또한 잃어버린 사랑에 대해 아쉬워하고 누군가를 끔찍이 사랑하는 그의 모습이 예술화하기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영기 교수(다빈치교양대학)는 오르페우스와 그의 노래에 담긴 의미 때문에 예술에서 그의 신화를 끊임없이 소환한다고 말했다.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본 순간 에우리디케가 사라지는 모습은 물질적으로 붙잡았다고 믿는 순간 사라지는 꿈의 환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는 예술의 속성을 의미하기도 해요. 또한 에우리디케를 잃은 후 부르는 오르페우스의 음악은 죽어 사라진 존재들을 위한 애도의 노래이기도 하죠.” 오르페우스는 더 이상 흥을 깨버린 사람이 아니다.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위대한 음악인이자 비극의 주인공이다. 오르페우스가 죽은 후 그의 리라는 하늘로 올라가 거문고자리가 됐다고 전해진다. 밤하늘의 거문고자리를 보며 귀를 기울여보자. 오르페우스의 슬픈 음악에 눈물이 차오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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