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또는 들어서 알고는 있는데 자세히는 알지 못했던 예술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그럴 땐 키워드로 보는 예술 사전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요. 이번 주 사전을 넘기는 손은 키워드 ‘신화’ 앞에 멈췄습니다.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신들의 이야기, 세계인이 열광하는 그리스·로마 신화, 그리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사랑이야기까지. 신화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럼 우리 함께 아름답고도 신비한 신화를 한번 파헤쳐 봅시다! 최수경 기자 petitprince@cauon.net 

「신들의 회의」, 라파엘로 산치오, 1517.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12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신들의 회의>, 라파엘로 산치오, 1517.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12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신탁의 애매함, 
어쩌면 아폴론의 의도일지도 
미래를 아는 것이 
인간을 망칠 수 있기에 
gnбthi seauton! (너 자신을 알라) 

초록색 원 바탕에 여인 얼굴을 한 모습, 길을 거닐면 흔히 볼 수 있는 로고다. 세이렌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진 스타벅스의 로고. 인어의 모습을 한 그리스 신화 속 바다요정 세이렌의 노래는 그 노래를 듣던 선원들이 갑판에서 뛰어내려 빠져 죽을 만큼 아름다웠다고 한다. 언뜻 보면 허무맹랑하며 고리타분한, 오래된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우리 삶 전반에 신화가 남긴 자국은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됐다. 신화, 이토록 인간을 매료시키는 힘은 어디에 있는 걸까.

  신(神)화 그러나 초점은 인(人)간
  신화는 단순한 이야기라는 영역을 넘어 인간의 기원을 돌아보게 한다. 최혜영 교수(전남대 사학과)는 긴 세월에 걸쳐 인간이 상상했던 온갖 신기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신화에 수없이 숨어 있다고 이야기했다. “신화를 뜻하는 그리스어 미토스(mythos)는 모든 종류의 이야기를 의미해요. 신화는 우리의 무의식에 켜켜이 내려앉아 있는 인류 역사의 앙금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집단 무의식과 인간 의식의 원형을 담는다고 보기도 하죠.”

  김기훈 강사(서울대 서양고전학전공)는 세계를 이해하고 알아가려 했던 유한한 인간의 노력과 기억이 원초적으로 모여 이룬 집단 서사가 바로 신화라고 정의했다. “국가와 민족의 건국 신화에는 오늘날 결코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과거 미지의 것 또는 불완전한 앎의 부분을 채워줄 만한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신화는 불완전한 현실을 메워 주기도, 역사와 과학의 한계점에 있는 영역에 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도 하죠.”

  과학적 지식이 부재하던 머나먼 과거 속 인간은 상상으로 만물을 설명했을 것이다. 김헌 교수(서울대 인문학연구원)는 신화의 존재 이유를 논했다. “인간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기 전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신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탄생한 이유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인간은 어떻게 태어났는지 등 아주 원초적인 물음에 답하려는 노력에서 신화가 생겼죠. 그렇지만 신화는 나름의 진리를 갖고 있어요. 세상을 조명하고 인간의 상상을 반영하는 상징과 은유에 이야기를 덧붙인 거죠.” 그래서일까. 그리스, 로마, 아프리카, 중국, 중남미, 페르시아 등 세계 곳곳에 수많은 신화가 존재한다.

  한국의 신화 유형에는 건국·창세신화가 있다. 익숙한 건국신화로는 단군신화, 주몽신화가 있으며 창세신화에는 창세가, 천지왕본풀이, 시루말 등이 존재한다. 김나영 교수(성신여대 교양교육대학)는 두 신화가 갖는 의의를 설명했다. “건국신화는 역사적인 건국 영웅을 신성한 존재로 격상시키며 국가적 정당성과 독립성을 확보하도록 해요. 창세신화의 중요한 맥락은 어둠과 혼돈에 싸인 우주와 인간 세계에 질서와 생명을 부여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발 딛고 경험하는 세계의 근원을 밝히는 데 있고요.”

  그리스·로마 신화와의 만남
  고대 그리스에서 발생해 로마제국으로 이어진 그리스·로마 신화는 역사적으로 서양 문명뿐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신들의 왕 제우스, 신들의 여왕 헤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태양의 신 아폴론, 바다의 신 포세이돈 등 그리스 신화의 중심인 올림포스 12신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하게 다가온다.

  김기훈 강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로마 신화에 열광하는 이유에 관해 이야기했다. “다른 문명권 신화가 미약해서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유럽 대륙이 누려온 권위와 지위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널리 퍼뜨렸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재미있고 다양하며 정교한 이야기가 많다는 점이 오늘날 흥미로운 읽을거리로 자리한 이유가 아닐까 해요.”

  제우스가 자신이 지배하는 세상의 중심이 어딘지 알아보기 위해 세계 양쪽 끝에서 독수리 두 마리를 날리자, 델포이에서 다시 만났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이 세계의 배꼽으로 여긴 델포이에는 신이 인간에게 지혜를 줬던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이뤄진 신성한 지혜를 ‘신탁’이라 일컫는다. 차영길 교수(경상국립대 역사교육과)는 신탁을 그 시대 나름의 미래예견 방식으로 간주했다.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것을 ‘테오스(theos)’, 즉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신에게 묻는 형식을 취한 것이 신탁이에요. 물론 답은 사제들이 하죠. 듣는 이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여지가 있기에 신탁의 답은 대부분 비유적이고 애매해요.”

에코와 나르키소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1903. 복수의 여신이 내린 벌로 나르키소스는 샘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깊이 사랑에 빠져버렸다. ‘자기애’를 뜻하는 나르시시즘은 여기서 유래했다.
<에코와 나르키소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1903. 복수의 여신이 내린 벌로 나르키소스는 샘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깊이 사랑에 빠져버렸다. ‘자기애’를 뜻하는 나르시시즘은 여기서 유래했다.

  선명한 자취, 분명한 위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나르키소스는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깊은 사랑에 빠져 그를 따라 물속으로 들어가 숨을 거둔다. 우리가 사용하는 ‘나르시시즘’이라는 단어가 이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김기훈 강사는 달력에 표기된 매월의 영문 표기에서도 그리스·로마 신화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1월은 두 얼굴을 가진 로마의 신 야누스(Janus)의 이름에서 비롯했고 3월은 전쟁의 신 마르스(Mars, 그리스 신화의 아레스)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에요. 그 밖에 태양계의 천체와 별자리 이름도 대체로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명칭을 갖고 온 것들이죠.”

  최혜영 교수 역시 그리스·로마 신화가 우리 생활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고 말했다. “문학, 그림, 건축, 학술·생활언어, 영화산업이나 상품브랜드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로마 신화는 수많은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됐어요. 유럽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도 그리스·로마 신화의 배경을 모르면 수박 겉만 맛보고 오기 십상이죠. 그리스·로마 신화 소재는 스타벅스의 세이렌이나 나이키 로고 승리의 여신 날개처럼 상품 로고나 브랜드에도 쓰여요.” 그리스·로마 신화가 관심과 인기를 끌게 되는 선순환 구도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신들의 이야기인 듯 보이는 신화, 결국 인간을 향한 이야기였다. 김나영 교수는 신화가 결코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이야기가 아닌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라는 입장이다. “신화는 본질적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인간의 세계를 그려내요. 신화의 내용이 우리 모습과 닮아있다고 느끼며 순리를 역행하는 행동이 어떠한 불행을 가져오는지 다시금 깨닫죠. 인간이 마주한 거대한 세계 앞에서 겸손을 배우기도 하고요.” 사랑과 환희, 애달픔과 고통이 모두 담긴 신화는 사실 뜨겁고 치열했던 우리 삶의 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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