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능력주의’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능력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공정한 경쟁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고, 타인보다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경쟁에서 낙오되는 사람들의 모습이 생각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능력주의의 문제점은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 체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급부상하기 시작했는데요. 과연 우리 근처에 놓여있는 능력주의는 어떠한 양상을 띠고 있을까요? 능력주의의 모습을 한번 탐색해봤습니다.

일러스트 윤국화
일러스트 윤국화

능력주의가 학력주의로 자리 잡다
결국 운의 요소가 수반되는 능력

평가방식에 관한 재고 필요해
“능력주의 논의 시급하다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한정된 재화를 얻기 위한 경쟁은 불가피하다. 결국 많은 이가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는 과정에 동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이때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바로 능력주의이다. 그러나 최근 능력주의가 완벽하고 공정한 해결책인지에 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능력주의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점을 한번 짚어봤다.

  능력을 우선하는 사회를 꿈꾸다
  능력주의는 근대에 자리 잡았던 초기 민주주의의 이상이었다. 미국 독립선언문 초안을 작성한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능력주의를 사회적 이념으로 정립했다. 그는 중세의 신분 사회 질서와 봉건 제도를 타파하고 능력 있는 자들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를 꿈꿨다.

  이후 1958년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그의 저서 『메리토크라시의 부상』에서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라는 표현을 쓰면서 능력주의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메리토크라시는 귀족 정치나 부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른 정치 사회 체제를 의미한다. 해당 용어의 핵심은 태어난 배경이나 재력이 아닌 스스로 창출하거나 기여한 업적에 따라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메리토크라시의 핵심을 포함한 능력주의와는 달리, 한국에서 능력주의는 다르게 통용되는 경향이 있다. 신광영 명예교수(사회학과)는 그 사례로 학력을 언급했다. “학력과 관계없이 일의 결과물만을 평가하는 게 능력주의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학력도 능력으로 여깁니다. 시험과 이력서에 적는 스펙을 통해 개인의 역량을 결정하기도 하죠.”

  우리가 알던 능력과 평가는 어디에
  현재 우리 사회는 능력주의를 가장 공정한 분배수단으로 여기는 추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능력주의에서 평가하는 ‘능력’은 온전히 개인의 노력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특히 운에 따라서 능력이 부여되기도 하는데 이를 생각하지 않고 함께 평가하는 게 과연 공정하냐는 의문도 있었다.

  박남기 교수(광주교대 교육학과)는 운 좋게 얻은 능력 전부를 스스로 성취해낸 것이라고 착각하는 부분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능력은 대부분 운에 의해 결정됩니다. 실력은 타고난 능력이라는 우연적인 요인에 의해 크게 좌우돼요. 다음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집념과 끈기이며 이는 타고난 요인에 해당하죠. 나머지는 부모님 밑에서 좋은 선생을 만나는 것이 있는데, 이는 이미 상당히 주어진 것들이에요.”

  김누리 교수(독일어문학전공)도 이와 비슷한 의견을 얘기했다. “사실 능력 중 많은 요소는 내가 태어난 나라와 집안, 부모의 유전적 요인, 사회적 요인 등에 의해 이뤄져요. 한 개인의 노력에 의해 결정되는 건 많지 않다고 봐야 하죠.”

  권상집 교수(한성대 기업경영트랙)는 위와 같은 이유로 우리 사회가 능력주의에 과도하게 몰입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는 의견을 전했다. “능력주의를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는 건 큰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이가 동일 선상에서 출발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능력이 전부 그 사람의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능력주의의 필요성을 과도하게 말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 되돌아봐야 합니다.”

  우리 사회 속 능력 그 이상을 평가하는 상황에서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가 합당한 것인가’에 관한 의구심도 제기됐다. 권상집 교수는 현재 능력 측정 지표가 개인의 다양한 능력을 평가하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전했다. “우리는 지금 사람의 배경을 토대로 사람이 가진 능력을 계산하고 있습니다. 스펙과 학력을 살펴보는 일이 바로 그것이죠. 그러나 건강한 능력주의를 추구하려면 그 사람이 평소 어떤 상상력과 사고력을 가졌는지 등을 넓게 살펴볼 수 있어야 해요.”

  신광영 교수 역시 단순한 시험과 정량화된 스펙으로 개인 역량을 측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시험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사람들이 보통 능력자로 여겨지고 있어요. 그러나 시험은 여러 가지 능력 중 극히 일부분이죠. 통합적 능력과 리더십 등은 평가하지 않고 필기시험만으로 능력자를 구분하는 게 문제입니다.”

  이어 그는 이러한 줄세우기식 평가가 자칫 소득 불평등의 세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시험을 봐야 하고, 이로 인해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력과 스펙 등과 같은 지표는 대체로 비용이 많이 듭니다. 해당 사안을 향한 부모의 관심과 정보가 필요하기도 하죠. 그래서 빈곤층 자녀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놓일 수밖에 없어요. 계층 상승 이동이 어려워지는 거죠.”

  우월하다는 착각 속에서
  각자가 지닌 능력을 평가했다는 명분으로 인해 누군가는 우월감에 빠지고, 또 누군가는 좌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김누리 교수는 능력주의가 공동선을 해치고 개인의 정체성을 해친다고 말했다. “능력주의로 인해 서로 연대하지 못하고 승자 독식과 각자도생이 만연해진 사회가 돼버렸어요. 그게 바로 사회의 공동선을 파괴했다는 근거입니다. 출신 대학 등이 개인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죠.”

  권상집 교수는 ‘오로지 개인의 노력으로 능력을 얻었다는 착각’이 경쟁에 뒤처진 사람들을 향한 편견을 유발한다고 전했다. “경쟁에서 승리한 이들은 오직 본인의 노력만으로 성공을 거뒀다고 오판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생각은 능력이 부족하다고 낙인찍히는 사람을 만들죠. 또한 낙인이 찍힌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으로 치부되고 차별적 대우를 받게 됩니다. 능력주의가 과도하게 확산할수록, 이런 인식의 격차는 훨씬 벌어질 거예요.”

  신광영 교수는 지금의 능력주의가 일부 최상위층을 제외한 나머지 구성원들이 열등감을 느끼게 만든다고 언급했다. “현재 상황을 살펴보면 1%의 성공과 99%의 패배로 사람들이 구분되는 것 같아요. 능력주의 과열로 개개인이 일편적 기준을 통해 끊임없이 남과 비교를 당하죠. 이에 사람들은 낭패감에 빠지게 되고 자살도 많이 일어나는 사회가 돼 버렸어요.”

  능력주의 세상을 마주한 이들
  평가의 단상에 놓인 학생들은 현재의 능력주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심태용 학생(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1)은 대학 입시 과정에서도 능력주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상위권 대학이라는 말 자체가 학벌을 제일 큰 능력으로 취급하는 사회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지방대를 향한 인식이 이를 방증하죠.”

  이어 그는 단편적인 잣대로 능력을 평가하는 현재의 능력주의가 사회적 편견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려하기도 했다. “사회는 매우 다양하고 그만큼 여러 가치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환경의 다양성을 경시하고 오로지 보편적인 능력만을 추구하고 있어요. 당장 입시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게 곧 능력이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어요. 더불어 공부 외 다른 능력들은 공부보다 낮은 능력으로 평가되고 있죠.”

  김선재 학생(경영학부 2)은 대한민국의 과도한 능력주의가 여러 사회적 구조를 정당화한다고 비판했다. “최근 ‘그런 부모 아래 태어난 것은 네 탓’, ‘강남에서 태어난 것도 능력’이라는 말을 종종 듣게 돼요. 능력주의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사회 통념으로 자리를 잡아갈 때, 사회의 여러 구조를 모두 정당화하는 것 같아요. 어떠한 검증을 거칠 필요가 없게 된 겁니다.”

  심태용 학생도 이와 비슷한 의견을 피력했다. “현대 사회에서 능력주의를 비판하려면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주로 능력주의를 얘기하는 이들은 대부분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이죠. 우리 사회는 해당 구조에서 벗어나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계층을 혁파하기 위해, 그리고 노력을 통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 사람들이 더욱 결과를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능력주의는 시작됐다. 그러나 능력주의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능력주의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뱃머리를 틀기 위해서는 건강한 사회적 논의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일러스트 윤국화
일러스트 윤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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