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함경북도 무산에서 온 한세인입니다!
  • 백경환 기자
  • 승인 2021.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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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출신 중앙대생, 한세인 학생 인터뷰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기도 바쁜 일상이지만 잠시 주변을 둘러보세요. 당신의 손을 잡아줄, 당신이 손을 잡아줄 이들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이번 학기 여론부는 당신과 손을 마주 잡고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이번 주 우리가 함께할 당신은 ‘북한이탈주민’입니다. 북한이탈주민은 먼저 온 ‘미래’이자 먼저 온 ‘작은 통일’이라고 불립니다. 중앙대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작은 통일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북한 출신 중앙대생 한세인 학생(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4)과 이야기를 나누고, 북한 출신 대학생들에게 어떤 손길을 내밀어야 할지 고민해봤습니다.

중앙대 서울캠 정문에서 ‘손 하트’를 만들고 있는 한세인 학생의 모습이다. 한세인 학생은 졸업을 앞두고 있다. 사진제공 한세인 학생

“지금껏 제 삶에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북한을 떠나기로 한 결정과 대학교에 입학한 일이에요. 중앙대를 오기 전과 후 제 삶은 많은 게 바뀌었어요. 제가 알고 있던 조그만 세상은 대학을 만나면서 크게 확장했죠. 다양한 수업을 통해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어요. 중앙대는 제가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해준 소중한 모교랍니다.”

9월 말 입국자를 기준으로 지금까지 국내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은 약 3만3800명에 육박합니다. 중앙대에도 북한 출신 학생들이 있습니다. 10월 1일 기준으로 중앙대 서울캠에 15명의 북한 출신 학생이 재학 중입니다. 이와 더불어 서울캠과 안성캠에 각각 6명과 1명의 북한 출신 학생이 휴학 중이죠. 현재까지 중앙대를 졸업한 북한 출신 학생은 총 34명입니다. 상대적으로 소수이더라도 이들은 우리 곁에 엄연히 존재하는 중앙대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세인 학생(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4)은 함경북도 무산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19살에 북한을 떠나 대한민국 사회에서 20살을 맞이했죠. 넓은 ‘세’상을 경험하는 ‘인’물이 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스스로 ‘세인’이라는 이름을 붙여 대한민국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세인 학생은 머나먼 여정을 건너 우리 곁에 찾아왔습니다. 한세인 학생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마음속에 품고 있을까요? 북한이탈주민이라는 막연하고 낯선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친근한 이웃이자 동시대 청년으로서 한세인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북한에서의 삶은 어땠나요? 

  “생계를 위해 부모님이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어 장사를 하셨어요. 북한에서 부모님은 행방불명 처리됐고 저 또한 북한 당국의 감시 대상이 됐죠. 친구들이나 학교 담임 선생님까지 저를 감시했어요. ‘조국 배반자의 자식’이라는 낙인이 저를 항상 따라다녔죠. 행방불명자의 자식이었던 저는 아무런 꿈도 꿀 수가 없었어요. 정해진 직업을 갖고 일찍 결혼하는 것이 운명이었죠.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 시기 무렵 직장에서 배척당하는 일이 있었어요. 북한 사회에서의 낙인을 실감하고 북한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답니다. 부모님이 계시는 대한민국에 가서 자유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향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언제인지 궁금해요. 

  “제 고향은 함경북도 무산입니다. 고향을 떠난 지 약 8년이 지나가네요. 저는 깊은 시골에서 살았는데요. 동서남북이 전부 나무로 가득해서 공기도 맑고 풍경이 참 아름다웠답니다. 만개한 꽃, 돋아난 파란 새싹, 눈꽃이 너무 예뻤던 기억이 나요.(웃음) 계절이 바뀌거나 명절에 고향 생각이 많이 납니다. 특히 이맘때쯤 가을이 찾아오면 고향이 무척 그리워져요. 가을걷이 시기에 농촌 동원을 하면서 친구들과 교감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던 기억이 떠오르죠.”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에 진학한 계기를 듣고 싶어요. 

  “북한은 TV 채널이 하나밖에 없어요. 24시간 TV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청 가능 시간이 딱 정해져 있죠. 근데 그것도 전기 사정이 안 좋다 보니까 전기가 들어올 때 가끔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대한민국에 딱 오니까 채널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전기가 끊기지 않아서 24시간 동안 다양한 예능과 영화, 뉴스 등을 볼 수도 있죠. 

  2년 가까이 우울감에 빠져 살았던 때가 있었어요. 대한민국 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을 향한 차별도 조금 있고 시선이 안 좋잖아요. 밖을 안 나가고 대인관계를 다 끊었죠. 그런 상태로 집에서 항상 TV 리모컨을 들고 있었어요. 예능 프로그램이 참 재밌는 거예요. 거기서 힘을 얻고 꿈을 찾았어요. 나중에 남북한이 통일됐을 때, 남북한 주민 전체가 어우러져서 공감하며 시청할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죠. 그래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를 목표로 입시를 준비해 중앙대 학생이 됐답니다.” 

  -중앙대에 입학해서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었나요? 

  “막 입학을 했을 때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우울감에 젖어 있었고 자존감이 아주 낮았어요. 항상 주눅 들어 있고 자신감도 없었죠. 한 수업에서 제가 눈도장을 찍고 싶어 북한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자기소개를 했더니 학과에 소문이 났어요. 근데 막상 가까이하려는 친구들은 없더라고요. 그때부터 더더욱 주눅이 들어서 학과 친구는 별로 못 사귀었어요. 학과 외로는 중앙대 통일외교안보동아리 ‘한반도미래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한 적이 있어요. 사교 모임 등에 종종 참여해 동아리에서 여러 친구를 알게 됐죠.” 

  -캠퍼스에서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310관(100주년기념관) 대운동장 앞에 있는 공원을 가장 좋아해요. 저는 공강 시간에 그곳에 누워서 자기도 했거든요. 여러 국적의 학생들이 저처럼 그곳에 와서 시간을 보내더라고요. 그곳에 앉아 있으면 오고 가는 다양한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청룡연못 주변도 좋아해요. 어떤 방해도 없이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지면 청룡연못 주변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죠.” 

310관(100주년기념관) 대운동장 앞에 있는 공원은 한세인 학생이 캠퍼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사진제공 한세인 학생

  -학교에 적응하는데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서강대나 한국외대 같은 경우에는 북한 출신 학생이 많아 관련 동아리나 지원이 좀 활발하다고 들었는데요. 중앙대는 그런 측면이 부족해서 혼자 정보를 얻고 헤쳐나가야 하는 게 많아 어려웠죠. 그리고 입학 초창기에는 제가 사투리가 심했어요. 억양을 듣고 이상하게 쳐다보는 학생들도 있었죠. 저는 북한 출신임을 먼저 드러내는 편인데요. 저를 소외시키는 분위기가 느껴질 때 가장 힘들었어요. 친해지고 싶어서 저를 오픈한 건데 오히려 저를 멀리하는 반응들이 굉장히 당황스럽고 힘들었답니다.” 

  -북한 출신임을 밝히는 일이 두렵지는 않나요?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라는 생각에 오픈하는 것 같아요. <ACT>를 수강할 때 팀원들에게 ‘북한 출신이라 사투리도 있고 남한어에 서툴다. 모르는 단어를 물어보면 편하게 알려달라’고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어요. 못 알아듣는 말을 그냥 아는 척하고 넘기면 나중에 어려워지잖아요. 이해하고 넘어가면 그 말을 배우는 거고요. 단점도 물론 있죠.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는 저를 경계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장점이 더 크다고 느껴집니다.  

  자존감도 낮고 위축돼있던 대학교 입학 초반과 달리 지금은 스스로 당당해졌어요. 저는 자유를 찾아 이 땅에 와서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이에요. 북한 출신인 것이 잘못은 아니죠. ‘그게 뭐 어때서’라는 생각을 가지니까 자신감도 생기고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가능성을 제한했던 부정적 생각도 많이 해소됐어요.” 

  -수업을 듣고 공부하는 데에도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저는 북한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어요. 북한은 주입식 교육이 심해요. 이미 정해져 있는 질문과 정답으로 시험을 보죠. 중앙대에 입학하고 보니 문제를 선택할 수도 있고 다양한 답이 나올 수도 있더라고요. 그런 차이가 크다 보니까 어려움을 좀 느꼈죠.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는 외래어를 많이 사용하잖아요. 영어 자체도 탄탄하지 않은 상태에서 외래어를 이해하려고 하니까 더욱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고 싶어요. 

  “교수님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하니까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1학년 1학기에 성적이 바닥을 쳤죠. 너무 충격을 받아서 2학기부터는 도서관에 가서 밤새도록 공부했어요. 모든 내용이 전체적으로 어렵다 보니까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몇 번씩 반복해서 읽고 공부했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그냥 훑어봐도 어느 정도 이해가 돼요.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외래어가 익숙해진 측면도 있죠.” 

  -대한민국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떤 생활 경험들이 도움이 됐나요? 

  “식당, 공장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남자친구를 사귀었던 것도 도움이 됐죠.(웃음) 대한민국 문화를 이해하고 사회에 적응하는 데 연애가 큰 영향을 끼쳤던 것 같아요.” 

  -대한민국에 오고 난 후 달라진 삶의 모습이 궁금해요.  

  “생각할 수 있는 진로가 무척이나 넓어졌죠. 옷을 입는 사소한 일상부터 삶 전반이 크게 달라졌어요. 여러 나라로 여행을 갈 수도 있고 동영상을 제작해서 세계인들과 소통할 수도 있죠. 졸업 후에는 영어 공부를 하러 몇 년간 해외로 떠날 생각이에요. 해외 경험을 ‘브이로그(일상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서 제 유튜브 채널에 올릴 계획이랍니다.” 

  -유튜브 활동을 활발히 하는 이유가 있나요?  

  “북한이탈주민이라고 하면 김정은과 핵을 자꾸 연결시켜서 보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이런 시각을 분리해 북한이탈주민에 관한 인식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어서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유튜브 채널에서 북한이탈주민 청년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VIVA 청춘 다이어리> 시리즈에도 참여 중인데요. 제 이야기를 다양한 사람들과 나누면서 공감과 힐링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중앙대 학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본인을 숨기는 북한 출신 학생을 알고 있다면 먼저 다가가서 얘기를 걸어주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중앙대 유학생들 많잖아요. 그들처럼 북한 출신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줬으면 하죠. 우리 모두 고향도 성격도 나이도 다르잖아요. 북한 출신이라는 점도 그냥 그런 개성 중 한 가지로 여기고 이웃이자 친구로 친근하게 바라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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