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성장 입시분석기의 모습. 학생들은 대학 합격 가능성을 따져보기 위해 입시분석기에 점수를 입력하고 스스로 대학 입학을 위한 줄을 선다.
고속성장 입시분석기의 모습. 학생들은 대학 합격 가능성을 따져보기 위해 입시분석기에 점수를 입력하고 스스로 대학 입학을 위한 줄을 선다.

능력주의가 공정하다는 ‘착각’
보이지 않는 손에 놀아난 ‘능력’  

한국의 독특한 능력주의 있기도
여러 요인이 모여 문제점 야기해

능력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 세상. 정말로 능력주의 세상은 그럴까? 앞선 기사에서 우리가 살펴본 능력주의의 실상은 조금 달랐다. 왜 능력주의는 현재 사회 문제의 온상이 된 것일까? 

  “능력주의가 공정하다고 생각해?” 
  능력주의는 학생들의 교육부터 직장 생활까지 우리 일상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정태연 교수(심리학과)는 능력주의가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데에는 사람들의 ‘공정’을 향한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정의에 대한 욕구가 강해요. 물론 때때로 이기심이 발현되기도 하지만 공정하지 않은 것을 보고 그냥 넘어가지 못하죠. 이런 사람들의 심리가 능력주의에 관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력을 잣대 삼는 일이 공정성을 더욱 훼손하게 되며 이러한 현상이 능력주의 문제점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권상집 교수(한성대 기업경영트랙)는 능력주의를 ‘노력’의 관점에서 설명한 것이 문제의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고위층은 능력주의를 노력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능력주의의 정당성과 공정성만을 언급한다면 사회 부조리와 인맥으로 얽힌 폐단 문제 등에 둔감해지죠. 이는 공정성을 더욱 훼손하는 문제를 만듭니다.” 

  김선진 교수(경성대 디지털미디어전공)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평등의 기준이 과정과 기회 평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능력주의의 공정성을 저해한다고 언급했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평등의 기준은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과정과 기회의 평등’에 머물러 있어요. 능력주의가 평등에 기초하면서도 불평등을 초래하는 근본적 원인입니다. 특정 목표에 접근할 기회가 공평했는지, 능력에 따라 결과를 제대로 분배했는지 만을 문제 삼는다는 것이죠.” 과정이 ‘공정’했다고 간주하면 결과의 ‘불평등’은 수용한다는 말이다. 

  순수하지 못했던 ‘능력’이란 지표 
  입시·교육제도와 성과급 제도는 대표적으로 능력주의에 입각한 제도이다. 김누리 교수(독일어문학전공)는 학력 사회를 언급하면서, 지속되는 줄 세우기식 평가가 개인의 정체성을 왜곡하고 있다고 짚었다. “우리 사회는 학력 능력주의 사회입니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가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하죠. 출신 대학이라는 단면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재단하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다시 말해 이런 줄 세우기가 개인의 정체성을 파괴해버리는 능력주의의 폐단을 부추긴다는 것이죠.” 

  능력주의 사회에서 ‘능력을 측정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평가 지표’가 문제점으로 언급된 바 있다. 해당 문제가 지속되는 이유로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순수한 능력’을 내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있었다. 윤인진 교수(고려대 사회학과)는 집안 배경 등을 중심으로 하는 과거의 평가 기준이 남아있기 때문에 해당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아직 우리는 순수하게 개인에 기반하지 않고 이전부터 우리 사회가 가진 관계 중심적 기준에 의해 능력을 평가합니다. 이는 능력주의의 오용이라고 할 수 있죠.”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제멋대로라는 문제점, 그 원인에는 무엇이 있을까? 권상집 교수는 능력의 기준에 관한 지표를 잘 고민하지 않고 엘리트 계층 위주로 기준을 고민했기 때문에 문제점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주로 엘리트 계층이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을 만들어요. 무엇이 건설적인 능력을 판가름할 수 있는 지표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말이죠. 이미 능력을 갖췄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생각만이 능력의 기준에 반영되기 때문에 문제가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K-능력주의가 나타난 이유 
  빠르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대한민국. 그러나 이는 능력주의 폐단의 반복을 부추기는 원인이기도 했다. 김선진 교수는 대한민국 역사가 능력주의를 부추겼다고 말했다. “제국주의 지배와 분단, 민족 간 전쟁 등 대한민국의 역사적 질곡을 경험하면서 국민들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됐다고 생각해요. 각자도생의 경험이 능력주의를 더욱 강화했다고 봅니다. 능력주의는 기본적으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기인한다는 특징이 있어요. 이를 통해 사회 구조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죠.” 

  또한 김누리 교수는 기성세대의 붕괴라는 대한민국의 독특한 역사적 배경이 능력주의를 만연하게 하는 데에 일조했다고 언급했다.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기성세대가 완전히 파괴돼 버린 나라예요. 양반 문화나 왕권이 한순간에 몰락했죠. 그 결과 대한민국은 평등 지향 사회가 됐고 이는 능력주의를 더욱 부추겼습니다.” 

  능력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능력주의가 가진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어도 이를 개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권상집 교수는 그 원인으로 능력주의가 획일화된 능력만을 기준으로 사회적 낙인을 찍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많은 학생이 다양한 사고력을 기르지 못하고 오로지 낙오되지 않기 위해 시험 준비와 스펙 마련에 몰두해요. 개인의 선천적 능력을 간과한 셈이죠.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을 게으르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낙인찍었기 때문에 능력주의 폐단의 교정을 막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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