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6일,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냈던 노태우가 향년 8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한때 대한민국 정계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이 점점 역사 속으로 스러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박정희와 같은 날에 사망했다는 사실에 또 묘했다. 

  언론에서는 ‘1노 3김’ 시대의 종말이라고 표현했다. 처음에는 3김에 노태우를 포함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치인들이 생을 마감하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 언론의 노력이 가상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들의 정치 행보에는 큰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지역주의’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노태우를 비롯한 김영삼, 김종필은 본인의 집권을 위해 3당 합당을 단행했다. 이들은 영남 패권주의를 고착화시켰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100년 이상 후퇴시켰다. 김대중도 지역주의를 통해 여러 번 재미를 본 인물이다. 1995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등권론’을 주장한 그는 민주당의 서울시장 선거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제 더 이상 지역주의는 유일한 선거 전략이 아니다. 지역 갈등뿐만 아니라 세대, 젠더 갈등을 포함한 여러 사회 갈등이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하게 발현하는 사회 갈등에 심도 있게 주목해야 할 시기다.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겠지만, 사회 갈등은 깨어있는 시민들 간 조직된 힘을 발휘해 대화와 타협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조직된 시민의 힘으로 대화와 타협을 거쳐 사회 갈등을 해결한 기억이 거의 없다. 시민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그림자는 갈등을 부추겨 표를 구걸하고 다니는 하이에나들의 그림자다. 하이에나들은 여전히 우리 가까이 있다. 젠더 갈등을 없애겠다는 명목으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페미니즘을 패밀리즘으로 만들겠다”고 두루뭉술하게 주장하는 이가 있다. 명확한 비전이 없다. 또 어떤 이는 “경제가 역성장해 여러 사회적 갈등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구시대적 생각을 말하기도 했다. 과연 우리는 이 말에 또 속아줘야 하는가. 

  또다시 1노 3김과 유사한 정치적 시대를 열 순 없다. 언제까지 시민 뒤에 자리 잡아 시민 간 갈등을 부추기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할 것인가? 우리는 하이에나들의 돈과 권력의 크기를 따라갈 수 없어 그들의 행태를 지켜보기만 했다. 심지어 그들은 사람까지 동원해 선거판을 뒤흔들려고 했다. 인터넷상에 보이는 닉네임들, 그들 중에 우리가 경계해야 할 하이에나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아빠 하이에나는 죽었고, 그 하이에나는 죽어서 자식 하이에나를 남겼다. 그렇기에 그들은 죽었지만 살아있다. 그들이 남긴 갈등과 분열의 정치 때문에 새로운 유형의 갈등과 분열 정치가 여전히 판을 치고 있다. 1987년 민주항쟁 그 이전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정치에 길들여짐에 따라, 우리는 진정 나라를 생각하는 순수함을 그들과 함께 망각했기 때문이다.

장민창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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