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콜하스 하우스라이프'의 보르도 주택을 관리하는 가정부 과달루페 아세도. 사진출처 다음 영화 '콜하스 하우스라이프'
영화 '콜하스 하우스라이프'의 보르도 주택을 관리하는 가정부 과달루페 아세도.
사진출처 다음 영화 '콜하스 하우스라이프'

몸이 불편한 공간 이용자를 위한 집. 근사하지 않은가. 이것이야말로 진정 공간 이용자를 고려한 건축이다. 『TIME』의 ‘1998년의 베스트 디자인’에 선정되기도 하고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훌륭한 건축물을 마치 목욕 당하는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벌거벗긴 작품을 소개하려 한다. 바로 영화 <콜하스 하우스라이프>다. 

  <콜하스 하우스라이프>에서는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가 설계한 보르도 주택을 주목한다. 주택은 교통사고 후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장 프랑스아 르무완느의 의뢰로 지어졌다. 르무완느는 신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휠체어를 타고 3층을 아우르는 공간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콜하스가 건물 내부에 3층 주택을 위아래로 관통하는 움직이는 방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규모가 꽤 컸으며 둘러싸고 있는 벽도 없다. 바닥이 상하층으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모양을 생각하면 된다. 르무완느는 이 방을 통해 자신의 의지대로 지하 부엌과 중간층 서재, 꼭대기 층인 침실까지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과달루페의 경쾌한 고발 
  언뜻 보면 르무완느를 위한 최적의 집이다. 하지만 <콜하스 하우스라이프>에서는 보르도 주택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난다. 주인공은 주택을 설계한 콜하스도, 설계를 의뢰한 르무완느도 아니다. 주택에서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가정부 과달루페 아세도다.  

  과달루페는 집 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관리하며 보르도 주택이 가진 문제점을 짚어낸다. 그렇다고 해서 분위기가 심각하거나 과달루페가 청소를 하며 필요 이상으로 투덜대지는 않는다. 경쾌한 음악과 담백한 영상, 그리고 유머러스한 과달루페의 푸념. 이 영화의 영상미는 여기에 있다. 

과달루페 아세도는 보르도 주택 구석구석을 관리하며 한계점을 조명한다.사진출처 다음영화 '콜하스 하우스라이프'
과달루페 아세도는 보르도 주택 구석구석을 관리하며 한계점을 조명한다.사진출처 다음영화 '콜하스 하우스라이프'

  “예전 같지가 않네요” 
  주택 내부의 장치들은 자꾸 고장을 일으킨다. 집의 전등과 문을 조종하는 조이스틱은 과달루페가 만지자마자 망가져 버리고, 보르도 주택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움직이는 방은 중간층 서재 책꽂이와 빈틈없이 맞닿아 있다. 책이 1권이라도 삐져나와 틈 사이에 끼기만 한다면. 움직이는 방은 먹통이 되기 일쑤다. 
주택이 너무 크고 넓어 과달루페가 청소하기도 쉽지 않다. 창문을 닦기 위해서는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 주택 맨 꼭대기 층의 천정은 유리인데, 유리를 닦으려는 인부의 사다리가 높이 올라간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사다리는 위태롭게 흔들리기까지 한다.  

  과달루페는 집에 쌓여있는 먼지를 청소하기 위해 청소기를 꺼내지만 무용지물이다. “청소기가 있어봤자 먼지를 다 못 털어서 쓸모가 없어요.” 커튼을 치려고 해도 팔이 닿지 않는다. 그녀는 빗자루로 커튼을 휘휘 젓는다. “제가 키가 크지 않은데 빗자루가 있어 다행이에요.” 힘겹게 묵은 때가 벗겨지는 보르도 주택의 모습은 근사하지만은 않다.  

  보르도 주택에 비가 내린다. 커튼이 휘날릴 정도로 바람도 분다. 유리 벽 사이로 비가 다 새어 걸레로 틈을 막는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받으려고 대야도 여러 개 놓았다. 마치 장마철 학교의 교실 창문 틈으로 새는 비를 막으려는 임시방편과 많이 닮았다. 학교는 잠시 머무는 곳이지만 비가 올 때마다 집에 비가 샌다면 퍽 난감하다. 촬영 감독이 묻는다. “유리가 깨졌나요?” 과달루페가 답한다. “그런 것 같네요. 저와는 무관한 일이지만요.” 구멍을 종이로 막으며 그녀는 말한다. “일이 끝이 없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랍니다 
  아무리 세계적이고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공간이라도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만큼 공간 이용자에게 완벽한 공간이 아니었다. 승효상 건축가는 좋은 건축이란 인간 삶의 가치를 날마다 새롭게 발견하게 하는 건축이라고 말한다. 

  영화 말미 주택에 땅거미가 지며 과달루페가 청소해 놓은 집에 주인 가족들이 들어온다. 과달루페와 사람들의 손길이 닿아 다시 화려해진 보르도 주택. 앞으로 지어질 수많은 보르도 주택들이 과달루페의 도움 없이도 보이는 것만큼 근사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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