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는 공간에 마침표는 없다
  • 이서정 기자
  • 승인 2021.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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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배재학당의 교실로 사용됐던 배재학당 동관. 개신교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변화한 한국 학교 건축의 새로운 모델을 잘 보여준다. 사진출처 문화재청
옛 배재학당의 교실로 사용됐던 배재학당 동관. 개신교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변화한 한국 학교 건축의 새로운 모델을 잘 보여준다. 사진출처 문화재청

인간을 담은 건축 
학생을 담을 학교  
 
학교 건축,  
일상의 기반 위에  
뿌리 내리길 

20세기 교육자들이 21세기 인재들을 ‘19세기 교실에서’ 가르치고 있다. 학생이 배우고 놀고 생활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 일상 속 깊이 자리한 만큼 학교 건축은 더 나은 방향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철저한 개선이 수반돼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양식이 기능주의를 넘어 공간 이용자를 중시하며 나아간 가운데, 학교는 그 흐름에 발맞춰 새로운 형태를 의미 있게 고안했을까. 한국의 학교 건축, 역사의 흔적을 돌아보며 나아가야 할 길을 읽어내보자. 

  파노라마 1 : 오랜 세월 속 학교는 
  조선 말기 사범학교관제와 소학교령이 공포되며 최초로 생긴 관·공립 소학교는 주로 기존 민가나 농가, 서당, 한옥식 관청건물의 모습이었다. 전통적 교육기관 건물을 부분적으로 바꿔 학교로 사용하기도 했다. 근대화 교육에 걸맞은 새로운 학교 건물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본격적으로 학교 건물이 변화했다. 특히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며 서구 건축양식이 한국 학교 건축의 새로운 모델로 등장했다. 1885년 배재학당과 1886년 이화학당 등이 그 예시다. 

  이러한 신학교 건축은 한국 건축기술을 발전시키는 계기로 역할했다. 기둥과 지붕 같은 주 구조체는 목조로 구성하고 외벽만을 벽돌로 포장함으로써 우리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급속한 변화를 주지 않는 한국과 서구의 절충식 형태를 구축했다. 

  1905년 을사조약을 체결하며 일본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한국에서는 일본식 건축 형태가 나타나기도 했다. 일본의 지배하에 한국을 완전히 병탄하고자 설치됐던 통감부는 목구조의 병영식 학교 건물을 지었다. 이때 일자형 학교 건물을 운동장과 수평으로 배치했는데, 이후 나란히 배열된 긴 두 건물의 중앙을 연결한 ‘工’ 형태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송하엽 교수(건축학전공)는 일제강점기 시대 한국 학교 건물이 반복성과 대칭성을 띤다고 이야기했다. “표준화된 관점에서 학교가 만들어졌기에 가운데 입구를 기준으로 비례적이고 좌우 대칭적이며 균형 잡힌 모습이 많이 보였어요. 건축 공법의 한계로 창문이 수직으로 조금 좁게 지어지기도 했죠.” 

  임시 건물 같은 초라하고 가벼운 학교 건축 환경에 전적으로 잠식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1910년경부터 새로 지어진 학교는 서양식 벽돌구조와 모임경사지붕 등 근대 건축양식의 모습을 띠었다. 이러한 학교 건축의 형태와 평면구성, 배치는 유교적 사고방식을 세계적 사고방식으로 전환하는 데 일조했다.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사립 중등학교의 건축물은 붉은 벽돌조의 서양 근대건축 사조를 띠며 세워져갔다. 어둡고 암울했던 시대에 학교 건축이 발전을 보였던 다행스러운 지점이다. 

  파노라마 2 :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더 
  제2차 세계대전 후 일제강점기가 막을 내리며 모더니즘 건축 사조 영향으로 한국 학교 건물은 큰 변화를 맞이했다. 과거에 구속되지 않는 근본적인 변혁을 목표로 한 바우하우스가 독일 바이마르에 설립되고, 이를 국제주의라는 이름 아래 재해석한 미국의 영향으로 한국에도 모더니즘 경향이 나타났다. 

  대표적인 예시는 서울대 농과대의 신관과 강당이다. 신관으로의 연결 통로가 강당을 가로지르도록 연출하고 형태가 대칭인 건물을 조절해 비대칭을 시도한 데에서 틀에 갇히지 않은 조형 방식을 엿볼 수 있다. 강당 남측면은 가운데와 좌측은 전면을 유리로 덮은 반면 우측은 일부만 유리창으로 돼 있다. 공간의 필요에 따라 콘크리트 벽면과 유리면을 자유롭게 배치해 비대칭성을 구축했다. 

  학교 건축에 있어 변화와 발전이 충분했느냐 묻는다면 그 대답은 ‘예’일까. 1952년 의무교육 실시로 학생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학교는 학생 수용에만 급급했다. 교육환경을 구축할 여유도 없이 급증하는 학생 수를 감당해야만 했던 것이다. ‘콩나물 교실’이라는 어른들 말씀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지붕과 벽체는 얇고 창문은 3mm 단창이며 틈새가 벌어져 거센 바람이 들어오기도 했다.  

  1960년 국민학교 시설 기준이 마련됐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학교 건축 공간 대비 학생 수의 비율이 5배를 초과하는 과밀학교 형태가 무려 30여 년 동안 지속됐다. 개선된 교육환경을 마련하지 못하고 여전히 경직된 붉은 벽돌조와 회색 콘크리트 건물만을 반복해서 지었다. 지역, 대지 조건,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동일하고 획일적인 설계도를 기반으로 부족한 교실만을 증축해나간 것이다. 

  파노라마 3 : 학생의 미소가 깃든 학교 건물 
  다른 모든 건축에서도 마찬가지겠으나 특히 학교 건축에서는 발걸음을 포개어 나아갈 대상이 분명 존재한다. 송하엽 교수는 학교가 학생의 자존감을 높이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선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입시 제도가 유연화되지 않는 한 다가올 학교 건물의 모습은 바뀔 수가 없어요. 미래 학교 건물은 학생이 자기 자신을 대량 생산 속 하나의 부품처럼 느끼기보다 자존감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적 환경으로서 역할을 해내야겠죠. 자유롭게 발언하고 서로의 찬반 의견에 관해서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질문을 잘 이끌어내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교육목표와 교수·학습 방법, 학생 개성 등을 고려한 학교 건축을 체계적으로 계획하는 것. 과거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지금의 우리는 수많은 건축물을 봐왔고 느껴왔으며, 경험해봤다. 내부와 외부의 무수한 길이 모여 하나의 길이 총체적으로 조직되고, 그곳을 거닐며 교사와 학생이 마주한다. 벽의 1차적 기능은 공간을 한정하는 것이지만 더불어 상황 및 시간의 변화에 따라 빛, 소리, 색, 질감 등 여러 감각을 달리 느끼게 하는 하나의 틀이 된다. 

  학교는 엄연한 교육환경이다. 교육환경을 교육 목적에 맞게 계획하고 구축해야 함은 당연하다. 이 당연한 이야기가 받아들여지기까지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흐지부지 흘러갔다. 이제 학교 건축은 어떤 길을 택해 나아갈 것인가. 그저 발자취를 이어가는 데 급급할 것인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 땅부터 파헤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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