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또는 들어서 알고는 있는데 자세히는 알지 못했던 예술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그럴 땐 키워드로 보는 예술 사전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요. 이번 주 예술 사전을 넘기는 손은 키워드 ‘공간’ 앞에 멈췄습니다. 아무것도 없기에 어떠한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공간, 우리 삶을 반영하고 있는 건축. 그리고 공간 이용자를 진정으로 고려한 건축에 물음을 던지는 예술작품까지. 우리 함께 공간을, 그리고 건축을 파헤쳐 봅시다! 최수경 기자 petitprince@cauon.net

길을 걸어보자. 학교, 아파트, 도서관 등 다양한 건물을 마주한다. 그 ‘공간’에서 인간은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다. 공간디자인에 따라 편리함이나 마음의 충만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공간디자인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건축’이다. 편리함을 추구하던 건축이 이젠 아름다움을 좇고 있다.

  관람료 0원의 작품 
  건축은 그 자체로 우리 눈에 보이기에 모두가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보기 좋은 건축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추억을 담는 과정을 통해 건축을 누구나 즐기기도 한다. 우리가 건축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건축물이 어떤 형태를 갖춰야 할까? 이민화 서울건축 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는 건물 성격에 따라 지향하는 목표가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교육기관은 창의력을 자극하고 실용적인 건물이면 좋습니다. 구조, 형태, 내외부 공간들이 인간 친화적인 건물이면 좋겠죠. 박물관과 미술관, 도서관 등은 구조의 심미성보다 건축물이 가진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은 독특한 형태로 관광객을 끌어모아 도시를 살리기도 했죠.”

  도심 속에서 삶을 쌓아 올리다 
  건축에서 아름다움을 고려하게 된 계기는 ‘모더니즘’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산업혁명 이후 건축은 도시·기계화에 따른 대량생산 체제와 기술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 흐름에서 1920년대에 모더니즘 건축이 탄생했다. 이관직 교수(고려대 건축학과)는 모더니즘이 건축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열었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되고 부유해지면서 문화 수준과 기대치가 올랐다고 생각합니다. 건축가들 사이에서 새로운 양식을 발견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이 생겼고 모더니즘 건축과 관련된 운동이 일기 시작했죠. 그 새로운 양식이 사용자와 감상자에게 놀라움과 즐거움을 줬으며 심미적 관점으로 보는 시각을 열어준 것입니다.”

  모더니즘 건축은 건축이 산업제품처럼 기능성을 갖춰야 한다는 ‘기능주의 원리’를 따랐고 이 원리를 바탕으로 실용·경제적인 공간이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강철과 콘크리트,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고층건물이었다. 모더니즘은 기능적인 부분과 결합해 ‘국제주의’라는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냈다. 김중업 건축가가 지은 ‘삼일빌딩’은 국제주의 양식의 영향을 받은 대표 사례로, 한국의 근대·산업화를 상징하는 초고층 건물이다.

  국제주의 양식이 등장한 후 단순하고 획일화된 형태의 빌딩과 건축물이 만들어졌다. 다양한 색채나 역사의 상징성은 나타나지 않은 채 건축가의 자유로운 표현과 상상력이 상실된 것이다. 이에 반발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부정하기보다 현대 기술을 바탕으로 복고적인 기호와 상징을 활용했다. 과거를 향한 향수를 통해 대중의 감성에 부합한 건축을 시도했고 전통과 역사를 복귀시키려 했다.

  이후 불규칙하고 복합적으로 작품을 표현하는 ‘레이트(late)모더니즘’이 나타나면서 파격적인 구조와 재료를 선보인 건축이 주목을 받았고 ‘해체주의’가 탄생했다. 이렇게 공간 변화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다채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현대건축 흐름이다.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 건축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영향을 받은 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민화 대표이사는 80~90년대에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한국 건축을 풍미했다고 바라봤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도 당대 건축 디자인에 관한 하나의 표현방식이었습니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 공간 사옥 등은 건축 양식뿐만 아니라 김중업, 김수근 선생과 같은 뛰어난 건축가의 작품이기에 그러한 철학이 잘 반영됐다고 평가할 수 있죠.”

김수근 건축가의 공간 사옥(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한국적 모더니즘을 잘 보여준다. 그는 공간 사옥을 ‘둘러싸여 있으나 결코 막히지 않은 공간’이라고 지칭했다.사진출처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홈페이지
김수근 건축가의 공간 사옥(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한국적 모더니즘을 잘 보여준다. 그는 공간 사옥을 ‘둘러싸여 있으나 결코 막히지 않은 공간’이라고 지칭했다.사진출처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홈페이지

  김수근 건축가의 공간 사옥은 한국 전통을 드러내는 현대 건축물로 한국 모더니즘을 보여준다. 벽돌 건물, 유리 건물이라는 현대 건축물과 ‘ㄷ’자 형태의 한옥이 어우러져 있다. 특히 검은 벽돌로 쌓은 외벽은 북촌 한옥 기와랑 연계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또한 공간 사옥 외부에서 커피숍이나 공간 소극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상보다 낮게 파인 정도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이는 한국 전통가옥의 낮게 파인 부엌을 연상케 한다.

전주시청사 전경. 역사적 상징성, 건축가의 자유로운 표현을 가능하게 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도가 담겼다. 전통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사진출처 전주시청 홈페이지
전주시청사 전경. 역사적 상징성, 건축가의 자유로운 표현을 가능하게 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도가 담겼다. 전통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사진출처 전주시청 홈페이지

  이관직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도를 보여준 대표 건축물로 전주시청사를 뽑았다. “한옥을 세련된 상가 건물로 만들기 위해 유리를 넣고 복원했습니다. 한옥에 관한 미적 취향을 현대적으로 적용했죠.” 전주 랜드마크인 풍남문의 이미지가 건물의 형태와 입면(정면과 측면에서 수평으로 본 모양)을 규정했다. 또한 입구 부분은 문루(궁문과 성문 바깥문에 지은 다락집) 모양으로 디자인했고, 그 위에 육중한 기와지붕을 얹어 전통적인 고도(古都) 이미지와 한옥 분위기를 잘 나타냈다.

  건축이 문화가 되는 그날까지 
  미래에는 어떤 건축물과 함께할까. 이대송 교수(연세대 건축공학과)는 미래 건축이 시장 경제 위에 서게 되면 ‘생산품’과 ‘작품’, 2가지 성격의 건축이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축이 교환 가능한 생산품으로 다뤄진다면 품목이나 브랜드로 편입되겠죠. 최상위 소수 개인이나 국가의 공공 프로젝트만이 순수 작품성을 구현할 수 있을 겁니다.” 이민화 대표이사는 친환경 건축에 초점을 맞춰 설명했다. “건축은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지구의 자원을 절약하면서 인류가 영속 가능한 키를 건축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인간에게는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욕구가 있다. 새로운 양식을 만드는 데서 힘을 얻는다. 건축가는 자신의 예술성, 공간 이용자와 감상자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거듭한다. 호평을 받기도, 혹평을 받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건축가의 건물을 하나의 예술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평범한 건물이 하나의 작품이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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