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질문을 던질 뿐, 답은 인간이 찾으리
  • 최수경 기자
  • 승인 2021.10.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또는 들어서 알고 있는데 자세히는 알지 못했던 예술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그럴 땐 키워드로 보는 예술 사전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요. 이번 주 예술 사전을 넘기는 손은 키워드 ‘종교’ 앞에 멈췄습니다. 종교가 왜 문화가 되고 예술로 승화하며 이토록 우리 삶에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냐고요? 인간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우리 함께 종교를, 그리고 인생을 파헤쳐 봅시다!

살아있는 한 죽음을 체험하기란 쉽지 않을뿐더러 죽음은 언제 어떤 모양으로 찾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반드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죽음을 극복하는 문제는 종교의 중요한 존재 이유임과 동시에 과제이기도 하다. 인간은 끊임없이 삶과 죽음,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고민해왔으며 그 흔적은 종교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변화무쌍하며 탄생과 죽음의 순환이 반복해서 이뤄지는 현 세계를 ‘윤회’라 한다. 또한 윤회가 속박에서 벗어나 불사와 행복 등의 궁극적인 차원 ‘브라만’을 실현하는 것, 즉 해탈을 목적으로 하는 입장은 힌두교다. 그들에게 죽음은 윤회의 연속 안에서 여러 번 일어나는 일이며 결코 부정적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죽음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죽음은 긴 과정 안에서 하나의 준비 단계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실체를 인간에게 명확히 인식시키려 한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최초의 성전으로 널리 읽히고 있는 『숫타니파타』에서는 죽음에 대한 인식을 이렇게 피력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양극을 관찰해보면 전적으로 상반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삶은 죽음을 내포하며 삶의 진실을 이해하는 일이 죽음을 극복하고 초연하는 방법이다.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에서는 절대자를 숭배하기도 한다. 크리스트교에서는 신·구약성경에 따라 죽음을 보는 관점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구약성경은 죽음을 창조주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서 떠나는 생명의 상실로 봤다. 신약성경은 인간 죄에 관한 신의 심판이 죽음이며 죄가 극복해야 할 존재이듯 죽음 또한 부정적인 대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신·구약성경은 공통으로 죽음 속에 던져진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 앞에서 보존된다고 증언한다. 

  이슬람교의 유일신 ‘알라’는 무(無)에서 영혼을, 한 줌의 영혼으로 인간을 창조했다. 인간은 지상에서 신의 대리자로 살다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이슬람교도에게 죽음은 파괴나 종말이 아니라 영혼과 육체에 부여된 일체감의 소멸이다. 알라의 보호 속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더 나은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은 이승에서 삶의 가치를 더 높여준다. 

  종교에서 보이는 삶과 죽음의 인식은 인간이 얼마나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고찰해 왔는지 보여준다. 혹자는 나약한 인간이 기댈 곳이 필요해서 종교를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절대적 존재를 숭배하든 사후 세계를 믿든, 세상이 던진 질문을 받는 이는 인간이며 삶을 살아가는 일 또한 인간의 몫이다. 생을 헤쳐나가는 인간은 결코 나약한 존재가 아니다. 

  ※참고문헌: 『세계종교로 보는 죽음의 의미』(존 바우커 씀), 『죽음이란 무엇인가』(한국종교학회 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