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기도 바쁜 일상이지만 잠시 주변을 둘러보세요. 당신의 손을 잡아줄, 당신이 손을 잡아줄 이들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이번 학기 여론부는 당신과 손을 마주 잡고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이번 주 우리가 함께할 당신은 ‘성소수자’입니다. 성소수자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며 살아갑니다. 이를 거스르는 커밍아웃(성소수자가 자신의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은 성소수자의 삶에 있어 거대한 사건이죠. 커밍아웃이 가진 의미를 통해 성소수자의 삶을 들여다봅시다.

사진 백경환 기자

벽장을 넘어 우리 곁으로 다가온 그대 
옅은 존재감이 이름으로 아로새겨질 때

여러분은 무지개가 일곱 색깔이라고 믿으시나요? 그런데 놀랍게도 무지개는 최대 207가지 색깔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성경의 영향으로 숫자 7을 성스럽게 여기던 문화에 의해 빛의 스펙트럼이 일곱 색깔로 단순화됐다고 추정하죠. ‘LGBTAIQ’는 빛의 스펙트럼과 같습니다. ‘성적지향(타인을 향한 성적·정서적 끌림)’과 ‘성별정체성(내적으로 느끼는 성별)’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나뉘는 오색찬란한 세상이죠. LGBTAIQ는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무성애자(Asexual), 간성(Intersex), 자신의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의문을 품은 사람(Questioner)을 더한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획일화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갇혀 이 오색찬란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요?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고방식도 달라진다.’ 언어인류학 분야 ‘사피어-워프 가설’의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만큼 세상을 보고 느끼고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성소수자를 표현하는 단어들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정교한 눈으로 성소수자의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죠. 

  윤김명우씨(65)는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입니다. 모태 크리스천인 그는 청소년기에 성적지향 혼란을 겪기 시작하면서 교회에도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윤김명우씨는 처절한 소외감에 빠졌죠. “제 몸에 오물이 묻은 느낌이었어요. 오래된 친구들조차 냄새난다고 저를 밀어낼 것만 같았죠.” 14살 때 윤김명우씨는 아웃팅(성소수자 본인의 동의 없이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공개하는 행위)을 당했습니다. “동성 친구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학교 선생님 귀에 들어갔어요. 선생님은 어머니를 불러 그 사실을 얘기하셨죠. 그 장면을 목격하는 순간 머리가 빙 돌더라고요.” 

  어머니는 돌아가시던 순간까지 단 한번도 동성애에 관해 윤김명우씨를 다그치지 않았습니다. “제가 엇나갈까 봐 야단치지 못하셨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큰언니가 그러더라고요.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너를 걱정하시며 엄마가 나한테 통곡을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너무 속상했어요.” 남동생은 윤김명우씨의 성적지향을 극도로 혐오했습니다. “어느날 외출하려고 하는데 남동생이 제 구두를 던져 지붕에 올려버린 적이 있어요. 남동생과 정말 많이 싸웠죠.” 

  윤김명우씨는 가족들의 지지 없이 홀로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가족과 친척의 주변을 겉도는 느낌은 그의 삶을 움츠러들게 했죠. “가족들과 있으면 나는 이방인이 됐어요. 스스로 자격지심에 갇혀서 기가 죽어있었죠.” 성소수자부모모임을 보면서 윤김명우씨는 요즘 성소수자들은 큰 희망을 품고 사는구나 부러운 마음이 듭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이런 환경에서 자랐다면 학업에 열중하고 꿈도 많이 꿨을 거예요. 가족들이 사랑으로 품어 안으면 성소수자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구김살 없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답니다.” 

  40대에 레즈비언 바 ‘레스보스’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윤김명우씨는 세상에 커밍아웃했습니다. “레스보스를 통해 제 삶은 자유로워졌어요. 소통하는 사람의 범위도 넓어졌죠. 우리를 억압하는 사회에 제 자유를 보여주고 싶어지더라고요.” 레스보스에서의 커밍아웃으로 윤김명우씨의 인생에는 2막이 열렸죠. “가족들에게서 결핍됐던 사랑과 지지를 레스보스에서 채워가는 느낌이에요.” 레스보스는 대한민국의 모든 LGBTAIQ가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윤김명우씨의 성소수자 친구들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이 공간이 있어 행복하다며 윤김명우씨에게 오래오래 곁을 지켜달라고 말합니다. “연령대도 상관없어요. 모두 함께 어울려 놀아요. 혼자 오는 사람들도 다 같이 앉는 좌석에 앉혀놓고 이야기를 나누죠. 저는 모든 성소수자가 함께 모여 사는 미래를 꿈꿉니다.”  

  기자는 이런 상상을 해봤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색맹을 앓고 있어 서로 다른 색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 뿐, 옳은 세상의 색깔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상 말이죠. 각자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세상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옳고 틀림없이 원하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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