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웃기지 마. 이제 돈으로 사겠어.”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탄생한 명대사다. 사랑을 돈 주고 살 수 있을까? 비록 사랑은 돈 주고 사지 못하더라도, 친절과 미소를 돈 주고 사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자주 가는 분식집에는 이런 문구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있다. ‘감정노동자도 우리의 가족입니다.’ 소위 말하는 ‘갑질’로부터 고객응대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고객응대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또 다른 장치가 있다. 2018년 10월 18일부터 근로자들을 향한 욕설 또는 폭언을 방지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가 시행됐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고객응대근로자를 향한 갑질 이슈는 끊이지 않는다. 필자는 조금 더 근본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성을 느꼈다.  

  흔히 고객응대근로자를 감정노동자라고 부른다. 앞선 법률도 통상 ‘감정노동자 보호법’이라고 불릴 만큼 감정노동자라는 단어는 당연한 듯 쓰인다. 도대체 ‘감정노동’이란 무엇인가.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라면 시간당 8720원만큼의 미소와 친절을 행사해야 하는가? 사실 감정노동은 미국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그는 델타 항공의 비행기 승무원들의 노동 과정을 분석하며 이 개념을 제시했다. 기내에서 고객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안정감을 주는 감정 표현을 하는 노동 방식을 일컬었다. 

  오늘날에 와서 감정노동과 감정노동자의 개념은 점차 확대되고 빈번하게 사용된다. 고객응대를 하는 모든 직종 즉, 업무상 친절해야 하는 직종을 흔히 ‘감정노동자’라고 부른다. 필자는 이 용어가 근로자와 고객 사이에 위계 구조를 생산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감정노동을 직관적으로 해석한다면 재화를 대가로 친절함과 미소를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뜻풀이를 하니 마치 감정을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어 고객들은 돈을 내는 만큼의 만족스러운 친절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만든다. 친절은 주관적인 느낌이기에 노동으로서 업무 성과를 파악할 수도 없어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라는 서비스 슬로건을 만들기도 한다. 때문에 단지 고객의 주관적인 기분으로 근로자의 업무 태도를 평가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고객응대근로자의 업무는 친절이 아니다. 감정노동자 중 콜센터 상담사를 예시로 들어보자. 콜센터 상담사의 업무는 ‘안내’이다. 안내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내용을 소개하여 알려줌’에 그친다. 그렇다면 상담사는 고객의 질문에 설명을 잘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고객응대근로자에게 업무 이상을 자연스럽게 요구하고 있다. 

  가끔은 필자도 ‘저 직원 왜 나한테 친절하지 않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당혹스럽기도 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과 같은 과도한 친절이 익숙해진 사회다. 제공받는 서비스가 누군가의 모멸감을 갈아 만든 것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고객응대근로자를 지칭하는 단어에서부터 근로자를 절대적인 을로 만든다. 감정노동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한 갑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송수빈 뉴미디어부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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