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기도 바쁜 일상이지만 잠시 주변을 둘러보세요. 당신의 손을 잡아줄, 당신이 손을 잡아줄 이들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이번 학기 여론부는 당신과 손을 마주 잡고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이번 주 우리가 함께할 당신은 ‘노인’입니다.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인데요. 노인 문제에 관심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이죠. 우리 함께 손잡고 노인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 봅시다.

① 욕실에 들어가고 있다. 걷기가 힘들어 욕실 미닫이문을 잡고 지지하며 움직였다. ②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있다. 잘 보이지 않아 한참을 들여다봤다. ③ 팔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바닥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침대에서 일어날 때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사진촬영 노인생애체험센터
① 욕실에 들어가고 있다. 걷기가 힘들어 욕실 미닫이문을 잡고 지지하며 움직였다. ②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있다. 잘 보이지 않아 한참을 들여다봤다. ③ 팔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바닥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침대에서 일어날 때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사진촬영 노인생애체험센터

TV 속 광고에는 다양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런데 광고에서 ‘노인’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약·의료기기와 같은 산업을 제외하면 노인이 광고에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죠. 이와 비슷하게 현실에서도 노인은 중심이 아닌 주변부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함께 살아가고 있음에도 어쩐지 그들의 목소리는 듣기 힘들죠. 그래서 기자는 노인으로 하루를 지내며 그들의 마음을 느껴보자 다짐했습니다. 

  체험은 (사)대한노인회서울특별시연합회 노인생애체험센터(노인생애체험센터)에서 진행했습니다. 노인의 몸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노인 체험복을 입어야 합니다. 노인 체험복은 노인의 신체를 경험해볼 수 있도록 제작된 옷과 도구랍니다. 무릎·팔꿈치·등에 착용한 구속 도구는 자세 변화와 자유로운 움직임을 어렵게 만듭니다. 발목과 손목에 착용한 모래주머니는 근력을 저하시켜 근력 쇠퇴를 경험할 수 있게 하죠. 또한 특수 제작된 고글을 착용함으로써 노인들이 겪는 시각 변화도 느낄 수 있습니다. 손에 착용한 장갑은 손의 촉각과 기능을 둔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죠.

  체험은 공공·개인·보행 생활 공간에서 진행합니다. 공공 생활 공간은 집에 들어서는 현관 및 거실, 주방 등을 뜻합니다. 개인 생활 공간은 욕실과 침실을, 보행 생활 공간은 계단과 경사로를 의미하죠. 우리가 평소 TV를 보거나 밥을 먹는, 또 씻고 잠을 자는 평범한 집의 모습입니다. 노인의 몸으로 바라본 집은 어땠을까요. 

  가장 쉬웠던 일이 가장 어려운 일로 
  노인 체험복을 입고 현관에 처음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적잖이 놀랐습니다. 생각보다 거동이 상당히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근육과 관절을 마음대로 쓸 수 없을뿐더러 시야까지 차단되니 자신 있게 발을 뻗을 수가 없었죠. 저절로 발을 질질 끌면서 움직이고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게 됩니다. 식탁 의자에 앉고 일어서는 일도 만만치 않습니다. 원하는 부위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 무언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답니다. 식탁을 짚거나 의자 손잡이를 잡아야만 자세를 바꿀 수 있죠. 손잡이나 봉을 잡을 때 마음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랄까요. 우리는 태어나서 몸을 뒤집고 구르는 방법을 제일 먼저 체득합니다. 그다음에는 앉고 걷기를 익히죠. 노인의 몸이 돼보니 가장 먼저 배웠던 일마저도 어려워졌습니다.

  욕실에 들어섰을 때는 긴장이 됐습니다.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서 넘어지거나 잘못하다 옷이 젖을까 봐 걱정이 들었죠. 게다가 고글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 공간이 정확히 인지되지 않았습니다. 저쪽으로 손을 뻗으면 세면대 위에 있던 물건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움직이다 몸을 어디에 부딪히지는 않을까? 매 순간 망설임이 찾아왔습니다. 한없이 느리게 행동하고 있는 기자를 발견할 수 있었죠.

  무뎌지는 감각 속 투박해지는 손길
  인간이 가진 오감 외에 무언가를 느끼는 또 다른 감각을 육감 혹은 식스 센스(Sixth Sense)라고 합니다. 노인의 몸으로 집안 곳곳을 다녀보니 마치 육감처럼 다른 감각을 이용하게 됐죠. 사물이 희미하게 보이고 만져도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닥에 누울 때는 등과 바닥 사이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지 않아 마음속으로 ‘적당히 이쯤 힘을 빼면 되겠지’라고 생각합니다. 또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면서 ‘이 정도 손을 뻗으면 되겠지’라고 예상했죠. 불확실한 상황에서 낯선 감각에 의존해 손이 턱턱 나가다 보면 물건을 떨어뜨리는 실수도 하게 된답니다.

  노인 체험복을 착용하면 몸을 섬세하게 조절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본래 갖고 있던 기준을 없애고 타협을 하게 되죠. 원래 기자는 오와 열을 맞춰 깔끔하게 정리하는 걸 좋아합니다. 노인 체험복을 입은 채로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갤 때는 각을 맞출 겨를이 없답니다. 접시를 아무렇게나 주방 선반 위에 넣을 뿐만 아니라 더럽다고 생각해 원래는 잡지 않던 계단 손잡이를 잡기도 하죠. 노인 체험복을 입은 몸으로 평소의 모습처럼 살기 위해서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벗을 수 없는
  체험을 하는 동안 마음과 몸이 따로 놀았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실수도 자꾸 하게 됩니다. 이제 이해할 수 있었죠. 바쁜 출근 시간 중에도 왜 노인들이 빠르게 걸어가지 못하는지, 물건을 잡을 때 왜 손의 움직임이 투박한지 말입니다. 기자가 가진 기준으로 노인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죠. 가끔은 답답하게 느껴지던 모습에 아린 공감이 깃들었습니다. ‘이해(理解)하다’의 뜻처럼 먼저 깨닫게 됐고 그다음에는 그들의 사정을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었답니다.

  체험이 꽤 힘들어 마지막쯤에는 얼른 노인 체험복을 벗어버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노인은 그들의 삶을 벗을 수 없습니다. 노인을 위한 환경 개선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매일 이용하는 물건과 시설을 ‘모두’가 쓸 수 있는지도 고민해봐야 하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사람은 노화라는 신체 변화를 겪습니다. 기자에게 오늘은 ‘체험’이었던 일이 미래에는 ‘일상’이 됩니다. 노인이 사는 환경이 더 좋아진다는 건 우리의 삶이 나아질 거란 뜻이기도 하죠. 따라서 노년의 삶은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숙제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는 현재이자 누군가에게는 다가올 미래로, 결국 모두가 품을 삶이니까요. 오늘 그들에게 보낸 눈길이 훗날 따뜻한 손길로 돌아올 테죠.

  ‘돌림노래’는 같은 노래를 일정한 마디의 사이를 두고 부르는 합창입니다. 선두 그룹이 먼저 노래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 지나면 다음 그룹이 뒤따라 부르죠. 각 시점에 그룹들은 저마다 노래의 다른 마디를 부르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같은 선율을 노래합니다. 선두 그룹이 먼저 부른 마디를 다음 그룹이 나중에 부르면서 화음이 쌓이죠. 인생도 돌림노래와 비슷합니다. 앞선 세대가 살아온 시기를 다음 세대 역시 살아갑니다. 노년의 삶에 관한 이해와 관심이 우리 사회의 화음을 더 아름답게 만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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