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이 노인의 삶을 바라봐주세요
  • 백경환 기자
  • 승인 2021.09.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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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자의 백문이 불여일견
① 산을 등정하듯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지하철 출구로 향한다. ② 지하철 좌석에 앉아 무뎌진 감각을 실감하고 있다. ③ 아슬아슬하게 옆을 스쳐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기자의 모습이다. ④ 지팡이에 의지한 채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⑤ 식당에서 키오스크를 이용하고 있다. 시각과 촉각이 저하돼 주문을 완료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진 김서경 기자
① 산을 등정하듯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지하철 출구로 향한다. ② 지하철 좌석에 앉아 무뎌진 감각을 실감하고 있다. ③ 아슬아슬하게 옆을 스쳐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기자의 모습이다. ④ 지팡이에 의지한 채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⑤ 식당에서 키오스크를 이용하고 있다. 시각과 촉각이 저하돼 주문을 완료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진 김서경 기자

노인의 삶은 우리 모두의 미래이며 누군가의 현재로, 그 누구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관심으로 말미암아 다른 차원의 이야기인 듯 멀게만 느껴지죠. 노인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기자는 노인 체험복을 입은 채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길을 걸었습니다. 마음을 기울여 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잠깐의 체험과 대화로 노인의 삶을 감히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당신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익숙한 외출, 낯선 감각 
  안국역에서 흑석역으로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낯선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에는 꽤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죠. 개찰구를 지나 플랫폼으로 힘겹게 내려가며 마른침을 삼켰습니다. 당신과 함께한다는 말의 무게가 실감 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들어오는 열차는…’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지하철이 도착했음을 눈치챘습니다. 노인성 난청과 백내장에 의한 시각 변화 등을 경험하기 위해 착용한 고글과 귀마개는 많은 불편함을 초래했죠. 또한 보이고 들리는 감각과 움직임이 둔해졌다는 사실은 소외감마저 불러일으켰습니다. 고글 너머 풍경은 어지러웠고 귀마개 너머 소리는 아득했죠. 외딴 섬처럼 동떨어진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고 하면 딱 알맞습니다. 

  우르르 밀려 내리는 사람들 속에서 공포감이 들었습니다. 느려진 걸음걸이는 기자를 위축시켰죠.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기자의 느린 걸음은 불협화음이었습니다. 평소라면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빠른 걸음 행렬에 맞춰 움직일 수 있었을 텐데 노인의 신체 능력으로는 불가능했죠. 걸음마다 닥쳐오는 전쟁을 홀로 치르기도 벅찼으니까요. 

  머리에서 가슴으로 옮아오기까지 
  흑석역에 도착했습니다. 지상으로 가기 위해 올라야 하는 계단을 바라봤죠. 셀 수 없이 드나들었던 공간이 이토록 새삼스럽다니. 마음 같지 않은 무릎을 괜히 흘겨보고 지팡이를 힘껏 움켜쥐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한발을 디딥니다. 마저 한발을 올리고 숨을 고릅니다. 마디마디 끊어지는 동작을 반복하며 계단을 올랐죠. 지팡이는 빛이고 벽을 따라 난 손잡이는 희망이었습니다. 지팡이와 손잡이가 없었다면 계단 등정을 무사히 마치지 못했을 겁니다. 계단을 오르다 우두커니 멈춰서 한참을 쉬던 노인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중앙대 서울캠 정문 부근 식당으로 출발하려던 찰나, 오토바이가 옆을 쌩 지나갔습니다. 앞을 스치는 오토바이를 보고 뒤늦게 눈치챘죠. 노인의 신체 능력으로는 위험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험이 피해가길 기도하는 방법뿐일까요? 노인의 안전이 그저 운에 달린 일은 아니어야 합니다. 우리의 배려로 노인은 안전해질 수 있습니다. 

  식당이 코앞입니다. 아래로 내려가는 깊은 계단이 마지막 관문이었죠. 엉거주춤 지팡이를 두드려 계단을 짚고 차곡차곡 발을 옮겼습니다. 그러다 계단을 잘못 보고 발을 헛디뎌 크게 넘어질 뻔했습니다. 순간적인 무릎 힘으로 버티긴 했지만 무릎이 약한 노인이라면 크게 다쳤을지도 모릅니다. 식당에 들어가려는데 입구에서 한 청년이 문을 잡아줬습니다. 사소한 배려가 마음 한가운데를 깊숙이 파고들었죠. 무미건조하게 머릿속을 떠다니던 노인 공경과 역지사지 따위의 말들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옮아왔습니다. 

  식당에 들어서니 키오스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키오스크는 터치스크린을 눌러 이용하는 무인 주문 기기입니다. 손의 촉각 저하를 체험하기 위한 장갑 때문에 3~4번은 터치스크린을 눌러야 해서 답답했습니다. 좁아진 시야 탓에 하단 확인 창은 찾기도 어려웠죠. 고개를 위아래로 바쁘게 움직여 간신히 주문에 성공했습니다. 모래주머니 탓에 컵을 든 팔이 후들거립니다. 마음 같지 않은 몸 앞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노인들의 이야기, 이제야 보인다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만난 황경숙씨(77)와 유정희씨(71)를 통해 육체적 체험으로는 경험하지 못했던 노인 세대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중교통에서 좌석을 양보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유정희씨는 자녀들을 통해 젊은 세대의 고단함을 이해한다고 말했습니다. “젊은이들이 얼마나 피곤해요. 유모차를 갖고 출근하는 엄마들도 있잖아요. 노인들이 그런 부분을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황경숙씨는 오히려 자리를 비켜주는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했죠. “노인들은 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잖아요. 노인 속에서 자리를 기다리는 게 훨씬 마음 편해요.” 

  기자는 노인들로 붐비는 탑골공원을 찾았습니다. 코로나19로 폐쇄된 공원 담벼락 주변에 노인들이 옹기종기 앉아있었죠. 그 속에서 기자의 눈에 띈 장면은 외딴 담벼락 한쪽, 딱딱한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혼자 앉아있는 노인 A씨의 모습이었습니다. 기자가 조심스레 다가가자 그는 흔쾌히 옆자리를 허락했습니다. A씨는 쪽방에 혼자 살고 있습니다. “온종일 밖에서 시간을 때워요. 혼자 집에 누워있으면 알아주는 사람도 없잖아요.” A씨는 매일 이 자리에 홀로 앉아있다며, 탑골공원은 자신과 같은 노인들 천지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전 중풍에 걸려 오른쪽 다리가 마비된 A씨는 거동이 불편한 자신의 현실을 비관해 나쁜 마음을 먹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저는 보호자가 아무도 없어요. 이렇게 살아 뭐하나 싶고 힘들었죠.” 하루가 지겹다는 말을 반복하던 A씨. 기자가 곁에 함께 앉아있는 동안은 그의 적적함이 잠시나마 걷혔기를 소망하며 작별 인사를 건넸습니다. 다시 찾아오겠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취재 이후 어느 날 기자는 전화벨을 못 듣고 있는 노인에게 전화가 왔다고 알려준 적이 있습니다. 사소하지만 따뜻한 관심을 기울인 덕분에 오지랖을 부릴 용기가 났죠. 노인의 삶이 궁금해 주변을 둘러봅니다. 스마트폰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할머니, 음악을 들으며 소년처럼 웃는 할아버지. 이제야 그들의 삶이 보입니다. 
 

사진촬영 김서경 기자
사진 김서경 기자

“저는 젊은 사람들하고 소통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회가 있으면 대화도 하고 놀고 싶어요.(웃음) 표현 방식이 다를 뿐 노인 세대나 청년 세대나 생각은 비슷하지 않을까요?” -황경숙씨(좌측)

“맞아요. 우리 마음은 열려있어요. 젊은이들이 쓰는 생소한 단어를 외우려고 노력도 한답니다!” -유정희씨(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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