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을 부정한다고? 그것은 키치!
  • 지선향 기자
  • 승인 2021.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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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데라가 말하는 '키치'

 “결혼을 원하는 처녀는 자기도 전혀 모르는 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명예를 추구하는 청년은 명예가 무엇인지 결코 모른다. 우리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항상 철저한 미지의 그 무엇이다.” -202p 

많은 사람이 ‘인생 책’이라 꼽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러나 결코 만만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사랑, 철학, 역사 등을 담은 이 책은 꽤 오랜 시간을 두고 읽어 봐야 비로소 하나, 둘 이해 되기 시작했습니다. 기자는 밀란 쿤데라가 강조하는 ‘키치’라는 개념에 집중해봤는데요. 가벼움에 대한 절대적 부정인 키치로, 인생에 스며든 여러 관념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밀란 쿤데라는 키치를 ‘똥’으로 설명했습니다. 똥이라니, 조금 놀라셨을 수도 있겠는데요. 여러분은 똥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마 똥을 누는 행위는 추하고 수치스러운 것. 똥이라고 하면 더럽고 냄새나는 것 등이 떠오를 것 같은데요. 똥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이며 존재의 일부지만, 인간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죠. 

  스탈린의 아들 야코프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 장교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공동변소를 사용했지만 ‘신의 아들’ 야코프는 변소를 청소하지 않아 영국인들에게 비난과 모욕을 당했는데요. 이를 참을 수 없던 야코프는 고압 철조망에 몸을 던졌습니다. 결국 ‘똥’ 때문에 목숨을 내놓은 것이죠.  

  야코프는 똥이라는 ‘가벼움’을 참을 수 없었으며 똥을 부정하는 키치 즉, ‘무거움’에 짓눌려 죽음을 택했는데요. 똥은 자신에게 존재하는 것임에도 받아들이지 않아 자신과 반대편에 존재한다고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밀란 쿤데라는 존재는 선한 것이며, 이를 향한 믿음은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동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을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세계에서는 똥이 부정되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죠. 즉, 키치란 본질적으로 똥에 관한 절대적 부정입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미를 부여해 포장하는 거죠. 

  이 책에 등장하는 테레자와 토마시의 사랑은 ‘무거움’과 ‘가벼움’의 대조를 잘 보여줍니다. 테레자는 토마시를 천생연분이라고 하며 자신만을 사랑하기 원했죠. 반면 토마시는 에로틱한 우정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사람인데요. 심지어 그는 한 여자를 3번 이상 만나지 않고, 오래 만나려면 3주 이상 간격을 두고 만나는 ‘3의 법칙’으로 수많은 애인을 동시에 만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키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를 경멸해도 완전히 벗어날 수 없죠. 자유를 추구하는 화가인 사비나는 그녀의 전시회에 쓰인 약력을 보고 항의했습니다. ‘그녀는 자유를 위해 그림으로 싸운다’며 불의에 대항해 싸우고 투쟁을 계속했다는 내용이었죠. 이에 ‘나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키치예요’라고 외쳤는데요. 하지만 사실 그녀조차도 가정에 대한 키치를 품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지혜로운 아버지가 군림하는 평화롭고 부드럽고 조화로운 가정’. 이 이미지는 그녀가 지닌 키치 중 하나였죠. 

  이러한 키치는 단지 고전 속 이야기는 아니죠. 사회가 심어놓은 생각이나 태도, 사상을 돌아보면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대학은 무조건 가야 한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다’, ‘직업 지위에 따라 임금을 달리하는 건 공정하다’와 같은 키치는 주변에도 존재하죠. 이러한 인식은 누군가를 혹은 사회 전반을 억압할 수도 있습니다. 취업과 연애,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인식을 담은 키치는 정작 청년들이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게 하죠. 

  현실에는 이면이 있습니다. 밀란 쿤데라는 현실의 이면을 부정하고, 이상적이고 미적인 것으로 포장하는 키치를 비판하죠. 당신에게도 ‘그래야만 해’라고 속삭이는 키치가 있지는 않나요? 만약 그것이 무거운 짐으로서 당신을 압박하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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