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기분에 이끌려 퍼스널 컬러 검사를 받았습니다. 무지갯빛 휘황찬란한 천들을 얼굴 밑에 대며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흘깃. 얼굴을 보고 답이 정해진 듯 척척 이 색은 좋고 저 색은 나쁘다는 둥 선악을 나누더랍니다. 여름 라이트, 나름 신기했지만 기자는 이 결과를 믿지 않습니다. 과연 색을 ‘좋은 색’과 ‘나쁜 색’ 2가지로만 나눌 수 있는 걸까요? 

  정신없이 흘러간 30분 동안 보여진 모습은 무척 단편적입니다. 다른 조명에서는 또 다른 색이, 다른 옷이 어울릴 지도 모릅니다. 생각 끝에 퍼스널 컬러도 부질없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한 친구는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나누는 MBTI를 맹신합니다. 자신과 기자가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ENFJ와 INFP의 만남이기 때문이라며 무척 뿌듯해합니다. 기자의 사고와 행동은 모두 ENFJ의 전형으로써 평가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나름 들어맞기도 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역시 믿지 않으렵니다. 과연 MBTI만으로 사람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행복의 가설』(조너선 하이트 씀)에 따르면 구속과 제약의 존재는 인간 삶의 의미입니다. 이에 모든 개인은 여러 사회적 범주를 형성하고 공통점을 가진 집단에 자신을 소속시키죠. 그리고 소속감은 개인의 확실성을 높이고 불안을 해소하는 도구로 이용됩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대면으로 소속감을 느낄 수 없자 사람들은 퍼스널 컬러와 MBTI 등으로 나아가 소속되려는 욕구를 해소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름 라이트야, ENFJ야.”라고 말하며 시도 때도 없이 상자를 만들고 그 안에 몸을 욱여넣곤 하죠. 상자 안을 좋아하는 고양이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상자가 너무 작나 봅니다. 상자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미처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어요. 상자 안 사람들은 때때로 바깥의 사람들에게 불편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답니다. 들어가고 싶어도 상자 안 자리가 없어 갈 길이 막힌 이들은 서운하기만 합니다. 이처럼 세상을 잘게 나누는 우리들의 본능은 대개 편향된 시각을 자아냅니다. 소속됐다고 여기는 내집단을 편애하고, 그 밖의 외집단을 폄훼하려 들기 쉽죠. 이 지점에서 기자는 생각합니다. ‘상자를 아주 크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하고요. 

  기자에게 모든 건 스펙트럼입니다. 퍼스널 컬러도, 성격도, 성 정체성과 지향성도 모두 말이죠. 그 안 존재하는 차이는 오로지 ‘위치’입니다. 나누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스펙트럼이라는 널찍한 상자 안 어딘가 내 자리만 어렴풋이 알고 있다면 충분할 것도 같습니다. 

  이분법적 사고는 편리하고 작은 상자는 누구에게나 아늑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갇히는 ‘나’의 모습을 두려워하고 안타까워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소속이라는 안정감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 스스로를 어딘가 가둘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야옹, 우린 고양이가 아니니까요.

이민경 대학보도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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