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마리 앙투아네트가 굶주린 시민들에게 했다고 전해지는 이 말은 그녀를 사치와 향락의 이미지로 만들었다. 하지만 <벌거벗은 세계사>라는 교양 프로그램을 통해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해와 진실을 알 수 있었다. 해당 프로그램에 따르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신분제도 조롱이 담긴 공연에 거부감이 없을 정도로 개방적인 사고의 소유자였다. 또한 서민들에게 친숙해지기 위해 슈미즈(속옷)스타일의 옷을 입고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렇게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프랑스 혁명 이후 그녀에 관한 가짜뉴스는 더욱 심각해졌다. 외설 팸플릿의 대상이 되거나 근친상간을 했다는 허위 소문이 퍼지기까지 했다. 

  프랑스 왕비가 돼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가짜뉴스에 시달린 마리 앙투아네트는 결국 교수형에 처해졌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향한 시민들의 분노가 낳은, 과도한 비극의 결과였다. 역사의 옳고 그름을 따지긴 어렵지만 1가지는 분명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가짜 뉴스’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이다. 

  중대신문에 들어올 때 기자는 ‘공감과 진실추구’를 저널리즘으로 새겼다. 피해자에게 공감하며 그들의 편이 되는 언론인이 되자, 옳은 정보를 선별해 공정한 보도를 하자고 늘 다짐했다. 그러나 SNS에 올라오는 뉴스를 보면 진실을 위한 저널리즘은 찾아보기 힘들다. ‘뉴스’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다. 

  기자가 많이 이용한 인스타그램에는 여러 카드뉴스들이 떠돈다. 카드뉴스 게시물에 다양한 댓글이 있는데가장 눈에 띄는 댓글은 ‘허위사실이에요’이다. 이 댓글을 읽는 순간 카드뉴스를 맹신했던 기자를 꾸짖고 가짜 정보가 얼마나 난무하는지를 깨닫는다.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일부 이슈 유튜버들은 조회수를 위해 자극적이고 과장된 썸네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막상 영상을 보면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 썸네일만 보고 내용을 판단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또한 관심 유도를 위해 특정 유튜버나 연예인을 저격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이미 퍼진 허위 정보들로 인해 그들은 오랜 시간 정신적 고통을 겪지만 아무도 보상해주지 못한다. 고통만이 남은 이슈가 누구를 위한 정보인가. 

  마리 앙투아네트는 재판장에서 이렇게 외쳤다. “나의 진심을 알아주기를 여기 있는 모든 어머니에게 호소합니다.” 이 말을 듣고 재판장 안에 있던 모든 여성이 동조했다고 한다. 기자는 여성들의 태도에서 ‘공감’을 발견했다. 자극적인 보도에 매혹되지 않고 마리 앙투아네트에 공감하고 진실을 찾으려 한 순간이다. 

  허위 사실이 퍼지는 건 한순간이지만 진실을 바로잡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더 희생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언론과 시청자 모두가 노력할 때다. 기자는 자극과 쾌락만을 주는 기사를 멈추고 시청자는 피해자의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자신의 스트레스를 애먼 대상에게 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자. 또 다른 단두대의 희생자를 낳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권지현 문화부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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