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렛 테일러 치버는 62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14권의 소설을 썼다. 그는 소설로 127명의 인물을 만들어냈고 ‘적어도 자신은’ 모든 인물을 기억했다. 『게임을 망치는 자』. 치버가 ‘완성’한 소설 제목이다. 구상부터 정리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는 등장인물들의 배경, 취향, 외모까지, 심지어 눈동자 색까지 구상했다. 주제는 분명했고, 인물은 현실감이 있었으며 대화는 효과적이었다. 아주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모든 게 치버의 ‘머릿속’에만 있다는 거였다.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소설이 12개의 장으로 구성됐다는 것, 총 292페이지라는 것도 예상했고, 대화 내용도 모두 암기했다. 

  그러니까, 종이에 옮겨적기만 하면 됐다. 타자를 치려던 순간, 치버는 이런 생각을 한다. “이미 머릿속에 다 들어있는데 굳이 종이에 옮길 필요가 있을까?” 작품은 완성됐고 다듬어지기까지 했다. 머릿속에서. 종이에 옮겨적을 시간에 차라리 다음 작품을 구상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치버는 다음 작품 구상에 돌입한다. 안타깝게도 이 완벽한 소설은, 또한 14권의 소설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오직 치버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이는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머리로만 책을 쓴 남자』의 내용이다. 이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뭉치로 맞은 기분이었다. 이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가 내겐 섬뜩하게 다가왔다. 종종 나를 습격했다. 글을 쓰지 않을 때, 무언가를 머리로만 상상할 때, 입으로만 떠들 때. 

  <글쓰기> 강의를 하며 내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두려움을 떨치자는 것이다. 대다수의 학생은 글쓰기에 대한 공포를 고백한다. 물론 글을 쓰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글쓰기의 고통을 ‘과장’하지는 말자고 나는 권한다. 잘 쓰면 잘 쓰는 대로(글쓰기의 대가들이 창작의 고통을 고백하곤 하니까), 못 쓰면 못 쓰는 대로 괴로울 것이다. 잘 쓰는 사람의 괴로움은 다른 차원의 것이고, 잘 쓰고자 하는 마음이나 너무 못 쓰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거라면 그 고통을 부풀리지 말자고 제안한다.  

  우리는 쓰기도 전에 괴로워한다. 겨우 몇 번 써보고 괴로워한다. 아직 쓰지 않았지만 글쓰기는 괴로운 거라고 들었어! 몇 번 써보긴 했는데 역시 괴로웠어! 엄청 유명한 작가들도 글쓰기의 고통을 호소하잖아! 이런 식으로… 정작 쓰진 않으면서 ‘더’ 괴로워하는 건 아닌지…. 이는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실 내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는 법? 앞서 소개했던 ‘치버’는 겁쟁이였다. 일단은 써야 한다. 위대한 글이든 형편없는 글이든 보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우리의 머릿속에는 엄청난 것이 있을 수도, 볼품없는 게 있을 수도 있다. 형편없는 글을 쓰고 말았다면? 다행히 아직 완성이 아니다. 고쳐 쓰면 된다. 뭔가가 ‘보여야’ 퇴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 일단 쓰고 보자. 

공현진 강사 
다빈치교양대학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