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표현한 빛의 마술
  • 최수경 기자
  • 승인 2021.09.05 2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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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주의의 문을 열며

에두아르드 마네, 클로드 모네 그리고 피에르 르누아르는 우리에게 친숙하고 아직까지 사랑받는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인상주의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용감한 사람이 있죠. 바로 조르주 쇠라와 폴 시냐크입니다. 이들은 과학적 광학 이론에 따라 색채를 구사하며 엄격한 형식의 작품을 창작해 신인상주의라는 새로운 화풍을 선도했죠. 친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과학이 예술을 만난 순간이었습니다. 과학과 예술이 만났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시지 않으신가요?  최수경 기자petitprince@cauon.net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조르주 쇠라, 1884~1886. 그는 이 작품을 위해 수많은 습작을 그렸고, 결국 2년의 세월 끝에 완성한다. 

역사를 돌아봤을 때 지배적인 기존의 것에 관한 의문이나 저항은 세상에 큰 영향을 줄 만한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낸다. 혹은 의문을 품었다는 이유만으로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19세기 후반, 당대 보편적이던 인상주의에 권태를 느껴 새로운 화풍의 시작을 여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들은 서양미술사에 큰 흔적을 남겼고 그 흔적은 다행히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이질적인 둘의 만남 
  엄격한 규칙이 지배하는 과학의 세계와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예술. 언뜻 보기에 두 분야는 친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 원리를 사용해 그림을 그려낸 이들이 있었다. 바로 조르주 쇠라(쇠라)와 폴 시냐크(시냐크)다. 그들은 후대에 ‘신인상주의’라고 불리는 화풍의 창시자다. 

  어릴 적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던 쇠라는 프랑스 파리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한다. 이곳에서 그의 운명을 결정할 책을 발견한다. 『절대적인 미술 기호들에 관한 평론』(욍베르 드 쉬페르빌 씀)을 읽은 쇠라는 미술에 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에 강하게 끌렸고 수학이나 과학 등 자연과학적인 학문이 음악, 미술 등 예술과 결합한 작품에서 깊은 인상을 받는다. 

  빛을 위한 점을 찍다 
  성인이 된 쇠라는 기존의 인상주의 화법과 구별되는 새로운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는 빛의 색을 캔버스 위에 재현하지 않고 빛의 효과를 표현해내고자 했다. 색의 혼합이 물감을 섞는 것이 아닌 관람자의 눈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캔버스 위에는 파랑과 노랑의 색 점만 존재한다. 섞어서 녹색으로 만들어내는 역할은 보는 이의 망막 위에서다. 이 기법을 쇠라는 ‘색광주의’라 이름 지었다. 색광주의는 이후 분할주의로 발전한다. 변종필 미술 평론가는 쇠라의 분할주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1883년 당시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같은 계열의 색이나 보색을 분리한 다음 나란히 배치하면 색들이 시각적으로 통합돼 선명한 색을 지각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어요. 이러한 연구에 공감한 쇠라가 과학 이론을 그림에 적용한 것이 분할주의죠.” 

  비슷한 시기에 그리기 시작한 작품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에는 쇠라가 사용한 색 점과 색채 이론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흔히 쇠라는 점묘법을 개발한 화가로 알려져 있는데, 점묘법이라는 용어는 그가 색 점을 사용한 것을 본 평론가들에 의해 나중에서야 보편화됐다. 변종필 평론가는 이 작품에서 점묘법이라는 단어보다 중요한 사실이 따로 있다고 이야기했다. “작품이 제작된 시기가 이미 미셸 외젠 슈브뢸(슈브뢸)과 오그던 루드의 색채 이론에 영향을 받은 후라는 점에서 ‘광학적 회화를 위한 탐구’에 몰입했던 첫 결과물이라 할 수 있죠.” 

  이후 쇠라는 슈브뢸을 직접 만나 그의 색채 이론을 실험했다. 3원색인 빨강·노랑·파랑과 이들의 보색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를 연구하며 그의 걸작으로 알려진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위한 수많은 습작을 그리기 시작한다. 

  젊은 예술가들의 반란 
  사실 쇠라가 처음부터 ‘신인상주의 화가’로 불리지는 않았다. 그는 인상주의 전시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에두아르드 마네, 클로드 모네 등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과 색채의 순간적인 효과를 좇아 자연을 묘사했으며 당대 풍습과 사회상을 화폭에 담아내는데 충실했지만 순간적인 만큼 화가의 주관이 강하게 반영됐고 정형이 없었다. 변종필 평론가는 쇠라가 이러한 인상주의에 객관적인 토대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쇠라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추구했던 생동감 있는 빛의 효과를 존중했어요. 그러나 인상주의 화가들의 실험적인 시도를 과학적 이론으로 발전시키려는 욕망이 컸죠.” 쇠라는 인상주의를 피상적이라고 비판하며 신인상주의라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당시 인상파 화가들보다 20살쯤 젊었던 쇠라와 시냑은 인상주의에 과감히 도전한다. 이는 1886년 열린 마지막 인상파  전시회에서였는데, 신작들만 따로 전시된 특별실의 대표작이 바로 쇠라의 걸작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였던 것이다. 평론가 펠릭스 페네옹은 이 새로운 스타일에 ‘신인상주의’라는 이름을 주었고 이는 인상주의가 혁신됐음을 그리고 주도권이 젊은 예술가들에게 넘어갔음을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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