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리’는 여럿이 다 뒤섞여 또렷하게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를 뜻합니다. 동아리라는 울타리 아래 모인 각양각색 청춘이 이리저리 뒤섞인 모양을 두고 아리아리하다 할 수 있겠네요. ‘아리아리’ 흘러가는 동아리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그 속에 ‘동동’ 떠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포착했습니다. 이번 주는 관현악 동아리 ‘루바토(RUBATO)’(서울캠 중앙동아리) 속으로 떠납니다. 아리아리한 루바토 현장으로 기자와 함께 떠나봅시다! 

콰르텟 가요 1팀의 단체 사진이다. 좌측부터 비올라,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의 모습이 보인다.

잊지마 넌 흐린 어둠 사이 
왼손으로 그린 별 하나 
보이니 그 유일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야 

-‘아이유’의 <Celebrity> 중

‘루바토(RUBATO)’는 기악예술분과에 속하는 관현악 동아리다. 1985년에 창단해 현재까지 57회의 정기 연주회를 성공리에 마쳤다. 코로나19가 덮쳐오면서 지난해부터 루바토의 정기 연주회는 중단됐다. 화음으로 가득 찼던 루바토의 동아리방, 107관(서울캠 학생회관) 607호에는 한동안 새까만 정적만이 감돌 뿐이었다. 코로나19로 제한된 환경 속에서 개최한 ‘4중주 형식의 여름 온라인 연주회(콰르텟 연주회)’는 적막을 깬 한 줄기 빛이었다. 4명이 1팀을 이뤄 5월~8월에 합주를 진행했고 팀별로 녹화한 영상을 운영진이 한데 편집해 온라인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기자가 콰르텟 연주회에 직접 참여해 루바토 현장을 체험했다. ‘콰르텟 가요 1팀’의 일원으로 보낸 여름 방학 일기를 펼쳐보려 한다. 

  1번째 장, You are my celebrity  
  어떤 곡을 연주할지 꽤 오랜 시간 논의했다. 4명의 팀원 각자가 지닌 개성대로 다양한 노래가 거론됐다. 연주하고 싶은 노래가 산더미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 계획을 세우고 짐을 챙길 때의 기분 좋은 설렘이 느껴졌다. 갖가지 노래를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서로의 교집합을 찾아갔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교집합은 ‘아이유’의 <Celebrity>였다. 

  첼로 연주자 이진욱 학생(전자전기공학부 3)은 이 노래를 그림처럼 묘사했다. “파스텔톤의 도화지 위에서 비눗방울이 톡톡 튀는 느낌이에요.” 희망찬 가사와 대중성을 갖춘 통통 튀는 멜로디. 현악 구성이 잘 어울릴 법한 노래였다. “악보는 제가 구해올게요!” 팀장을 맡게 된 이창범 학생(작곡전공 1)의 첫 임무였다. 

  기자는 악보를 받아보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정말 이 콰르텟 연주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팀에 민폐가 되지는 않을까 불안했다. 언제 바이올린을 만졌는지 기억도 가물거렸다. 오죽했으면 현에 녹이 슬어있었다. 각오를 다지며 현과 활을 새롭게 바꿨다. 열정을 가득 싣고 첫 합주를 향해 내달렸다. 

  “언젠가 꼭 오케스트라를 해볼 거야!” 코흘리개 어린 시절, 기자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며 다짐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내는 저마다의 소리가 겹겹이 쌓인 하모니, 얼기설기 섞인 이야기에 벅찬 감동을 느꼈다. 엄마를 졸라 바이올린을 사고 학원을 등록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풋내나던 바이올린 케이스는 어느덧 세월에 바래 잿빛이다. 첫 합주 연습을 위해 루바토 동아리방으로 가는 길에 오래된 바이올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나간 시간들이 얼핏 겹쳐 보였다.  

  2번째 장, 설레는 첫 만남 
  콰르텟 연주회는 소규모라도 동아리원끼리 교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동아리원들에게는 가뭄에 내린 단비처럼 달콤했을 터. 첫 만남에서 팀원들의 설레는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어색함과 설렘이 엉킨 분위기를 뚫고 서로 이름과 전공을 물으며 인사를 나눴다. 음악을 전공하는 이창범 학생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였다. 

  “작곡 전공이셨구나. 팀장 맡길 잘하셨네요!” 기자는 너스레를 떨었다. 사다리 타기로 팀장을 맡은 그였지만 알고 보면 적임자였던 셈이다. 이창범 학생은 겸손하게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클래식을 주로 다루시나요?” 기자의 질문에 이창범 학생은 평소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가요도 자주 듣는다고 답했다. “콰르텟은 대개 현악 4중주로 클래식에서 파생된 형태예요. 가요를 콰르텟으로 편곡해 연주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흥미롭죠.” 

  바이올린이 서툴렀던 이창범 학생은 피아노 반주로 역할을 대체해 연습을 진행했다. “제가 바이올린을 전혀 몰라서… 일단 피아노라도 연습해왔어요.” 조심스럽게 시작된 첫 합주. 다른 악기 소리는 들을 여유도 없이 기자는 악보에 쫓기기 바빴다. ‘죄송해요. 악보를 좀 더 숙지하고 왔어야 했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해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우리가 소화하기에 악보가 벅차지 않나 의견이 오고 갔다. 이진욱 학생은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 하는 어려운 곡이라며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비올라 연주자 윤지희 학생(컴퓨터예술학부 2)은 비올라를 오랜만에 잡아 어려움을 겪는 듯했다. 이창범 학생은 부드럽게 팀원들을 이끌었다. 반주를 천천히 맞춰주며 첼로, 비올라, 바이올린의 화음을 다듬었다. “악보가 생각보다 어려워요. 쉽게 편곡할 수도 있으니까 어려운 점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다음 연습을 기약하는 이창범 학생의 말로 첫 연습은 끝을 맺었다. 

피아노를 담당하는 이창범 학생의 말에 팀원들이 집중하고 있다.

  3번째 장, 따로 또 같이! 연습 또 연습 
  첫 합주 연습 이후 코로나19가 또 기승을 부렸다.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동아리방은 출입이 금지됐고 연습 공간이 부재한 상황이었다. 한동안 집과 사설 연습실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음악을 익혔다. 혼자만의 악기 소리가 제법 무르익어갈 무렵 우리는 다시 뭉쳤다. 

  동아리 차원에서 대여한 사설 연습실에서 2번째 합주 연습을 진행했다. 이창범 학생은 바이올린 대신 피아노로 참여하겠다 확정 지었다. “저는 피아노를 오래 다뤄서 팀원들의 소리를 들을 여유가 있거든요. 조화롭게 소리를 다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는 합주 연습을 본격적으로 진두지휘했다. 든든한 피아노 반주 위에 차츰 안정적으로 첼로, 비올라, 바이올린 소리가 쌓여 올라갔다. 

  3번째, 4번째 합주 연습을 거듭할수록 합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비올라 소리가 눈에 띄게 안정됐다. 윤지희 학생은 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연습에 매진했다. “합주할 때 제 연주가 부족하게 느껴져 팀원들에게 미안했어요. 매일 조금씩이라도 연습하려고 노력했죠.” 특히 박자를 따라가기 버거웠던 윤지희 학생은 세부적인 연습으로 문제를 극복했다. “활을 다루고, 왼손가락으로 음을 짚는 게 익숙하지 않다 보니까 박자를 따라가기 어려웠죠. 빠른 박자에서 뭉개지지 않으려고 제가 연주할 수 있는 박자로 반복 연습했어요.”  

  이창범 학생은 가요의 특성을 설명하며 칭찬을 건넸다. “가요가 클래식보다 쪼개지는 리듬이 많고 박자도 빨라서 연주하기 까다로워요. 지희님이 이 곡을 소화하신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4번째 장, 이 순간을 위해 지나온 모든 순간 
  마지막 합주가 다가왔다. 영상을 녹화한다고 생각하니 식은땀이 흘렀다. 모두 악보를 외웠는데 기자만 악보를 외우지 못했다. 악보에 의존해야 완곡할 수 있는 상황이 부족했던 연습량을 드러내는 듯해 부끄러웠다. 촬영 전 1시간 정도 마무리 연습을 했다. 머리로는 중요한 요소들을 최종 점검하고 몸으로는 활을 그으며 딱딱하게 긴장된 몸을 예열했다. 이창범 학생은 자유롭게 음악을 즐기자고 팀원들을 북돋웠다. “연주자가 경직되면 음악에 긴장감이 그대로 담겨요. 자신감 있게 놀아봅시다!” 악보를 충실히 ‘수행’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기자는 순간 큰 감명을 받았다. 지금은 잘하는 것보다 즐기는 게 중요한 순간이었다. 

  촬영이 끝나고 이진욱 학생은 다가올 정기 연주회에 기대감을 내비쳤다. “앞으로 있을 정기 연주회가 기대됩니다!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악기로 함께 소리를 내는 순간이 궁금해요.” 여름 방학은 끝났다. 뜨겁게 열정을 태웠던 콰르텟 연주회도 이제 영상 공개만을 앞두고 있다. 기자는 각자 다른 궤도를 돌고 있던 3명의 동아리원을 루바토에서 만났다. 이들과 어느 여름, 어느 한순간 같은 궤도에서 만나 하모니를 이루는 짜릿함을 맛봤다. 악기 실력은 상관없다. 루바토에서는 누구나 화음의 일부를 이룬다. 지금의 시련을 넘어 루바토의 정기 연주회가, 자유롭게 사람들이 모이는 날이 꼭 다시 찾아오기를 소망해본다.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마지막 합주에서 모든 걸 쏟아내고 있다. 서로를 쳐다보며 호흡을 맞출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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