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후 처음 개최된 올림픽인 만큼 많은 사람이 열광했던 2020 도쿄 올림픽도 어느덧 폐막 한 지 1달이 돼간다. 승패나 성적과 상관없이 선수들의 도전과 노력은 그 자체로 가치 있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유독 돋보였던 쾌거로는 한국 양궁 대표팀의 금메달 석권과 여자배구 대표팀의 4강 진출이 떠오른다. 특히 여자배구 대표팀은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9년 만의 4강 진출이었고 주장 김연경 선수의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점에서도 더욱 각별하고 의미 있는 결과를 냈다.

  이렇게 올림픽에서 걸출한 실력을 뽐낸 여자 선수들에게는 응당 붙는 수식어가 있다. 김연아, 이상화, 박세리, 김자인 등 훌륭한 성적을 거둔 여자 선수를 모두 지나쳐간 칭호, ‘여제’다. 김연아 선수는 피겨여왕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하지만 이상화 선수를 빙속 여제나 김자인 선수를 암벽 여제라 부르지 않는 것은 어색하기까지 하다. 마찬가지로 김연경 선수를 부르는 별명과 수식어가 다양하지만 언론과 방송에선 주로 그를 ‘배구 여제’라 부른다. 남녀선수 통틀어 해외리그 최초 진출과 소속 팀의 최초 및 연속 우승 달성, 세계적인 배구 명장들의 극찬 등 여러 요인이 결합한 결과였으리라.

  그런데 ‘여제’라는 말. 잘 생각해 보면 어딘가 묘하지 않은가? 황제와 구별되는 여제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성별을 특정하면서 여성을 타자화한다. 이런 표현은 선수들이 경기력과 무관한 질문을 받는 일이나, 방송가의 ‘나도 여자랍니다’라는 식의 연출에 일조한다. 이해가 어렵다면 고루한 예시긴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자. ‘여배우’에 비해 ‘남배우’라는 단어는 잘 쓰이지 않는다. 기본형인 ‘배우’라는 단어가 이미 남성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황제로 인정할만한 남자 배구 선수의 자리를 비워둬야 하는 것 마냥, 김연경에게 ‘배구 황제’라는 칭호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여제 만들기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클래식 여제로 불린다. 남자 피아니스트들은 자연스레 건반의 황제가 된다. 언론과 미디어에서 여제는 추앙을 가장한 프레임이 된 듯하다. 단순히 황제가 여러모로 좋은 표현이니 성별과 관련 없이 사용해 달라는 유치한 시비가 아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학습하고 이는 무의식적인 연상으로도 이어진다. ‘woman’이 아니라 ‘man’, ‘여왕’이 아니라 ‘왕’, ‘여배우’가 아니라 ‘배우’가 기본형이듯 기본형 외 여성을 특정하는 단어 사용은 그들이 기본형으로서 완전한 왕이나 황제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만든다. 전방위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이런 맥락의 언어에 너무 익숙하기 쉬운 사회다.

  다시 김연경에게 돌아가 보자. 비인기 종목이었던 여자배구의 대중화와 유럽 진출 첫 시즌 만에 팀 창단 후 첫 챔피언스 리그 우승, 8경기 207득점이라는 올림픽 신기록까지. 김연경 선수는 황제다. 당신은 이 말이 어색한가?

이혜정 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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