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하나에 조화와 자유, 그리고 예술
  • 권지현 기자
  • 승인 2021.09.05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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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페네옹의 초상, 폴 시냐크, 1890. 강한 원색을 사용해 마치 공간이 분할된 듯한 느낌을 준다.
'펠릭스 페네옹의 초상', 폴 시냐크, 1890. 강한 원색을 사용해 마치 공간이 분할된 듯한 느낌을 준다.

 

예술과 과학. 어쩌면 대비되는 단어를 합친 두 화가가 있다. 1명은 조르주 쇠라(쇠라), 또 다른 1명은 폴 시냐크(시냐크)다. 시냐크는 인상주의가 남긴 유산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발전시킨 신인상주의의 실질적 수장이다. 그는 화가가 된 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예술을 위한 삶을 살았다. 점으로 자연스러운 풍경을 표현하고 자유를 꿈꾼 시냐크에 관해 살펴봤다.

  인상주의가 쏘아 올린 작은 공 
  프랑스 파리의 부유한 상인 가정에서 태어난 시냐크는 건축가를 꿈꾼 청년이었다. 그런 시냐크를 화가의 길로 이끈 것은 1880년에 열린 클로드 모네(모네)의 전시회였다. 1870년대 후반, 산업혁명으로 현대문명이 싹트던 유럽은 기존의 양식과 행동을 바꿔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예술가들은 인상주의를 통해 예술의 진보를 주도했다.

  시냐크 역시 인상주의 영향을 받았는데, 자연을 대상으로 한 모네의 인상주의가 그를 화가의 길로 이끌었다. 박재연 교수(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는 인상주의가 시냐크의 초기 화풍에 끼친 영향을 언급했다. “시냐크는 인상주의의 실험적인 면모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받았어요. 시냐크의 초기 작품을 보면 모네의 소재와 기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죠.”

  시냐크의 화풍이 변하는 때가 찾아왔다. 바로 1884년에 열린 독립미술가 전(展) ‘앙데팡당’에서 쇠라의 작품을 접한 후였다. 시냐크는 색채 병치를 적용한 쇠라의 작품에 큰 감명을 받아 그와 함께 회화를 연구하는 동료로 발전했다.

  쇠라는 색을 섞으면 탁해지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점묘법을 만들었다. 점묘법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점으로 나란히 찍어 그 색들이 관람자 눈에서 혼합되도록 하는 기법이다. 녹색을 표현하기 위해 노란색과 파란색 점을 번갈아 찍는 방식이 그 예시다. 두 화가는 엄격한 점묘법을 통해 더 선명하고 화려한 색의 그림을 얻고자 했다.

  점들의 하모니 
  시냐크는 선, 색채 그리고 형태의 조화를 추구했다. 쇠라의 죽음 이후 시냐크는 자신의 개성을 찾아 모자이크를 사용하고 높은 명도의 색을 조화롭게 만들지 못하는 점묘법들을 버렸다. 또한 수채화, 목탄, 데생(선으로 이미지를 그려내는 기술), 먹물을 사용해 풍경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 했다. 박재연 교수는 시냐크의 시도가 색의 주관적인 분석에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다. “시냐크는 전반적인 화면 구성과 각각의 회화 요소 간의 관계를 더 집중적으로 탐구했습니다. 기계적인 점묘에서 나아가 색채의 역할과 구성에 집중해 색채의 주관적인 분석을 가능케 한 거죠.”

  시냐크 작품 중 <아비뇽의 교황청>은 시냐크의 새로운 화풍을 잘 드러낸다. 이 작품은 쇠라의 점묘법과 달리 듬성듬성한 색 점으로 이뤄졌다. 색 점이 너무 작으면 서로 합쳐진 것처럼 보여 그림이 회색빛을 띤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에 맑은 톤의 사각형 색 점을 사용했고 규칙적인 붓 자국을 나란히 배열해 ‘생 베네제 다리’를 그렸다. 또한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동화 속 성의 모습과 같은 건축물을 그려냈다. 이는 마치 건축물이 무중력 상태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물결을 묘사할 때도 점들을 수평으로 나열해 작은 모자이크 타일처럼 보이게 했다.

좌측부터 아비뇽의 교황청, 폴 시냐크, 1909 그리고 생 트로페의 항구, 폴 시냐크, 1899. 시냐크의 새로운 화풍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시냐크는 점묘법뿐만 아니라 풍경화에도 영향을 줬는데, 이 두 작품 역시 풍경화다.
좌측부터 '아비뇽의 교황청', 폴 시냐크, 1909 그리고 '생 트로페의 항구', 폴 시냐크, 1899. 시냐크의 새로운 화풍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시냐크는 점묘법뿐만 아니라 풍경화에도 영향을 줬는데, 이 두 작품 역시 풍경화다.

  나란한 점으로 자유를 꿈꾸다 
  시냐크를 포함한 예술가들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무정부주의 사상에서 자신이 속한 사회체제의 변화 방향성을 찾으려고 했다. 시냐크는 아나키즘 잡지에 그림을 실을 만큼 무정부주의에 관심을 가졌다. 산업화로 인한 부의 양극화와 신흥 자본주의가 사회의 조화를 파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품 <펠릭스 페네옹의 초상>에서 시냐크의 이러한 무정부주의 성향이 드러난다. 작품에서 그는 미술비평가이자 무정부주의자였던 페네옹의 초상을 점묘로 표현했다. 추상적인 패턴과 색채를 사용했고 색조와 형태, 구도를 기계적으로 분할해 안정성을 보여줬다.

  박재연 교수는 이 작품이 점묘법을 효과적으로 적용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인물과 배경을 3차원적 공간에서 어우러지게 배치하기보다 각각의 요소들이 조형적으로 맺고 있는 관계를 강조하려 했어요. 이를 위해 분할주의에 입각한 점묘법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작품이랍니다.”

  항구의 남자, 그의 예술을 기억하며 
  19세기 중반부터 풍경화가 많이 그려졌고 시냐크도 풍경화에 영향을 준 화가였다. 그의 풍경화에는 바다가 많이 등장한다. 평생 항해를 즐길 정도로 바다와 가까운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생 트로페의 항구>에서 그는 크고 강한 모자이크 풍으로 프랑스 도시의 해변 항을 묘사했고 생 트로페 근처 항구 주변의 높은 집과 작은 범선들을 점묘법으로 그렸다. 꼼꼼하게 점을 찍지 않고 큼지막한 터치로 바다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박재연 교수는 이 작품에서 시냐크의 대담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유럽의 많은 항구를 직접 돌며 만난 풍경들은 시냐크의 예술세계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바다를 담은 시냐크의 풍경화에서 예술 실험을 하던 화가의 숙명적인 모험심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냐크는 신인상주의 화가이자 저술을 남긴 이론가였다. 박재연 교수는 시냐크의 업적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수많은 예술 실험이 이어지던 시기에 동료들과 함께 실험을 이론화해 정리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시냐크의 분할주의는 후대의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바로 점묘화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또한 시냐크는 독립미술가 전(展) ‘앙데팡당’을 기획해 젊은 작가에게 미술 공간을 제공했고 신인상주의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들라크루아로부터 신인상파까지』를 저술하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는 일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을 시도하며 후대 화가들을 위해 살았던 그의 예술은 지금도 그렇듯,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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