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입니다.” 1979년 4월 광주의 한 가정집에 신문이 배달됐다. 여느 때와 같은 일간 신문이었다. 준곤씨는 일어나자마자 그 신문을 들고 집에 들어와 휙휙 신문을 살펴봤다. 이번 신문도 평소와 별다른 것 없는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준곤씨를 누나인 경숙씨는 한참을 바라보다 붙잡았다. 

  “신문을 볼 때 큰 타이틀의 기사만 보지 말고 저 밑에 있는 조그만 뉴스도 보아야 해. 밑에 있는 것이 진짜 큰 기사일 수 있는데 작게 보도된 것일 수 있어. 조그마한 보도를 보면 숨어있는 진짜가 있기 마련이거든.” 안타깝게도 이 말은 경숙씨가 준곤씨에게 살면서 건넨 마지막 말이 됐다. 

  그로부터 약 4달 뒤, 경숙씨는 준곤씨 앞에 시신으로 돌아왔다. 1979년 8월 11일 YH 무역회사의 무자비한 공장 폐쇄 결정에 따른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참사였다. 경숙씨는 YH 무역회사에 다니던 여성 노동자 중 1명이었다. 

  당시 여성 노동자의 작업 환경은 너무나도 열악했다. 한 사람당 1평 남짓한 공간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며 일했고 ‘공순이’라고 불리며 무시당하는 일이 흔했다. 이런 여성 노동자들 이야기가 남성들의 전유물이자 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도배된 당시 신문 속에 자리 잡기는 힘들었다. 경숙씨는 사람들이 집중해서 보지 않는 가장자리에 실린 작은 기사를 보며 자신들의 목소리와 비슷하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신문에는 탑 기사가 있고 뉴스에는 탑 보도가 있다. 모두 그날의 중요 이슈가 담긴 기사가 실리는 곳이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중요 이슈’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참여하거나 피해를 본 사건, 그날 있었던 정치·경제계 사건, 선거나 올림픽 같은 대규모 이슈 등이 있을 것이다. 공통점은 파급력이 커 많은 독자의 관심을 끄는 사건이라는 점이다. 

  언론은 시의성과 보도 내용이 가진 영향력을 고려해 굵직한 기사를 선정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언론 스스로의 영향력에 관해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사회 구조적으로 외면당한 사람들과 권력으로부터 피해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지나칠 수 있는 작은 목소리들을 언론마저 듣지 않는다면 세상 밖으로 나오기는 쉽지 않다. 그들에게 있어 언론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지막 희망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경숙씨가 준곤씨에게 건넨 말은 나 역시 부끄럽게 만들었다. 공부량이 많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쉴 때는 생각하면서 보게 되는 뉴스보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빠져드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싶다는 이유로 이전의 난 신문이나 뉴스를 자주 찾아보지 않았다. 보더라도 굵직한 헤드라인만 훑어봤다. 

  4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신문에는 우리가 놓친,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작은 목소리가 있다. 다가올 언론은 그런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곳이 되길. 그들의 목소리를 나도 모르게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키워주는 내가 되길 바란다.

 

오진실 사회부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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