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림(Do Dream)은 ‘꿈꾸고(Dream) 도전하라(Do)’, ‘꿈꾸고(Dream) 두(Do)드려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 여론부는 다양한 도전과 경험 끝에 중앙대 강단의 문을 두드린 이들을 만납니다. 강단에서 중앙대 학생들을 만나기까지 그들의 여정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번 주는 인공지능,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의 실무 현장과 강단을 종횡무진 누비는 김학래 교수(문헌정보학과)를 만나봤습니다. 『지식그래프』의 저자인 김학래 교수는 여러 학생과 함께 디지털 아카이브 <COVID-19 : 우리의 기억>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는데요. 소통의 등불로 강단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그의 두드림에 우리 모두 함께 귀 기울여봅시다!  김서경·백경환 기자 kim_quartz@cauon.net   

사진 김수현 기자

“지식 그래프라고 하는 분야는 수많은 데이터의 기반에 가까워요. 서로 다른 데이터들을 연결하고 때로는 통합도 해주죠. 눈에 보이는 화려한 기술이라기보다는 아래에 뻗어있는, 꼭 필요한 뿌리 같은 기술이랍니다. 그런 측면이 어쩌면 제 성격과도 잘 맞아서 멈추지 않고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똑똑. 문을 두드리고 들어간 김학래 교수(문헌정보학과)의 연구실에는 커다란 컴퓨터 몇 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딱딱하고 차가운 컴퓨터를 떠올리면 삭막한 분위기가 연상될지도 모르지만 그의 연구실은 온기를 품고 있는 양 따뜻했다. 연구실 한쪽에 놓인 넓은 책상은 주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곳으로, 그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공간이다. 연구실을 다녀간 학생과 그 학생을 대하는 김학래 교수의 ‘진심’이 묻은 책상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강단에 서기 전에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대규모 지식 그래프를 개발했다고.

  “삼성전자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KISTI는 정부 출연 연구소이고요. 삼성전자에 들어갈 때 지식 그래프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 입사했죠. 관련 산업 전반에서 쓸 수 있는 기술 데이터와 의미 있는 산출물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답니다.” 

  -연구 위주의 활동을 하다 교수로 직업을 바꾼 계기는.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박사 과정을 밟으면 교수라는 직업을 자연스럽게 고려해보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석·박사를 하는 동안 그런 생각을 했고요. 다만 처음부터 바로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마음은 크지 않았어요. 제가 연구하는 분야 특성상 실무가 중요하기 때문에 실제 현장에서의 경험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론과 실무가 조화를 이룰 때 수업도 현장감이 살아 있을 것 같았죠. 이직을 1~2번 정도 하면서 언젠가는 현장이 아닌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보고 싶었는데, 흐름이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사기업과 정부 기관, 학교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데이터 연구를 했는데 접근 방식에 차이가 있었나. 

  “사기업에서 다루는 데이터는 아무래도 비즈니스하고 가장 연관이 있어요. 기업마다 추구하는 본질은 다르거든요. 회사마다 데이터를 얼마나 중요하게 바라보는지와 관점에도 차이가 있죠. 삼성전자에 있을 때 제일 관심 있게 봤던 건 전자제품 관련 데이터였어요. 회사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데이터를 사용해요. 그 문제나 목표에 관한 데이터에 관심을 두는 건 당연한 일이죠. 반면 정부 출연 연구소는 대부분 정부 정책과 가까운 공공 과제를 맡게 돼요. 또 정부에서 생산한 데이터를 만지기도 하고요. 정부 출연 연구소와 사기업이 하는 일에 분명 차이가 있기는 해요. 재미있는 건 학교에서는 양쪽을 다 할 수 있죠.” 

  -공학계열학과가 아닌 문헌정보학과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다. 

  “제가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외국에서 연구하는 동안 국내 문헌정보학 교수님들과 교류가 많았어요. 문헌정보학에서 얘기하는 주제를 연구에 많이 차용했거든요. 

  문헌정보학이라고 하면 보통 물리적 공간의 도서관을 먼저 떠올리죠. 그런데 도서관을 가상으로 옮겨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이거든요. 오래전부터 인류가 도서를 체계화해서 자료를 만들고 조직·분류하는 이론을 확장해 놓은 게 웹이라고 보면 돼요. 제 논문에서 많은 부분이 문헌정보학 이론을 사용했고 지금 진행 중인 연구들도 결이 비슷해요. 저는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데이터 사이언스처럼 공학적인 주제를 바탕으로 좀 더 실제와 가까운 데이터를 다루는 거죠.

  학문이 학과별로 구분되는 시대는 지난 것 같아요.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대가 오지 않았나. 제가 문헌정보학의 전통적인 부분을 다 이해하지 못할 수 있지만, IT 기술을 응용해야 하는 부분에는 도움을 줄 수 있죠. 연구하다가 부족한 부분이 생기면 AI학과나 컴퓨터공학과에 있는 분들하고 협업도 가능하고요. 이때 저 같은 사람이 중재자 역할도 수행할 수 있을 겁니다.” 

  -아일랜드에서 유학을 했다고. 

  “우연이었어요. 당시 제 연구 분야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논문을 쓴 연구소 ’DERI (Digital Enterprise Research Institute)’가 아일랜드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DERI를 향한 동경이 있었죠.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거의 마칠 때쯤에 지도 교수님이 아일랜드 콘퍼런스에 가서 마침 제 이야기를 잘 해주셨어요. 상황이 잘 맞아떨어지면서 얼떨결에 가지 않았나 싶어요. 아일랜드를 특정했다기보다는 DERI가 워낙 유명해서 한번은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죠.” 

  -유학 당시 힘든 점은 없었나. 

  “생활 측면을 말하면, 아일랜드는 여름에 약 20일을 빼고 매일 비가 왔어요. 또 제가 살 적엔 생활 기반 시설이 워낙 좋지 않아 난방을 해도 추웠죠. 그래도 지내다 보니 초록빛으로 가득한 아일랜드의 자연환경이 참 좋았어요. 연구 측면에서는 주눅이 들기도 했어요. 연구소에 가니까 제가 많이 봤던 논문을 쓴 사람이 옆에 딱 앉아 있었어요. 저는 그 친구 논문 해석하고 있는데 말이죠.(웃음) 움츠러들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이런 위축감이 저한테 독이 된다고 생각해서 극복했어요. 처음에는 언어가 잘 안 통해서 손짓, 발짓 다 했죠.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름답게 포장은 되네요.” 

  -교수님도 그런 고민을 할 줄은 몰랐다. 어떻게 극복했는지. 

  “DERI에서 ‘프라이데이 토크’라는 걸 했어요. 연구소에서 다 같이 점심을 먹은 다음 그날의 발표자가 자신이 진행 중인 연구에 관해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약 60~70명의 연구원이 앉아서 질문하고 토론도 하죠. 그런데 제가 연구소 도착해서 3일 만에 발표를 맡았어요. 연구소장님이 ‘이날 발표할래?’ 이렇게 물어봤을 때 ‘아니요’라고 못하고 습관적으로 ‘네’라고 해버린 거죠.(웃음) 준비가 덜 된 상태로 프라이데이 토크를 시작했어요. 제 연구인데 다들 저보다 더 많이 알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재밌는 거예요. 이런 경험을 하고 제 마음가짐을 완전히 바꿨어요. ‘나는 영어도 모르고 나보다 다 잘하는 애들이니까 일단 배우자, 창피하면 창피한 대로 준비가 안 됐으면 안 된 대로.’”

  -강의에서 어떤 내용을 전하고 싶나. 

  “저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질문이네요. 사실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굳어진 생각은 아직 없는 것 같아요. 다만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3가지 이야기가 있죠. 

  1번째로 강조하는 게 ‘문제 정의’예요.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내용이기도 하죠. 문제를 정의하지 못하면 누군가 정의해 놓은 문제만 풀어야 해요. 문제를 정의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아주 평범한 생각을 해요. ‘그 부분을 조금 바꾸면 되지 않을까?’ 이런 사고를 계속해서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차이가 생기죠. 끊임없이 의심하고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한 거예요.

  다음에는 문제를 풀어야죠. 저는 문제 푸는 방법으로 각자 칼 하나씩은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해요. 공학계열 학생의 경우에는 프로그래밍, 사회과학계열 학생에게는 통계와 같은 방식으로 말이죠. 자신이 배우는 전공이나 영역에서 전문적인 칼 하나는 갈아놓을 필요가 있어요.

  마지막으로는 ‘프레젠테이션’입니다. 즉, 설명을 잘 할 수 있어야 해요. 설명은 슬라이드를 예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문제를 어떻게 정의했고,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를 누구한테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대상이 초등학생이든, 국회의원이든 그 수준에 맞게 내가 푼 문제를 설명할 줄 아는 능력을 말하는 거예요. 이 3가지 능력은 제가 하는 수업 말고도 모든 수업에 공통으로 적용이 돼요. 바로 이런 부분이 단편적인 지식 대신 제가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내용이 아닐까 싶어요.”

  -중앙대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사실 첫 수업에 들어갔을 때 많이 떨면서 들어갔거든요. ‘학생들이 아주 똑똑하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수업을 했죠. 다들 고등학교 시절까지 많은 노력을 했잖아요. 충분히 역량이 있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본인을 믿고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대학교에서 보내는 기간은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대학 생활을 하면서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언제 기뻐하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무슨 유형의 일을 하고 싶지 않은지도 잘 정리해 놔야 하죠. 직업이 먼저가 아니라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해요. 냉정하게 자신을 판단하고 알아가는 연습을 해봤으면 합니다.

  또 교수님들과 이야기를 자주 하면 좋겠어요. 교수님 연구실에 큰 벽을 넘듯 오지 말고 노크 한 번에 들어왔으면 하죠. 교수님들이 도와주려는 마음이 있으면 절대 피하지 않거든요. 학생과 교수님의 사이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학생들도 노력하면 어떨까 싶어요. 현재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잖아요. 무엇보다 건강해야겠죠. 언젠가 대면으로 재개할 때 즐거운 모습으로 보고 싶어요.”

김학래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에서 끊임없이 달려온 여정을 이야기하는 그의 눈빛에는 활력이 가득했다. 사진 남수빈 기자
김학래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에서 끊임없이 달려온 여정을 이야기하는 그의 눈빛에는 활력이 가득했다. 사진 남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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