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온도는 여전히 뜨겁다
  • 권지현
  • 승인 2021.08.16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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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학의 근간을 찾아서

‘서라벌예술학교’를 아시나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침체된 한국의 문화예술을 부흥시키기 위해 설립된 최초의 종합예술대학입니다. 현재 문화예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수많은 예술인의 본거지인 중앙대 예술대의 근간이죠. 서라벌예술학교 설립 당시 인가를 받은 연극영화과와 문예창작과는 우리나라 최초의 학과인데요, 서라벌예술대의 역사와 함께 스크린과 문단에서 활발히 활동하신 두 동문 이원세 영화감독과 이문구 소설가의 이야기도 담아봤습니다. 그럼 서라벌예술대, 그 역사의 현장 속으로 함께 가보실까요? 
최수경 기자 petitprince@cauon.net

사진은 성북구 돈암동에 위치했던 서라벌예술대 본관의 전경이다.
사진은 성북구 돈암동에 위치했던 서라벌예술대 본관의 전경이다.

“열심히 살아라. 많이 체험하라. 열심히 써라. 열심히 읽어라.” 서라벌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들은 학생에게 이렇게 당부했다고 전해진다. 예술인의  열정 가득한 인생이 돋보이지 않는가. 20여 년간 서라벌예술대는 여러 분야에서 인재를 배출하며 놀라운 발전을 보였고 중앙대로 편입되며 열정을 이어가고 있다. 중앙대 예술대의 뿌리였던 서라벌예술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서라벌예술대의 탄생 
  우리나라 문화와 예술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고 낙후된 상태였다. 서라벌예술학교 설립자 김세종 박사는 ‘예술은 민족문화의 핵심이다. 민족문화의 융성 없이 민족의 융성은 기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문화예술의 창조와 민족문화의 민주적 건설, 예술문화의 민족적 완성이라는 교육방침 아래 1953년 5월 23일 최초의 종합예술대학인 서라벌예술학교가 탄생했다. 

  설립 당시 문교부로부터 문예창작과와 연극영화과, 음악과가 인가를 받았다. 문예창작과와 연극영화과는 국내 최초 설립된 학과였다. 그러나 두 학과를 향한 인식은 부정적이었다. 문예를 예술로 여기는 학과는 없었으며 연극과 영화를 전공하면 타락한다는 사고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문예창작과에서 시인과 소설가, 희곡 작가가 많이 배출됐고 연극영화과 졸업생이 예술 현장에서 크게 돋보이자 그 인식은 뒤집혔다. 

  예술인 육성을 위해 도약하다 
  설립 인가 후 4년이 지나 서라벌예술학교는 초급대학으로 승격 인가를 받았다. 강의실과 시설이 넓어지면서 학생 수가 늘어났다. 재정 기반이 안정되자 본격적으로 인재 배출을 위한 교육도 시작됐다. 서라벌예술초급대학은 이론에 바탕을 두고 실기교육에 주력해 다수의 예술인을 배출했다. 교수진도 한국 문단에서 내로라하는 작가와 시인, 평론가로 구성됐다. 

  당시 학생이었던 한분순 시인은 서라벌예술대 시절을 서술한 『문학이라 쓰고 인생이라 읽다』(김주영 외 2명 씀)에서 ‘학생의 글을 일일이 다 읽고 지적해주는 수업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고 전했다. 

  4년제 정규대학으로 승격 
  1964년 서라벌예술초급대학은 문교부로부터 4년제 정규대학 인가를 얻었고 교수와 학생의 사기도 높아졌다. 교수들은 학생에게 자유와 존중을 줬고 학생들은 그에 힘입어 문학을 향한 강렬한 열망을 보였다. 

  당시 재학했던 오정희 강사(예술대학원)는 “힘든 역경도 문학의 바탕을 이뤘고 문학에 대한 자기 존재감이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낼 힘이 됐다”며 “작가나 시인으로 활동하는 교수님 수업을 통해 작가의 생활과 문학을 깊이 이해하고 문학인의 실체를 경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극영화과는 앞장서서 대학의 연극 교육을 이끌었다. 동문들은 연극과 영화, 방송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하며 여러 대학과 예술고등학교의 연극교육에 기여했다. 

  편입을 마주한 학생들의 논쟁 
  1971년 김세종 이사장의 취임 이후 대학 재정 상황이 극도로 나빠지면서 서라벌예술대 경영이 어려워졌다. 이에 1972년 3월 중앙문화학원에 경영권을 넘겼다. 국내 유일 예술대학이 종합대학으로 편입되자 학생들은 다양한 입장을 보였다. 

  서라벌예술대가 종합대학에 속하면서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반면 예술전문대학으로서의 순수성이 없어진다는 시각도 보였다. 이시백 소설가는 『문학이라 쓰고 예술이라 읽다』에서 서라벌예술대 배지를 여전히 가슴팍에 매달고 다니던 선배 가운데는 중앙대로 입학한 신입생을 다른 학교 학생으로 대하듯 여겼다고 이야기했다. 오정희 강사는 현장에 있지는 않았으나 일반대학에 편입되면서 서라벌예술대의 고유성이 사라진다는 생각에 저항이 있었던 것 같다고 언급했다. 

  더 나은 예술마당을 위해 
  현재 중앙대 예술대는 교육 여건이 발전하며 전반적인 예술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고 있다. 동문들은 연극과 영화, 촬영 분야에서 중요한 업무를 맡고 국내 주요 문학상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우수한 예술창작인을 양성하기 위해선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김현 동문(공예학과 68학번)은 “디자인학부는 많은 사람과 접촉하는 대도시에 있어야 한다”며 학과 특성에 맞는 위치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오정희 강사는 청년들이 넓게 볼 수 있는 시야를 틔우는 것이 중요하므로 한없는 자유로움을 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 측에서 예술가로서 자질과 견문을 부여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서라벌예술대는 학생에게 자유와 존중을 부여하는 학풍으로 진정한 예술을 추구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중앙대 예술대에 재학 중인 예술인에게도 끝없는 자유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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