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수필 및 제15회 비평공모
  • 중대신문
  • 승인 2021.06.07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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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심 심사평
수필 부문 : 류찬열 교수(다빈치교양대학) / 문학·영상·사회비평 부문 : 한승우 교수(다빈치교양대학)

 

이렇게 진행했습니다
중대신문이 주최하는 제9회 수필 공모 및 제15회 비평 공모가 막을 내렸습니다. 3월 15일부터 지난달 2일까지 이뤄진 이번 공모에는 작품 총 17편이 접수됐습니다. 공모는 수필, 문학·영상·사회비평 부문으로 구분해 받았습니다. 

  부문별로는 수필 11편, 문학비평 2편, 영상비평 3편, 사회비평 1편이 응모됐습니다. 심사는 예심과 본심으로 나눠 진행했습니다. 

  수필 부문 예선 심사는 류찬열 교수(다빈치교양대학)가 맡았습니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수필 5편이었습니다. 문학·영상·사회비평 부문 예선 심사는 한승우 교수(다빈치교양대학)가 담당했습니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문학비평 1편, 영상비평 1편이었습니다. 사회비평의 경우 본선을 통과한 작품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본선심사는 부문별로 나누어 진행했습니다. 수필은 고부응 교수(영어영문학과), 문학비평은 이경수 교수(국어국문학과), 영상비평은 박명진 교수(국어국문학과)가 심사했습니다. 최종심사 결과 수필과 문학·영상비평 부문에서 당선작이 뽑혔습니다. 

  이번 공모전에 참여한 모든 응모자 학생분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더불어 귀한 시간 내어 심사를 맡아주신 교수님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밤을 지새우는 그대에게

수필 부문 
이번 중대신문 수필 공모에는 총 11편이 응모하였다. 지난해(34편)에 비해 응모 편수는 많이 줄었지만, 3편을 제외한 8편의 응모작은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문장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하여 예심 심사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8편 모두를 본심 심사 대상 작품으로 선정하려 했으나, 두 가지 기준을 적용하여 본심 심사 대상 작품을 어렵게 선정하였다. 

  두 가지 기준 중, 하나는 표현이 논리를 앞서는 글과 논리가 표현을 따르지 못하는 글은 제외한다는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소재를 주제화하는 과정에서 작위와 비약이 발생한 경우는 제외한다는 기준이다. 이 두 가지 기준을 통과하여 본심에 오른 수필은 〈나는 가능성이 있는 나를 버리기로 했다〉, 〈누룽지 사탕〉,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 〈시선으로부터〉, 〈부러진 뼈에 죽음과 삶을 겹쳐보았네〉 등 총 5편이다. 

  좋은 글이란 자신의 경험을 윤리적 성찰과 비판적 사유를 토대로 공동체의 문제로 확장한다. 다시 말해, 좋은 글이란 자기 안에 갇히지 않고, 자기 밖으로 나아간다. 예심을 통과한 5편의 글은 저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타자 그리고 세계와 소통하는데 성공하였다. 본심에 오르지 못한 6명의 응모자에게는 위로의 말씀을, 본심에 오른 5명의 응모자에게는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아울러 본심에 오르지 못했다고 너무 낙담하지도 본심에 올랐다고 너무 기뻐하지도 않기 바란다는 말씀도 함께 전한다. 글쓰기가 재능(타고나는 것)의 산물이 아니라 노력(만들어지는 것)의 결과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지치지도 그치지도 않을 글쓰기를 응원한다. 

문학·영상·사회비평 부문 
제15회 비평 공모에는 문학비평 2편, 영상비평 3편, 사회비평 1편으로 모두 6편의 작품이 투고되었다. 지난해에는 분야별로 많은 원고가 쏟아진 것에 비한다면, 이번 응모는 상당히 저조한 수준이다. 지난해 이맘때 코로나라는 사회적 재난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청춘들이 어느새 뉴노멀의 상황에 적응해 무감각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단절의 시대에 침묵을 선택하기보다 글로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기를 바란다. 또한 투고한 비평문들 중에서는 분량 미달이거나 지원한 분야의 특성을 무시한 경우가 많아서 예선에서 탈락하는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늘 기본부터 충실히 다져야 만사형통임을 잊지 말자. 

  누구나 심장을 ‘쿵’하고 내려앉게 만드는 문장의 한 구절과 시공간을 한순간 ‘뚝’하고 멈추게 만드는 멋진 스크린 속 영상을 볼 때, 이런 것이 예술의 쾌감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모든 것에 예민하고 절실한 나이 이십 대에는 나 역시 이런 감정이 더욱 잦았다. 그럴 때마다 밤이면 컴퓨터 앞에 앉아 한글 프로그램을 실행 시켜 놓고, 하얀 바탕에 검정 커서가 깜빡이는 것을 노려보는 순간들이 있었다. 불면의 밤에 탄생한 글들이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어리숙했지만, 딱 그 나이에만 쓸 수 있었던 활력 넘치는 문장들이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능숙해졌고 적절하게 치고 빠지는 기술도 늘었지만, 그 시절에만 가능했던 재기발랄은 사라지고 없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입속에서 침이 돌면서 무언가 말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면, 그것을 삼켜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 시절에만 가능한 말들과 생각들이 여러분들 입 밖으로 나아가 무언가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니까. 멋진 명언과 익숙하지 않은 관념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어휘와 문장에 더욱 집중했으면 한다. 분량과 구성도 허투루 생각하지 말자.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는 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오늘도 불멸의 밤을 지새우는 여러분들을 위해 진심으로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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