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거 봤어?’하고 친구가 내민 것은 유튜브 동영상이었다. 화면을 가득 채운 거북이의 얼굴을 향해 뾰족한 핀셋이 다가가더니, 콧구멍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친구는 침통한 투로 상황을 설명했다. ‘거북이 코에 빨대가 꼈대...’ 

  그 이후로 카페에서 빨대를 집을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콧구멍에 깊이 박힌 빨대를 뽑아내는 공감성 고통이 적나라하게 떠오르는 탓이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마음과 행동은 별개고 그런 행동엔 늘 이유가 따랐다. 텀블러를 놓고 와서, 가방이 무거워서, 너무 차가워서…. 야금야금 일회용 잔에 빨대를 꽂는 날이 늘어나는 만큼 거북이의 얼굴은 멀어져만 갔다. 

  무의식 저편에 있던 공감성 고통을 일깨운 것은 중대신문 제1993호였다. 그것도 마치 나 읽으라는 듯, 서사라 대표가 지구자판기를 시작한 계기로 거북이 코에 빨대가 꽂힌 사진을 언급한 대목을 읽으며 잊고 있던 고통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지구자판기 대표, 파워플로거 활동가 세 분, 그리고 직접 ‘줍깅’을 나선 기자들까지. 환경 문제에 심각성을 느끼고 이를 꾸준한 실천으로 이어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저 멀리 흐릿하던 거북이를 내 앞에 데려다 놓기에 충분했다. 

  특히 세 기사 모두 대학생, 흑석동, 학부모 등 생활 반경 내의 친근한 사람들의 인터뷰와 르포 형식으로 작성한 것도 한몫했다. 무겁게 풀어내려면 얼마든지 무거워질 수 있었던 소재를 가볍지만 적절하게 풀어냈다고 생각했다. 미미할지라도 꾸준한 노력으로 일궈내는 변화만큼이나 개인을 움직이는 힘은 없을 것이다. 환경 문제에 대한 ‘달력으로 사회를 넘기며’만의 친절한 접근법이었다. 넙죽 걸려든 나 역시 기꺼이 미미하게나마 기여하고자 텀블러를 챙겼다. 거북아, 앞으로 잘할게! 지켜봐 줘! 

김현지
전 중대신문 부편집장
문헌정보학과 석사 1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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