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부문 당선 : 정보근 학생(국어국문학과 2) 〈부러진 뼈에 죽음과 삶을 겹쳐보았네〉
 

일어나지 못했다. 일어날 수 없었다. 너무 서두른 탓일까, 차도 맨 우측에서 안 되겠다 싶어 인도로 올라가던 참이었다.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던 중이었다. 중고 자전거 바퀴의 마모도가 문제였을까, 내 자전거 숙련도가 문제였을까. 자전거가 갑자기 왼쪽으로 기울었다. 왼 손목이 모든 충격을 때려 받았다. 구역질이 솟구치는 고통이었다. 그런데도 내 눈은 앞을 보지 못했다. 눈앞이 깜깜하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다리는 멀쩡했다. 그러나 왼쪽 손목을 살펴보자 오른 손목과는 뭔가 다른 모양이 눈에 띄었다. 이건 마치 손목보다는 발목에 가깝겠다 싶은 모양새였다. 스타크래프트의 질럿이 생각나는 모양새였다. 인도를 기어가다 멈추고, 걸어가다 앞이 안 보여 멈추는 것을 반복했다.

  유난히 충동성이 강해진 날이었다. 우울증 약을 이틀 정도 먹지 않은 탓일까? 아니면 단지 외로웠던 탓일까. 몇 년간 타지 않았던 자전거가 타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사고 싶었던 건 ‘픽시’였다. 원래는 브레이크마저 없이 단순한 구조를 가졌다는 그 자전거. 중학교에 다니던 때 픽시를 타고 신나게 스키딩을 하며 놀던 친구들이 나는 부러웠다. 온라인 중고 시장에 들어가 픽시를 찾아 헤맸다. 디자인과 사이즈가 모두 마음에 드는 중고 자전거를 찾는 길은 산 넘어 산이었다. 수익이 없는 나에게 너무 비싼 것들도 많았다.

  그렇게 헤맨 끝에 마음에 드는 조건과 가격을 가진 자전거를 찾았다. 회색의 편안하면서도 깔끔한 분위기의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자전거였다. 가격대도 마음에 드는 데다가 에누리를 하지 않는 내 성격상 거래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아침에 연락하고 그날 점심에 판매자를 만났다. 픽시를 많이 타봤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난 픽시가 처음이고 어릴 적부터 정말 픽시를 타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던졌다. 타보니 정말 어렵다던 판매자의 대답이 들렸다. 불안했지만 행복했다. 이미 마음은 한강 변을 달리며 바람을 맞고 있었다.

  감사히 자전거를 받자마자 집으로 그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따릉이를 빌려 타고 맞는 바람과는 달랐다. 엄연히 이제 ‘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은 중학교 때 이후 처음이었다. 거기에 자전거라 그런지 발 대신 바퀴를 달고 달리는 이 상쾌함! 서툴렀지만 그랬기에 짜릿했다. 서투른 내 자전거 실력조차 좋았다. 그저 달리고 싶었다. 딱 우리 집까지만 달려보고 싶었다. 넘어지지만 않았더라면.

  사고가 난 곳에서 가장 가까운 정형외과를 겨우 찾아 들어갔다. 병원에서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소식에 기겁했다. 어머니가 내 손목 사진을 보시고는 응급실로 가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나는 학교 근처에 살았기에 우선 집에 자전거를 둔 뒤 뭔가 맛이 간 손목을 데리고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나중에 동기들은 이 얘기를 듣고는 왜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냐고 기겁했다. 난 그저 발이 다친 것도 아니라 걸어갈 수 있으니 걸어갔을 뿐이었다. 하여튼 나는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에 들어가는 것은 복잡했다. 코로나 증상 유무도 확인해야 했고, 열 체크도 해야 했다. 그렇게 들어가 판정받은 내 상태는 ‘골절’이었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조금 심하게 부러졌어요. 손목 보셨잖아요.” 의사의 당연하면서도 조금은 무심하게 들리는 대답이었다. 그렇다. 나는 인생 첫 골절을 당한 것이다. 부러져서 내려앉은 내 손목을 들고 의사들이 뼈를 맞추었다. 또다시 머리가 핑 돌았다. 진통제와 마취제를 그렇게 맞아댔음에도 아팠다. 그 와중에도 나는 자전거가 타고 싶어서 자전거를 샀더니 자전거값보다 병원비가 더 많이 나오게 생겼다느니 하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응급실에서 바쁘고 힘든 와중에도 내 얘기를 듣고 웃어주는 의사들이 좋았다. 의사들은 기계 같다는 내 편견이 조금이나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뼈를 맞출 땐 진짜 아팠다. 무슨 내 팔을 가지고 줄다리기하는 줄 알았다. 내 뼈는 생각보다 잘 맞춰지지 않았고 부위도 자주 움직이는 관절 부위였던지라 수술과 입원을 해야 했다. 나는 병실로 옮겨졌고 이동하며 응급실을 회상했다.

  응급실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가장 열정적인 곳이다. 하지만 가장 위급한 사람들이 많이 오기에 응급실은 생각보다 제 명을 못사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다. 사람은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누구보다 삶에 열정적으로 된다. 그게 환자든, 의사든, 그 사람들의 가족이든. 그렇기에 응급실은 아이러니한 곳이었다. 삶에 가장 가까운, 그렇기에 죽음에 가장 가까운 곳.

  낮의 응급실은 조용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꽤 보였다. 아이들도 보였고, 전동 킥보드를 타다 넘어졌다는 청년도 눈에 들어왔다. 침대 위에서 눈을 뜨지 못하는 노인들이 많이 보였다. 그러나 가장 눈에 띄는 건 검은 조끼를 착용한 형사들과 감색 천으로 둘러싸인 단단한 철 상자였다. 형사의 말을 들어보니 철 상자 속의 사람은 지붕 같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은 듯했다. 왠지 그 상자에 눈길이 계속 향했다. 잠시 후 철 상자와 함께 형사들이 영안실로 내려갔고 응급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난 궁금해졌다. 사고였을까? 아니면 그 사람의 선택이었을까? 사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사인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인은 산 사람들이 따지는 법이니까. 죽음은 그 누구보다 산 사람들이 집착하게 되니까.

  응급실에서 시신은, 죽음은 어울리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죽음은 죽음을 담당하는 영안실이 있지 않은가? 누구보다 살리기 위해 열정적인 곳, 삶이 그 어느 곳보다 선명한 곳. 그것이 응급실이다. 그렇기에 오직 죽음만이 존재하는, 삶의 존재도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는 육체는 응급실과 맞지 않는다. 시신들보단 심정지가 오거나 숨을 못 쉬고 있는 육체들이 오히려 응급실에 어울린다. 가능성, 살아날 가능성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응급실엔 시신이 생긴다. 응급실은 죽음과 삶이 겹쳐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공존이 아니다. 겹쳐있다. 이럴 때를 보면 응급실은 마치 미시세계처럼 보인다. 오직 의사의 ‘관측’만이 죽음과 삶을 관측할 수 있는 곳. 응급실은 그런 곳이다. 진짜 삶을 마주할 수 있는 곳. 삶의 진실을 알게 되는 곳.

  그제야 깨달았다. 삶은 죽음과 겹쳐진 것이라는 것을. 죽음은 삶의 끝도, 새로운 시작도 아니고 삶이 죽음과 동시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타인의 죽음을, 삶을 반경 5미터 안에 두고 나서야 이를 깨달았다. 노란색 테두리 장식이 박힌 감색 천도, 그것을 두른 철 상자도, 그 안의 사람도 아무 말이 없었다. 단지 그 죽음에 대한 말만이 형사들과 대화하는 사람들 사이를 뱅뱅 돌았다. 그렇게나마 확정된 죽음도 삶과 조심히 겹쳤다. 수술실에서 내 피부 속에 메스가 조심히 올려지듯이. 나는 뼈가 부러져도 멀쩡히 살아서 그 상자를 보고 있었다. 그 생각이 들자 숨을 쉬는 순간이 유난히 이상하게 느껴졌다. 뼈가 박살나며 뱉어낸 구역질도 소중해졌다. 그 구역질은 어떻게든 살고 싶다는 절규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울에 찌들어 죽음을 갈구하던 청년은 죽음을 옆에 둔 타인이 되면서 되려 삶을 외치게 되었다. 그렇게 살고 싶은 내가 병실로 향했다.

  병실로 올라가는 것도 참 힘들었다. 코를 찌릿하게 하는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격리병동에 따로 있었다. 나는 코로나 음성 판정이 나온 밤 10시 이후에야 병실을 옮길 수 있었다. 종일 뭘 먹지 못한 나는 과 동기에게 부탁해 프랜차이즈 토스트를 전달받아 먹었다. 내 손목이 부러진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SNS, 메신저 등으로 많은 위로를 건넸다. 누군가 나를 걱정해준다는 사실이 기뻤으나 미묘했다. 부모님이 지방에 계셨고 코로나 검사를 최근 3일 안에 받은 사람만이 환자를 만날 수 있었기에 내 옆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밤은 내게 위기였다. 우울증 약을 먹지 못해 불안감이 몰려왔다. 미칠 듯이 외롭고 슬펐다. 흘리기 싫은 눈물이 자꾸 흘러나왔다. 중학교 3학년 말 이후로 가족으로도, 친구들로도, 연애로도 채우지 못한 공허감이었다. 이유는 딱히 없었지만 만성적으로 느낀 시간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응급실에서 다시 깨달은 삶과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관념적인 내면의 적들이 병실에서 스멀스멀 나를 휘어잡았다. 홀로 있는 것이 이렇게나 두려울 줄이야. 혼자 집에 있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공포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앞사람의 코골이 소리가 들려왔고 이는 꺽꺽대는 내 울음소리와 섞였다. 난 시끄러운 코골이와 불안감을 버텨가며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고통은 다음 날 아침이 오면서, 그리고 수술이 끝나고 우울증 약을 다시 먹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모든 회상이 뒤섞이면서 나아졌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일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조용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즐거웠다. 전신마취로 잠들기 직전까지 농담 따먹기를 하는 나의 입은 잘만 살아있었다. 수술이 끝난 뒤 마취가 깨고 나선 간호사에게 내가 맞는 마약성 진통제의 이름을 물어보기까지 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펜타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술이 끝났다. 어제의 고통이 삶과 겹쳐 보였고, 죽음과 겹쳐 보였다. 모든 것이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반죽 속 색소처럼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마블링이 되고 완전히 섞이는 순간. 아름다웠다. 삶과 죽음을 이분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다니! 계속해서 응급실을 떠올렸다. 그 미묘한 공간에 들어설 때부터 이미 정해졌던 것이다. 이 꿈에서도 일어나지 않을 듯한 조화를 마주하는 것을. 이를 알게 되자 삶이 뚜렷해졌다. 중첩의 아이러니 덕에 아이러니하게도 내 정신이 맑아졌다.

  다치고 나자 운동이 하고 싶었다. 평소에는 외출도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던 내가 팔목을 부러뜨리고 나니 자전거가 그렇게 타고 싶었다. 자전거를 사던 그때보다 더더욱 타고 싶었다. 한강 변의 바람을 맞으며 씽씽 달리고 싶었다. 왠지 팔굽혀펴기가 하고 싶었다. 의사 선생님은 기겁하시며 적어도 6개월은 지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왠지 아쉬웠다. 운동을 평소에 하지도 않던 내가 운동을 못 해 아쉽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병실에선 그동안 놓았던 키보드를 잡았다. 그렇게 쓰기 싫어했는데 오랜만에 글이 쓰고 싶었다. 고통과 마주한 경험이 그동안 놓았던 키보드를 다시 잡게 했다. 그동안 보지 않았던 애니메이션도 정주행했다. 평소 하지 않을 일들을 팔이 아픈 와중에도 모두 하고 있었다. 심지어 모두가 교수님에게 다쳤으니 시간을 더 달라고 부탁하라 했던 과제도 시간 안에 제출했다. 그래도 부러진 게 왼손이었던지라 타자는 칠 수 있었다. 오히려 제한된 조건이 나를 더 열심히 일하게 했다. 기묘한 일이었다.

  부러진 뼈에는 의사 선생님들이 예쁘고 단단하게 못을 박았다. 깁스를 풀자 벌어진 수술 자국이 선명하게 나를 맞이했다. 징그러웠지만 왠지 좋았다. 나를 바꿔준 상처가 좋았다, 그 자리에 예쁜 타투가 새겨넣고 싶었다. 상처가 도드라지는 문신이 하고 싶었다, 이 상처는 내가 바뀌게 된 영광의 흔적이라고, 나만의 표식이라고 당당히 얘기하고 싶었다.

  수납하고 병실을 나왔다. 팔 한쪽이 부러져도 오히려 내가 더 열정적일 수 있음을 알게 한 곳을 나왔다. 항생제에 소주를 말아먹는 듯 이상한 느낌이 불어왔다. 내가 병실에서만큼 열심히 살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바뀌었으니까, 팔 한쪽을 부수고 새로운 정신을 가졌으니까 괜찮을 것이다. 잘 해낼 것이다. 아직 잘 움직이지 않는 왼손을 꼼지락대며 병원 문을 나섰다.  내 왼 손목은 아직 다 낫지 않았다. 못으로 고정된 뼈들은 아직 붙지 못했다. 나는 아직 깁스하고 있고 그 때문에 나는 당분간 온라인 게임을 하지 못하며 타자를 제대로 치지 못한다. 다만 오히려 내 시야는 또렷해졌다. 상처가 삶의 경험이 되고 원동력이 되었다. 되려 날 이렇게 만든 부러진 뼈를 사랑할 정도이다. 병원비가 중고 자전거값의 10배는 나왔지만 말이다. 아마 나는 이 기묘한 경험이 혹시나 생각 없이 잊어버렸던 내 과거의 기억들처럼, 내 손목이 부러지던 때 시야처럼 흐려질까 봐, 이 넘치는 기운이 쉽사리 사라질 것 같아서 오랜 시간 꽂혀 있던 링거 바늘 때문에 아직도 욱신거리는 한 손으로나마 병실에서, 그리고 퇴원한 뒤에 집에서 이 글을 쓴다. 삶을 마주하는 것은 고통스럽고 불편하며 짜릿하고 행복하다. 손목을 부러뜨리는 것처럼.



수필 당선자 정보근 학생 Interview : 생과 사의 경계에서 마주한 생(生)
 

사진제공 정보근

어느덧 들뜬 여름 향기가 코끝을 맴돈다. 봄에 돋아난 여린 초록빛은 짙은 수풀로 무르익어간다. 완연한 '청춘(靑春)'이다. 생명력으로 가득한 이맘때쯤이면 생은 영원에 닿아있는 듯, 겨울의 스산함은 새까맣게 아득하기만 하다. 여기,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응급실을 찾은 청춘이 있다. 삶에서 죽음을, 죽음에서 삶을 포착한 정보근 학생(국어국문학과 2)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당선 소식을 듣고 어땠나? 당선 소감이 궁금하다.

  “사실 지금도 멍한 기분이 들어요. ‘나 상 어떻게 받았지?’라는 생각도 들고요. 백일장 같은 곳에서 상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어서 상을 받고 싶은 마음이 넘쳐났는데, 이렇게 수상하니 영광이에요.”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퇴원이 하루 남은 날이었어요. 마침 수필 공모도 거의 마감에 가까워진 시기였죠. 제가 워낙 기분파라 그런지 갑자기 이번 경험을 글로 쓰고 싶더라고요. 한 손으로 후다닥 초고를 쓰고 퇴원하자마자 바로 퇴고했죠. 뼈가 처음으로 부러진 것이 너무 특별한 경험이라 글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갑자기 타고 싶었던 ‘픽시 자전거’는 운명적 끌림이었나.

  “학교 선후배와 정말 오랜만에 자전거를 탔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거기에 중학교 때 학교 친구들이 픽시를 가지고 놀던 기억이 겹쳐서 떠올랐어요. 부품이 적다 보니 깔끔하고 멋있게 생기기도 했고 매력적인 요소가 많잖아요? 페달을 뒤로 밟으면 뒤로 간다든가 말이죠.”

  -응급실에서의 경험 이후 일상생활에서 바뀐 점은.

  “일단 일상생활은 예전보다 불편해졌어요. 한쪽 팔을 못 쓰다 보니 음료수 하나도 제대로 따기 힘들더라고요. 팔 한쪽 불편한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뼈저리게 깨달았죠. 병원에서 나오고 나니 평소로 돌아가네요. 오히려 병원 안에서의 생활이 더 성실했달까요. 이번 경험도 그냥 수많은 과거 중 하나로 돌아가는 기분이라 아쉬워요.”

  -삶과 죽음에 어떤 인식을 갖고 있나.

  “원래 죽음은 그냥 모든 게 끝나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삶은 시간 속에서 그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이고요. 사후 세계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을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죽고 싶기도, 죽기 싫기도 했죠. 시간이 가는 게 두렵다는 생각을 제일 많이 했어요. 지금 와서 보자면 참 의미 없는 고민인데 지금도 그런 고민을 계속하고 있죠. 삶 위에 겹쳐진 죽음이, 그것을 향해 천천히 가는 시간이 아직도 두렵답니다.”

  -솔직담백한 표현이 웃음을 짓게 한다. 평소 성격도 그런가.

  “솔직함은 인간관계에서 제 유일한 무기라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없는 제가 겉과 속마저 다르면 남들에게 아무 매력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단 말이죠. 약은 사람은 되지 않겠다는 인생의 목표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이 아마 솔직하고 편한 표현으로 나오지 않았나 싶네요.”

  -팔이 완쾌되면 하고 싶은 일이 많을 것 같다.

  “일단 양손으로 머리를 좀 시원하게 감고 싶어요. 평범한 일상이 그립네요. 제대로 낫고 나면 자전거가 제일 타고 싶어요. 근데 타다 또 다칠까 봐 무섭긴 해요. (상처 자리에) 타투는 꼭 하고 싶어요. 예전부터 무한대를 상징하는 ‘우로보로스’를 새겨 넣고 싶었답니다. 영원을 원하는 제 욕구와도 관련이 있죠. 이루지 못하는 꿈을 타투에라도 새겨 넣어보고 싶어요.”


심사평

고부응 교수(영어영문학과) :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야 좋은 글을 쓴다


편한 대로 써가는 것이 수필이라지만 읽고 싶은 내용을 그에 맞는 글솜씨로 표현하지 않으면 독자를 끌 수 없다. 사건의 나열을 넘어선 글쓴이의 성찰을 담아내야 하고 그 생각이 잘 전달되게 글을 구성하여야 한다. 문장 하나하나 역시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한다. 공모전에 제출하는 글이라면 더욱 그렇다.

  본심 대상이 된 5편의 수필 모두 대체로 잘 쓴 글이지만 최고 수준에 이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중 잘 쓴 글을 당선작으로 정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으로 「부러진 뼈에 죽음과 삶을 겹쳐보았네」를 골랐다. 당선자가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상을 이루는 글을 계속하여 쓰기를 기대하여 본다.

  자전거 사고로 골절이 되어 가게 된 응급실의 체험을 통하여 삶과 죽음을 겹쳐서 보아가는 과정을 재치있는 문장으로 잘 전달하고 있다. 고통스러운 뼈맞추기나 수술 상황을 익살스러운 문장으로 전달하는 방식도 독자를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필요 없이 긴 도입부와 간혹 보이는 뜻이 맞지 않는 낱말이 거슬리기는 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는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를 즐기는 모든 이에게 성원을 보낸다. 많이 써 본 사람이 좋은 글을 쓴다. 그러나 많은 글쓰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많이 읽기이다. 읽기가 없는 성찰은 공상에 불과하다. 많이 읽어야 많이 생각하게 되고 많이 생각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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