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부문 당선 : 윤세정 학생(국어국문학과 4) <세상에게 손 내미는 따듯한 위로>

『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씀)사진출처 NAVER책
『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씀) 사진출처 NAVER책

세상의 모습이 한 편의 영화라면, 나 자신이 그 영화의 주인공인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영화나 드라마같은 허구의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특별한 사람들이니까. 어떤 문제를 마주하더라도 멋지게 해결하고 한발 성장해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사람들. 우리는 이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통해 통쾌함과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이야기 속 세계에서다. 실제 내 삶에서는 벌어지기 어려운 일이며, 그래서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을 동경하면서도 믿지 않는다. 우리가 발 딛고 살고 있는 현실세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아무리 현실적인 사회의 문제들을 다루더라도, 그 해결방식이 마치 영웅담처럼 비현실적이라면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겐 일상이자 눈앞에 닥친 문제가 이야기 속에서는 쉽게 해결된다면, 통쾌함보다는 허탈함으로, 때로는 나의 삶이 가벼이 다루어졌다는 불쾌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허균이 <호민론>을 펼쳐 사람들을 항민, 원민, 호민으로 구분했을 때, 호민을 대단하게 평가한 이유는 기회를 기다렸다 불의한 사회에 맞서는 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대단하다고 말할 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보편적이라는 맥락이 숨어 있다. 그렇다면 불의에 맞서지 않는 보편적인 사람들은 부정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사회 문제는 구조적인 것이어서 여러 이해관계가 다층적으로 복잡하게 엮여있기 때문이다. 사회를 살아가는 범인凡人들은 자신 앞에 놓인 삶에서 어떤 부당함이나 불행을 겪더라도 정확한 원인을 찾기 어렵다. 설령 내가 겪은 일들이 문제적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하고 헤쳐나가야 할지는 막막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누구든 죽지 않았다면 자신 앞에 펼쳐진 시간을 살아내야 하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세상에 대한 판단과 결정을 하며 살아간다. 그다지 극적이랄 것 없이, 단지 앞에 놓인 삶을 산다.

  정세랑은 옥상에서 만나요에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고민과 결정들을 적었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지금껏 들어온 많은 이야기의 주인공들처럼 눈에 띄거나, 불의에 적극적으로 맞서지도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던 사람들이다. 작가는 이들을 특별한 캐릭터로 가공하려하지 않고 책에서 담담히 이들의 삶을 보여준다. 글에 사용하는 재료들 또한 현실적이다. 안에 실린 단편마다 결혼, 이혼, 학업, 죽음 등 무게감 있는 소재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순을 드러낸다. 사용되는 단어들은 자연히 소재와 연결되므로 이 책에 쓰인 문장들 또한 건조하다. 조금은 우울하고, 조금은 치열한 생활의 감각이 반영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나면, 마치 책이 따듯한 마음을 건네는 것처럼 느껴진다. 현실적인 이 책이 온기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빠짐 없이
  『옥상에서 만나요의 책장을 넘기다 보면, 작가의 사회인식은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작가의 인류애적 태도에 기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늬에서 돌연사.net’을 처음 만든 규진이는 너희 누나도 그렇고, 그 형도 그렇고 이건 뭔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123-124)’다고 말한다. 자기 주변을 보면서 무언가 세상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 정세랑이 취한 태도는 바로 그 이상한 것들을 이해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정과 삶을 깊게 바라보고 헤아리려 한다. 돌연사한 이들을 기록하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보윤은 규진에게 정말 뭐하러?”라고 묻지만 규진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고 답한다. 그러나 이내 다른 친구인 매지까지 가세해서 세 사람이 함께 사이트를 만들고 관리하게 된다. 매지는 쇼크를 주려는 거야? 그게 목적이야?”라고 묻기도 한다. 이들 자신도 돌연사.net’을 만드는 목적을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사이트 관리를 계속해나간다.

  작가의 이런 태도는웨딩드레스 44이혼 세일에서 여러 보통의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를 주는 것으로 계속된다.웨딩드레스 44는 웨딩드레스를 입는 44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전부 들려준다. 단 한 줄로 끝난 이야기도 있고, 한 면을 전부 차지한 이야기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빠진 사람 없이 들려주었다는 것이다. 자칫 단조롭게 흐를 수도,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던 형식임에도 이 이야기가 독자에게 위로를 주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는 결혼에 대한 다양한 관념을 모두 이야기로 풀어내기 위해 부단히 고민해야만 했을 형식이다. 마침내 이 소설에는 웨딩드레스가 가진 상징성을 통해 결혼하거나, 했거나, 하려는 여성이 한국 사회에서 결혼에 대해 느끼는 다양한 생각이 제시되어 있다. 모두 제각각인 44명의 이야기처럼 적혔으나, 여성 독자는 그 중 10개의 이야기에도, 20개의 이야기에도 심지어는 44개의 이야기 모두에도 공감할 수 있다.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으로 나아가지 못하더라도 결혼이라는 사회제도에 대해 다른 사람이 가지는 생각과 그 배경을 읽어보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간접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은, 온전히 개인의 사유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을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서로 다른 관계를 가진 한국 여성들에게 결혼의 의미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작가는 결혼에 대한 여성들의 다양한 경험과 생각이 세상에 들릴 수 있도록 지면을 준 셈이다. 이혼 세일에서는 자신의 남편이 직장동료를 강간해 이혼하게 된 '이재'의 이야기를 다룬다. 로그라인만 본다면 매우 불행한 인물 같은 이재의 이야기는 담담하게 서술된다. ‘이재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행동으로 제시되기보다는, ‘이혼 세일을 한다며 친구들을 불러 모아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닐 것이라는 앞으로의 계획을 읊는다. 이런 이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이재의 주변 친구들이 느끼는 제각각의 선망, 열등감, 질투심, 연민 등도 함께 서술된다.웨딩드레스 44이혼 세일은 서로 다른 사람들의,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주는 것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싶은 작가의 소망을 드러내는 소설인 것이다. 동시에 결혼, 파혼, 이혼, 강간이라는 가부장적 체제와 그 문제를 드러내는 여성주의적 서사이기도 하다.

  나에 대한 불확신으로부터 출발
  관계에 대한 작가의 이해심은 작가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확신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다. 어쨌든 우리는 민감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감정적이 되기보다는 조용히 각자 부끄러워하게 되었고, 그러면서도 우리 세대가 주도권을 잡았을 때 이 모든 일이 나아질까 확신하지 못했다(84).” 한 개인이 생각한 이상적인 방향을 맹신하지 않으며, 동시에 완전무결한 해결책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이는 미래에 대해 비관하며 생각하는 행위를 포기한 것과는 다르다. 알다시피 은열'정효'는 역사학 대학원을 다니고 있지만, 객관적인 사실에 집중하기보다는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인물이다. ‘정효는 실제 역사의 인물인 은열에 자신의 상상을 덧붙여 나름의 스토리를 만들었지만, 끝내 어쩌면 나는 내가 믿는 것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시대착오적인 영웅 중심 기술에 언제나 반감이 있었는데도 그러고 말았다. 영웅도 아닌, 난폭했던, 죽고 없는, 내가 모르는 그 사람들에 대해서라고 고백한다. 사회에 의해 지워졌을지도 모르며 혹은 애초에 적히지도 않았을 수 있는 이야기를 복원하는 자신에게 몰두하지만 이내 그 또한 자신 본위의 관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의 생각하는 행위채울 수 없는 여백을 채우려는 것, “규정 지을 수 없는 것을 규정하려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인지한 것으로부터 대안적 결말이 시작된다. 앞서 언급한 정효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학의 체제에 알맞은 대학원생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친구들까지 어울린 취미로서의 밴드활동까지, 어쩌면 정효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부적응자로 분류될지도 모르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밴드활동을 멈출 생각이 없다고 하며, “알다시피 밴드는 나의 어떤 강박관념을 지운다.”고 한다. 이야기는 정효에 대한 어떤 판단의 시선이나 개선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효가 얼렁뚱땅한 밴드 사람들과의 공동체 생활에서 편안함을 얻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정효는 자신의 자기중심적인 인식을 깨달았다고 좌절하거나 문제에 관심 가지는 것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사람들과 계속 민감한 뉴스를 보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게 된다.‘정효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대안이 꼭 아주 새롭고 혁신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에서 제시하는 결말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면 오히려 비현실이 된다. 때문에 대안은 완전한 탈일상의 모습보다는, 충분히 일상 속에서 정신과 감정을 환기할 수 있는 것일 때 효력을 가진다.

  다음 두 소설에서 나타난 대안은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도록 하자.옥상에서 만나요에 등장하는 ''의 남편은 인간도, 옷도, 얼굴도 아닌 것으로 기괴하게 묘사되지만 결국 에게는 안식처가 된다. ''는 혹독한 취업준비 시기를 견뎌 입사한 회사에서, 상사에게 성추행과 갑질을 당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회사원이다. 이런 에게 주어지는 최선의 보상은 사회의 현실에 찌든 절망을 먹어 치워주는 남편인 것이다. 영원히 77사이즈에 등장하는 뱀파이어 여성은 어떠한가. 그녀는 그로테스크한 의식을 통해 죽었지만, 죽었음에도 남성에게 욕망의 대상이고 싶어 하고, 죽었음에도 살이 빠지지 않는다며 자조한다. 이처럼 비인간적인 남편이 등장해야만 스트레스 받는 현실을 살아갈 수 있고, 뱀파이어라는 비인간의 존재가 되어야만 좋아하는 남성과 결합할 기회를 얻거나 보복 할 수 있는 정세랑의 이야기는 환상적이다. 수용자가 허구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환상은 현실과의 경계가 모호한 것처럼 보이는 비현실과는 다르다. 앞의 두 소설은 오히려 이러한 환상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며 작가가 역설적 리얼리즘을 구현하고 있다.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기
  그의 사회인식은 자신에 대한 불확신과 역설적인 리얼리즘으로 구현되는가 하면, 기억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복기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보늬에는 언니의 죽음을 계기로, '돌연사'한 사람들을 등록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드는 '보윤'과 친구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돌연히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려 하고, 기억하려는 사람들에게 공간을 내어준다. "언니는 야근을 하다가 이상을 느끼고 스스로 앰뷸런스를 불렀다고 한다. (중략) 국제암연구소에 의하면 심야노동은 2급 발암물질이라고 한다.(128)" 이야기의 맥락에 따르면, ‘보윤의 언니가 죽은 것은 업계 간 경쟁으로 인한 과로 때문일 수 있다. 그렇다면 언니의 죽음은 우리가 산업재해라고 불려야 마땅하겠지만 돌연사로 명명되었다. 이들이 만든 '돌연사.net'에 기록되는 죽음들도 그러했다. 사이트 이용자들은 가까운 사람의 황망한 죽음을 기록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며 위로를 얻는다.

  ‘돌연사.net’에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수많은 죽음의 원인을 보면서, ‘보윤과 친구들은 사회의 비극, 사회의 수많은 죽음을 떠올린다. 친언니의 죽음이라는 개인의 비극을 되돌아보는데서 시작한 일이, 보이지 않던 사회의 면면을 보는 것으로 확장된다. 나는 현재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보늬를 읽으며 2019<경향신문> 1면을 가득 채웠던 1,200명의 산재 사망 노동자들과 , 2014년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의 사람들을 떠올렸다. 이렇게 죽음을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죽음으로 볼 수 있도록, 그리고 어떤 죽음도 잊히지 않도록 드러내는 것이 정세랑의 글쓰기 전략이다. ‘보윤은 이 사이트 덕분에 다른 사람들에게 언니의 죽음을 공유하고 언니를 충분히, 천천히 애도할 수 있었다. 열심히 삶을 살아가다 돌연히 죽은 사람을 떠올리고, 보다 넓은 시야로 사건을 바라보려 한 작가의 고민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해피 쿠키 이어에 등장하는 '이스마일'은 공장 사고로 귓바퀴를 잃었으나 그 부분에 피 부조직 대신 과자가 자라는 희귀한 병을 얻은 인물이다. 그의 동료 의사들은 그의 귀를 호기심 어린 대상으로 바라보며, 그의 여자친구는 사랑의 절정에 달했을 때 그 귀를 깨어 물기도 한다. 이야기 속에서 이스마일의 귀는 비정상의 육체혹은 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이스마일'이 과자 귀로 인해 겪는 일련의 사건들을 귀엽게 풀어내면서도 결코 외국인이 한국에서 겪는 현실을 지우지는 않는다. ‘이스마일이 중동 지역에서 온 외국인이면서 재별은 아니며, 한국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의과대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장소에서는 중동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로 간주된다는 점을 상세히 기술한다. 이 상세한 기술은 이스마일이 처한 중층적 상황을 떠올리게 하며 외국인 이주자 혹은 노동자가 겪는 여러 가지 차별 문제를 드러낸다. 외모를 통해 민족이나 국적을 판단하는 것, 국적으로 경제적 지위를 예단하는 것을 말이다. 작가는 해피 쿠키 이어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희석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소수자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스마일이 사회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분명 있다는 낙관적인 태도가 드러난다.

  「보늬해피 쿠키 이어를 읽고 나면, 결국 사람들이 겪는 교차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교차성은 서로 자신이 처한 상황이 더 힘들다고 하는 '불행의 올림픽'으로부터 탄생한 개념으로, 모두가 겪고 있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있고 어떤 사람이 가장 취약한 위치에 처해있는지를 파악하려는 데서 기인한 개념이다. 우리 모두는 어떤 사회적 사안 에 대해서는 기득권일 수도 어떤 사회적 사안에서는 소수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모두가 이 끔찍한 세상에서 겪고 있는 불행을 발언하고 서로 귀 기울여 줄 때 우리는 타인을 조금 더 이해하고, 그 입장에 서서 생각할 수 있다.

육체에 각인된 공포, 수치, 무력감에서 벗어나는 길은 논리적 토론이 아니라, 폭력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사회구성원들이 그 이야기에 동참해 주의 깊게 경청하고 공감해주는 과정이다. (중략) 이 과정에서 궁극적으로는 더 큰 정치적 도덕적 질문이 개인의 실존적 질문에 연결되어 타인과 사회에 대한 좀 더 일반화된 관념이 구성되는데, 이 마지막 단계에서 숙제는 자신을 영원한 희생자로 간주해 세상을 ’, ‘정의불의로 양분하는 확신에 빠지는 위험을 경계하는 것이다.”

-한스 요아스, 가치의 생성

  서로의 별 것 아닌 이야기, 하지만 왠지 이상한, 문제인 것 같은 이야기를 자꾸 함으로써 나의 경험이 개인의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언제나 그렇다. 현실에 펼쳐진 구조와 이데올로기를 지적하는 것, 그것을 마구 공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정말 어려운 것은 우리의 삶 앞에 펼쳐진 개개의 불의들과, 삶에서 만나는 한 명, 한 명의 모순적인 타인들을 대면하고 갈등을 조정해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상호의 이해 없이 절대 불가능하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만이, 세상을 양분하는 사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잘 보이지 않는 문제를 드러내 말하는 것으로 모든 존재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담아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절망을 안다
  작가는 "모든 사랑이야기는 사실 절망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116)"이라고 한다. 사랑을 하는 사람만이 사랑의 실패를 겪고, 사랑의 일방향성에 좌절할 수 있으며, 사랑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절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절망을 느끼는 사람은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기도 하다. 이를 아는 작가는 계속해서 쓴다. 그다지 극적이지 않지만 일상의 불의들을 마주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촘촘히 꿰어가면서. 정세랑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세상에 이런 사람들도 있다는 것, 나만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책장을 넘겨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느끼고 깊이 이해해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이 글은 공동체 안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인식이자 위로가 된다. 서로를 이해해보려 노력하고, 서로를 선의로 대면하며, 그러다가 관계의 실패라는 쓸쓸함도 맛보게 되는 삶. 낭떠러지에서 마주하는 것만 같은 현실 중에도 별 것 아닌 것 같은 행복과 따듯함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보듬어 주는 글이다.

  이 책은 답답한 현실을 발랄한 상상으로 해소하지만 실재하는 세계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실을 낭만으로 포장해 안주하는 글이 아니다. 현실의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들이 외롭게 투쟁하다 굴복하지 않도록, 더 나은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이 현실의 벽 앞에서 포기하지 않도록, 계속 사랑하며 살아가자고 손을 내미는 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옥상에서 만나요는 극적인 이야기와 특별한 인물 없이도 이야기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가진다. 오히려 극 장르의 필연적인 특징들과 다르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기에 글로서만 적힐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문학이 다룰 수 있는 것은 이런 것이다. 세상을 멋대로 결론 짓거나, 마치 꿈처럼 불가능한 이야기만 늘어놓지 않는 것. 세상이 이렇다는 걸 보여주는 것, 이런 삶의 모습도 있다고 조심스레 제안하는 것이 이 소설이 가치 있는 이유일 것이다.

 

문학비평 당선자 윤세정 학생(국어국문학과 4) Interview : 나를, 너를, 우리를 사랑하기

사진제공 윤세정
사진제공 윤세정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하지만 각자 가지고 있는 고민과 이야기는 모두 다르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야기에 세심하게 귀 기울여야 한다. 윤세정 학생(국어국문학과 4)은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옥상에서 만나요』(정세랑 씀)에 집중한다. 그는 책 속에서 발견한 이해와 사랑의 가치를 강조하며 우리 모두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 

  -문학비평 부문에 당선됐다. 수상 소감 한마디 부탁한다. 

  “감사합니다. 글로 상을 받는 일이 너무 오랜만이라 얼떨떨하지만 기분은 좋네요. 사실 이번 비평문은 예전에 써 둔 글이었어요. 잘 쓰고 싶었는데 바쁜 일정에 쫓겨 급하게 마감했던지라 아쉬움이 남아 언젠가 한 번 다시 다듬고 싶다는 미련이 있었죠. 그러던 중 중대신문 비평 공모 홍보게시물을 발견했고, 공모전에 참가하기로 결심했어요. 그런데 당선까지 되고 나서도 미련이 남네요.(웃음)” 

  -『옥상에서 만나요』를 비평 작으로 선정한 이유는.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사회의 현실적인 모습이나 정서가 많이 반영된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에요. 이 소설은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이 있는데도 굉장히 현실적이라고 느꼈죠. 그래서 이 책으로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답니다.” 

  -비평문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기준은 무엇인지. 

  “기준을 정해두고 쓴 글은 아니지만, 작가님이 책에 담아낸 온기를 제 글에도 잘 담아내고 싶었어요. 비평문의 소제목 중에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빠짐 없이’가 있어요. 작가님이 책에서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다정하게 들려주셨듯이 저도 작가님의 책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빠짐없이 쓰고 싶었습니다. 『옥상에서 만나요』를 아우르는 키워드는 ‘귀 기울이기’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이 사회에 정성껏 귀를 기울였기에 어떤 것도 함부로 단정하거나 비관적으로 매듭짓지 않는 글이 나올 수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비평문에서 ‘생각하는 행위’를 강조했다. 

  “세상에는 우리가 몰랐던 끔찍한 면도 많고, 사람마다 복잡한 사정도 있잖아요. 이럴 때는 내가 아무리 무언가를 생각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잘 생각하기’를 포기하기도 해요. 그런데 생각하기를 포기하는 순간 세상에 잡아먹히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생각을 많이 해도 사람과 사회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생각의 사각지대가 늘 생겨나기도 하죠. 그렇다면 ‘계속 생각하되 함부로 단정하지는 말자’고 결론지었어요. 계속 생각하되 아무것도 쉽게 규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한 다음에야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비평문이 ‘공동체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구성원들에 대한 이해’를 아우르고 있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이해의 방법과 그 가치는. 

  “저는 사랑에서 이해가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나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죠.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와 관계 맺은 사람과 사회까지도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사랑에서 시작한 이해는 다시 사랑으로 수렴합니다. 이때, ‘잘 사랑하기’ 위해서는 누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상처받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고 그에 맞춰 정교하게 관계를 맺어야 하죠.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이해의 출발이자 가치는 ‘사랑하기’입니다.” 

 

심사평

이경수 교수 (국어국문학과) : 따뜻하고 신뢰할 만한 비평적 시선

감염병의 시대가 길어질수록 우리가 경험하는 불안과 우울도 점점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지혜와 마음을 모아야 할 때이다. 인류가 새롭게 직면한 위기 앞에서 문학의 가치는 새삼 환기되고 있는 듯하지만, 작년에 대폭 늘었던 문학비평 응모작이 올해 확연히 준 것을 보면 길어지고 있는 비대면의 상황이 초래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올해 문학비평 부문 본심에 오른 작품은 비록 단 한 편이지만, 내년에는 더 많은 응모작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세상에게 손 내미는 따듯한 위로〉는 『옥상에서 만나요』(정세랑 씀)에 대한 비평문이다. 정세랑 소설이 지니는 특징을 잘 포착하면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아낸 이 소설들이 왜 따뜻함을 전해주는지 차분한 논리로 설득력 있게 서술한다. 정세랑의 소설이 더 나은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이 현실의 벽 앞에서 주저앉지 않도록 계속 사랑하며 살아가자고 손 내미는 소설이라는 이 글의 판단에 동의한다. 최근의 우리 소설을 향해서는, 위악을 표방해 왔던 이전 소설의 한계를 극복하고 무해하고 따뜻한 가치를 표방하는 것에 대한 찬사와 함께 우려의 시선 또한 적지 않다. 새로운 가치를 표방하는 소설이 지닌 미덕이 무엇이며 왜 이런 소설들이 소중한지에 대해서는 새로운 세대의 지속적인 비평적 발언이 필요하다. 그것은 오랫동안 정전이 되어 온 문학의 영향력에 대한 새로운 해석적 시선인 동시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독자들과의 대화의 시도일 것이다. 

  윤세정의 비평은 따뜻하고 신뢰할 만한 시선으로 정세랑 소설이 지닌 미덕과 현재적 가치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비평의 기본기에 충실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글이라는 점에서 이 글을 문학비평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우리 시대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는 비평을 앞으로도 기대한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