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사회를 위해

언어를 되돌아봐야 할 때

“이제 주식 시작했다고? 주린이네!” 주식과 어린이를 합쳐 만든 말, 주린이. 일상 대화나 미디어에서 어떠한 분야의 초보를 ‘O린이’라 부르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공공기관에서도 이를 재밌게 여겼는지, 서울시 산하의 서울문화재단은 어린이날을 맞아 ‘첫 도전과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는 O린이 인증사진을 찍어 올리는 캠페인’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홍보 게시글이 SNS에 게재되고 곧바로 논란이 불거졌다. ‘O린이’에 어린이를 차별적으로 보는 시선이 담겼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결정장애’, ‘O밍아웃’ 등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차별적이진 않은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이에 중대신문에서 자세한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사람들이 이러한 단어를 얼마나 사용하고, 차별 언어로 인식하는지 설문조사를 진행해봤다.

  ‘O린이’ 차별 아니다 약 70%
  행동이나 태도를 정할 때 망설이기만 하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결정장애’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한다. 일상에서 이 단어를 접해본 적 있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약 99.2%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해당 표현을 얼마나 사용하는가에 대해선 무려 약 85%가 ‘사용한다(매우 자주 사용한다+자주 사용한다+종종 사용한다)’고 답변했다.

  ‘‘결정장애’란 표현 사용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엔 응답자의 약 50%가 ‘동의하지 않는다(대체로 동의하지 않는다+ 매우 동의하지 않는다)’를 택했다. 한 응답자는 장애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한다 해서 장애인에 관한 인식이 가벼워지진 않는다고 답했다. 반면 다른 응답자는 ‘결정장애’가 장애인을 열등한 존재로 표현한 단어라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다음으로는 어떠한 성향이나 소속 따위를 스스로 드러낼 때 사용하는 신조어인 ‘O밍아웃’에 관해 물었다. 이는 성 소수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뜻하는 ‘커밍아웃’에서 유래한 단어다. 응답자의 약 98.3%가 해당 단어를 들어봤다고 답했으며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가’란 질문엔 약 35%가 ‘사용한다(매우 자주 사용한다+자주 사용한다+종종 사용한다)’를 선택했다. 이어 해당 표현이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라 생각하는지 묻자 전체 응답자의 약 60.8%는 ‘동의하지 않는다(대체로 동의하지 않는다+매우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편 응답자의 약 23.3%는 ‘동의한다(대체로 동의한다+매우 동의한다)’는 입장이었다.

  ‘O린이’의 경우 평소 ‘사용한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약 63.3%를 차지했다. ‘해당 표현이 어린이에 대한 차별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엔 약 70%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는 제시된 단어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차별 언어라 생각하지 않는 표현이었다. ‘O린이’가 차별 표현이라고 대답한 한 응답자는 ‘해당 표현의 사용은 어린이를 미숙한 존재로 칭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살이 급격히 쪘다는 의미의 ‘확찐자’는 약 65%의 응답자가 차별 표현임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의견을 표했다. 그 중엔 해당 표현이 확진자나 비만인에 대한 차별 표현이란 입장도 있었지만 단순한 언어유희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설문 결과 응답자의 대다수가 ‘결정장애’, ‘O밍아웃’, ‘O린이’, ‘확찐자’라는 단어를 일상에서 흔하게 사용하고 있었으며 차별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해당 표현을 일상에서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가 약 47.5%로 가장 많았고 ‘모르겠다’가 약 28.3%, ‘아니다’는 약 24.2%였다.

  ‘그렇다’고 대답한 이유에는 ‘누군가를 차별할 의도는 없어서’가 약 89.5%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당사자도 기분 나빠할 것 같지 않아서’가 약 24.6%로 2위를 차지했다. 일부 응답자는 이를 차별 언어로 규정하는 것이 ‘확대 해석’이고 ‘예민한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아니다’라고 답한 이유에는 ‘누군가를 차별하는 표현이어서’가 약 86.2%로 가장 많았고 ‘당사자가 기분 나빠할 것 같아서’가 2번째로(약 58.6%) 꼽혔다. 한 응답자는 ‘해당 단어들에 대한 담론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다를 순 있지만, 당사자가 거부감을 느낀다면 이를 인정하고 대체어를 찾아보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언어가 사고를 만드니까
  그렇다면 일상 속에 자리한 ‘결정장애, O밍아웃, O린이, 확찐자’ 등의 표현은 정말로 차별적이지 않은 단어일까. 신지영 교수(고려대 국어국문학과)는 발화의 시점과 맥락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친구가 요새 코로나19 때문에 ‘확찐자’가 됐다고 하면 웃어넘길 수 있겠지만, 확진 경험이 있는 사람이 그 농담을 들었다면 불편할 수 있겠죠? 마찬가지로 암에 걸린 사람이 ‘암 걸린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요.” 모든 대화에는 ‘듣는 사람’이 전제돼 있으며 듣는이에 따라 그 공간과 맥락을 바탕으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차별 언어와 같이 타인을 상정하지 않은 발화는 불편함을 넘어 해악을 야기하기도 한다. 『말이 칼이 될 때』(홍성수 씀)에 따르면 혐오 표현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구성원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존 조건을 파괴하며 차별과 폭력의 가능성으로 귀결될 수 있다. 신지영 교수는 그 배경에 일상의 권력 관계가 작동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에는 지배적으로 작동되는 이데올로기가 담겨있어요. 어떤 언어를 사용한다는 건 그 표현에 담긴 이데올로기에 동의함을 의미하죠. 이러한 표현은 과거의 산물이 우리에게 그대로 넘어온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의 언어를 바꿔야 할까요, 현재의 생각을 바꿔야 할까요?”

  그러나 이러한 불편함에 대해 ‘너무 예민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과 함께 ‘표현의 자유를 위축한다’는 반응도 있었다. 이에 대해 신지영 교수는 표현의 자유가 적용되는 범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듣기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는 아니에요. 내 생각을 전달력 있게 전하기 위해 사상의 옳고 그름을 정치적 불이익 없이 말을 할 수 있는 자유가 표현의 자유죠.”

  이어 이런 ‘불편함’ 자체가 과도한 ‘PC주의’ 때문에 발생한다는 반응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PC주의란 인종, 성별, 종교, 성적지향, 장애 등 소수 약자에 대한 편견이 섞인 표현을 지양하자는 정치적, 사회적 운동을 일컫는 말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된 걸까요? 우리는 타인과 사회를 생각하고 성숙해지기 위해 결국 ‘프로불편러’가 되기 위해 공부해야 하죠. ‘PC주의’에 대한 지적 자체는 성립될 수 없어요.”

  불편해서 개편합니다
  일상 속 대화로부터 모두가 상처받지 않는 사회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홍성수 교수는 『말이 칼이 될 때』를 통해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시민사회의 자율적인 해결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선 형사범죄화 등 국가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지영 교수 또한 차별금지법이 「대한민국헌법」의 취지와도 부합한다는 의견이다. “차별을 금지하자는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대한민국임시헌장」 제3조에도 ‘평등’이 명시돼 있죠. 차별을 금지하자는 것은 헌법 정신과도 연관돼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나아가 그는 궁극적으로 언어 감수성 함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언어가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야 해요. 일상적인 것은 감수성을 무디게 만들기 때문에, 언어라는 것에 대해 민감한 태도를 보이는 언어 감수성이 필요하죠.”

  의사소통을 위한 다른 언어가 있음에도 타인을 찌르는 언어를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과일을 썰기 위한 칼에도 누군가의 손가락이 베일 수 있다는 가장 간단한 사실을 우리 서로가 공유한다면. 이 사회는 조금 더 포용적인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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