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도수를 맞춰드립니다’에서는 한 학문에 초점을 맞춰 예술작품을 심도 있게 비평을 진행해왔습니다. 예술작품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시작했던 코너가 오히려 학문·비평의 늪에 빠져 작품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게 하지 않았나 돌아봤는데요. 이번주 문화부에서는 다양한 시대를 아울렀던 피카소의 작품을 잠시 학문 안경을 벗고, 이를 온몸으로 느껴보려고 합니다. 5월 1일부터 8월 29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으로 함께 안경을 던지고 가볼까요?

20세기 미술은 피카소에 의해 시작됐으며 그를 위한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비뇽의 처녀들>(1907)을 시작으로 입체주의의 탄생을 알린 피카소는 르네상스 이래 서양미술 400년의 전통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이를 기리는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에 참여해 그의 작품의 발자취를 따라 거닐어봤다. 

좌측 파블로 피카소 作, ‘인물에 둘러싸여 있는 누드’, 1908, 캔버스에 유채. 우측 파블로 피카소 作, ‘무릎 꿇은 여인 술병’.사진제공=비채아트뮤지엄 ⓒ2021-Sucession Pablo Picasso -SACK (Korea)
좌측 파블로 피카소 作, ‘인물에 둘러싸여 있는 누드’, 1908, 캔버스에 유채.
우측 파블로 피카소 作, ‘무릎 꿇은 여인 술병’.
사진제공=비채아트뮤지엄 ⓒ2021-Sucession Pablo Picasso -SACK (Korea)

  내가 아는 피카소 맞아? 
  연대기별로 작품이 전시돼, 청색·장밋빛·분석적 입체주의 시기 피카소의 작품과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1930년대 그림 간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1901년 자살한 피카소의 친구, ‘카사헤마스’의 죽음에 영향을 받아 청색 시기(1901-1904) 작품은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때 바르셀로나에서 파리로 이주하며 그가 그린 작품에는 극단적인 단색조와 평면화, 길게 늘여진 인체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파라렐로의 콘서트 카페>(1900-1901)는 이러한 청색 시기 피카소 그림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해당 그림은 풍경보다 인물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벽면과 테이블은 흰색인 반면 그림 속 사람들은 이와 대비되는 어두운 단색으로 색칠돼있다. 

  청색 시기 다음으로 등장한 장밋빛 시기(1904-1906) 작품에서는 보다 밝은 색채와 다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림을 주로 그리는데, 누드화를 빼놓을 수가 없다. 해당 시기 직후에 탄생한 <사분의 삼 등이 보이는 여인의 누드>(1907)는 초기 입체주의 작업 직전 탄생한 작품인 만큼 난해하다. 제목이 없었더라면 그림 속 인물이 여성인지 남성인지조차 식별하기 어려웠을 테다. 머리 부분에 튼 똬리로 인해 겨우 여성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선명한 윤곽, 면 중심의 화면 처리를 통해 이 작품은 초기 입체주의 작업을 예고하고 있다. 

좌측 파블로 피카소 作, ‘인물에 둘러싸여 있는 누드’, 1908, 캔버스에 유채. 우측 파블로 피카소 作, ‘무릎 꿇은 여인 술병’.사진제공=비채아트뮤지엄 ⓒ2021-Sucession Pablo Picasso -SACK (Korea)
파블로 피카소 作, ‘만돌린을 든 남자’, 1911, 캔버스에 유채.
사진제공=비채아트뮤지엄 ⓒ2021-Sucession Pablo Picasso -SACK (Korea)

  그간 입체주의에 대한 작품은 많이 접했지만 분석적 입체주의 작품을 볼 기회는 드물었기에 전시된 관련 작품이 더욱 반가웠다. 분석적 입체주의는 1908년에 등장한 개념으로, 피카소의 입체주의 3단계 발전 과정에서 중간 단계에 위치한다. 그림의 대상이 지닌 직감적·시각적 특질을 억제하고 대상을 철저히 해체·분석해 묘사한다는 특징을 지녔다. 전시작 <만돌린을 든 남자>(1911)와 <콧수염이 있는 남자>(1914)가 이에 해당한다. 두 작품 모두 회색·갈색·황토색 등 최소한의 색만을 사용했기에 제목을 참고하지 않으면 인물과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기 어렵다. 특히 <만돌린을 든 남자>는 가로의 2배를 넘는 길이의 세로가 길게 펼쳐진 직사각형 모양 캔버스로 구성돼, 피카소의 다른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양식을 띄고있다. 

  분석적 입체주의에 이르기까지는 여태 접한 적 없는 독특함으로 인해 피카소 작품이라고 느끼지 못했다면, 1920년대에 속하는 작품은 매우 정통적인 회화여서 낯설었다. <피에로 복장의 폴>(1925)을 보는 내내 회화의 정석 같다는 인상을 떨칠 수 없었다. 해당 작품은 피카소와 첫 부인 ‘올가 코클로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폴’의 초상화로 하얀 복장을 한 인물과 배경 간 강한 명암대비를 줬다. 이는 입체주의 시대에 사라졌던 전통회화의 기법을 다시 적용한 것이다. 르누아르의 회화를 떠올릴 정도로 부드러운 인상을 자아내 질서가 잘 잡힌 작품이라고 바라봤다. 

좌측 파블로 피카소 作,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여인’, 1937, 캔버스에 유채. 우측 파블로 피카소 作, ‘마리 테레즈의 초상’, 1937, 캔버스에 유채. 사진제공=비채아트뮤지엄 ⓒ2021-Sucession Pablo Picasso -SACK (Korea
좌측 파블로 피카소 作,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여인’, 1937, 캔버스에 유채.
우측 파블로 피카소 作, ‘마리 테레즈의 초상’, 1937, 캔버스에 유채.
사진제공=비채아트뮤지엄 ⓒ2021-Sucession Pablo Picasso -SACK (Korea)

  새 뮤즈와 함께 맞이한 회화의 변화
  1927년 피카소는 ‘마리 테레즈’라는 새로운 여인을 만난다. 해당 시기를 기점으로 피카소의 그림 속에 기이한 형태의 수수께끼 같은 여인상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때 피카소가 그린 작품이 평소 ‘피카소 작품’ 하면 떠올렸던 느낌과 매우 유사하다. 괴물, 외계인에 가깝게 여인의 형태를 그려내 피카소 특유의 개성적인 입체주의풍이 잘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마리 테레즈를 대상으로 그린 그림 3개가 연속으로 나란히 배치됐다. 젊고 아름다운 마리 테레즈가 <시계를 찬 여인>(1936)에서는 초라한 모습으로 좁은 방에 잠옷 차림으로 쭈그려 앉은 자세로 묘사됐다.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여인>(1937)은 푸른 얼굴빛의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 낙담한 표정의 마리 테레즈를 표현했다. <마리 테레즈의 초상>(1937)은 의자에 편히 앉은 마리 테레즈의 아름다움과 볼륨감을 많은 곡선을 사용해 명암의 대비 없이 색채만으로 담아냈다. 같은 여인을 이토록 다르게 연속으로 그려낸 점을 통해 피카소의 뛰어난 창의성, 표현력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2차례 세계대전을 겪고 난 이후 피카소와 마리 테레즈의 사이는 멀어진다. 피카소는 나치 점령군의 감시 아래 작업에 몰두하게 되는데, 이때 ‘도라 마르’라는 새 여인을 만나게 된다. 전시작 <모자 쓴 여인의 상반신>(1941)은 도라 마르를 대상으로 한 작품이다. 팔걸이를 잡고 있는 오른손의 빨간 매니큐어가 작품 속 여인이 도라 마르임을 암시하는 장치다. 해당 그림은 전쟁으로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신체의 반이나 차지하는 기이한 구조의 얼굴에, 입술과 턱은 마치 얼굴 밖으로 떨어져 나갈 듯이 목 아래로 쳐져 우울감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생기 없는 분위기와는 달리 바로 옆에 전시된 <파란 모자를 쓴 여인의 상반신>(1944)에서는 밝은 노란색을 배경색으로 뒀다. 얼굴에도 볼륨감이 풍부하게 묘사돼 있다는 점에서 피카소가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기원함을 알 수 있다. 

파블로 피카소 作, ‘한국에서의 학살’, 1951, 캔버스에 유채. 사진제공=비채아트뮤지엄 ⓒ2021-Sucession Pablo Picasso -SACK (Korea)
파블로 피카소 作, ‘한국에서의 학살’, 1951, 캔버스에 유채.
사진제공=비채아트뮤지엄 ⓒ2021-Sucession Pablo Picasso -SACK (Korea)

  누가 총을 들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피카소는 2번의 세계대전을 몸소 겪었기에 전쟁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다. 이는 그림에서도 드러나는데, 전시작 <한국에서의 학살>(1951)에서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고발하고 있다. 해당 작품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삼았지만, 총을 겨누는 주체가 어느 국가인지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 대신 사이보그 형태로 이를 묘사했다. 그림이 공개되자, 프랑스 공산당 측은 “살인자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며 피카소의 제작 의도에 항의했다. 하지만 피카소는 총을 든 사람이 어떤 국가 소속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전쟁의 참혹함을 묘사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주장했다. 

  전쟁의 참혹함을 그림으로 묘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그림을 묘사하는 기법도 그중 하나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고야의 <1808년 5월 3일>(1814)의 영향을 받았는데 작품에서 전쟁의 잔혹함을 사실적으로 드러냈다. 추상적으로 전쟁의 잔혹함을 표현한 <한국에서의 학살>과 여타 작품 간 시각적 비교가 바로 가능하도록 전시회 배치가 이뤄졌다. 이를 통해 비극 고발에 있어 목적론적인 비평보다는 보편적인 해석이 중요함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은 보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피카소가 생전 남긴 말이다. 피카소가 생애 140주년을 맞았음에도 아직도 많은 사람이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는 무언가를 특정 짓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가 아닌 자기 생각을 그림에 녹여냈다. 누군가를 위한 사랑, 평화에 대한 갈망은 19세기뿐만 아니라 2021년을 살아가는 모두에게도 공통된 욕망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피카소 200주년이 열리는 그날에도 인류애적인 가치가 담긴 그림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 감히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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