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여 년간 영국·미국에서만 무려 7차례 영화화된 소설이 있다. 스릴 넘치는 액션도, 진땀 나는 추리물도 아닌 그저 한 가족의 평범한 이야기, 바로 『작은 아씨들』(루이자 메이 올컷 씀)다. 이를 각색해 2019년에 제작된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작은 아씨들>은 아카데미 6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는 등 쾌거를 이뤘다. 원작 속 네 자매의 이야기가 영화에 어떻게 녹아들었기에 이토록 사랑받는 걸까. 

  같은 액자, 다른 그림 
  영화 <작은 아씨들>은 1868년 출간된 『작은 아씨들』 합본과 이듬해 쓰인 속편 『굿 와이브즈(Good Wives)』(루이자 메이 올컷 씀)에 등장하는 마치 가의 네 자매 이야기를 한 편에 담았다. 해당 영화는 작가가 되고 싶은 둘째 조의 서사를 중심으로 각각 배우·음악가·화가를 꿈꾸는 메그, 베스, 에이미의 성장 서사를 다루고 있다. 

  전문가는 <작은 아씨들>이 강조하고자 하는 주제를 원작과 달리해 새로운 해석을 도출했다고 평했다. 최은 영화평론가에 의하면 원작은 
주제 의식이 교훈적인 반면, 해당 영화는 개인의 꿈 실현에 초점을 뒀다. “원작은 기독교 서사를 모델로 해 공동체를 위한 희생 등과 같은 고전적인 교훈을 내포하고 있어요. 하지만 영화에서는 교훈적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개인의 욕망과 꿈을 긍정하는 방향을 취하고 있죠.” 

  영화 편집 방식에서도 원작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과거 회상을 보여주는 ‘플래시백’과 미래 시점을 나타내는 영상기법인 ‘플래시포워드’
를 적절히 활용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연대기적 구성을 지닌 원작 속 사건의 시간적 순서를 재배치해 현대적인 감성을 자아낸다. 이에 손정희 교수(영어영문학과)는 해당 기법이 시간대가 다른 장면을 연결해 이해하는 능력을 갖춘 현대의 관객들에게 적합한 연출 방법이라 평가했다. 

  <작은 아씨들>은 당시에도 진보적이었던 원작의 결말을 21세기에 맞게 재해석했다. 원작에서는 조가 지은 학교의 이름을 남편의 성을 딴 ‘베어 아카데미’로 이름 짓지만 영화에서는 고모의 저택 이름에서 비롯한 ‘플럼필드 아카데미’로 한다. 여기서 메그와 에이미는 각각 연기, 미술 선생이 되면서 과거 소망했던 꿈을 간접적으로나마 이뤄낸다. 또 음악가를 꿈꾸던 베스의 빈자리는 조의 남편, 프리드리히가 채운다. 해당 공간에서 원작 속 인물들의 꿈이 모두 실현된 셈이다. 

  더불어 영화 속 플럼필드 아카데미는 더 많은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고자 했었던 원작 작가 올컷 부친의 이상을 조를 통해 실현한 공간이기도 하다. 원작의 베어 아카데미는 당시 교육 대상에서 제외됐던 고아와 ‘쿼드룬(4분의 1 혈통의 흑인)’ 소년도 교육의 대상으로 둔다. 이는 거윅 감독의 손을 거쳐 흑인, 백인, 남과 여 모두를 아우르는 21세기형 유토피아로 거듭났다. 

  성장에서 나아가 성숙을 향해
  <작은 아씨들>은 여성 감독에 의해 그려진 여성 인물에 관한 이야기인 만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도 많은 의의를 지닌다. 최은 영화평론가에 따르면 해당 영화는 21세기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과거 영화가 지닌 한계를 보완한 창조적 각색이 낳은 결과물이다. “1933년과 1949년 영화에서 조는 선머슴같이 센 캐릭터로 묘사됩니다. 반면 거윅의 각색은 이전처럼 소위 ‘여성적인’ 면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결혼에 대한 소망을 강하게 드러낸 메그의 대사를 통해 알 수 있죠. 이는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한 1세대 페미니즘의 관점을 넘어 주체적인 여성성으로 해석한 반증입니다.” 

  현재의 삶에서 주어진 선택지는 과거보다 다양해졌는데, 이는 영화 <작은 아씨들>에도 반영됐다. 손정희 교수에 의하면 영화 속 인물 또한 현대 성장 서사 흐름에 발맞춰 다변화됐다. 조가 중심이었던 원작에서 영화는 더 나아가 네 자매와 주변 인물들을 모두 조명해 여러 인물의 성장 서사를 모두 담아냈기 때문이다. 

  손정희 교수는 현대에 이르러 성장이 완성된다는 개념에 대한 논의도 가능해졌다고 주장했다. “예전에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기의 역할을 할 수 있게 자라는 과정을 성장이라고 봤어요. 하지만 현대 심리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성장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잖아요. 이건 성장이라기보다 성숙의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죠. 또 과거의 선택지일지라도 현재의 나와 연결 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성장 서사는 세대나 나이를 망라하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주제라고 생각해요.” 

  책장 안 먼지 쌓인 옛 이야기도 훌륭하지만, 꾸준히 읽혀 빛바랜 책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는 무한에 가깝다. 희망과 꿈이 넘치는 네 자매의 세상을 새롭게 녹여낼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또 있을 것이다. 앞으로 또 다른 150년, 이 서사는 계속해서 닳고 닳아 반짝이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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