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신문이 요즘 열풍이다. 찍자마자 전 세계로 수출된다고 한다. 코로나19로 포장지가 구하기 어려워진 동남아에서는 한국 신문이 값도 싸고, 기름기도 잘 흡수해 좋다는 게 현지 평이다. 읽으라고 만든 신문이 바나나 포장지로 전락하기까지 이어진 종이신문의 위기는 진작 오래됐다.  

  종이신문 위기는 저널리즘 위기로 이어진다. 신문을 읽는 사람이 없음에도 총매출액이 유지 되는데, 이는 바로 광고·협찬이 신문업계의 주 수익원에 있기 때문이다. 언론진흥재단의 <2019 한국의 언론인 조사>에 따르면 언론인 68.4%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언론의 자유를 직·간접적으로 제한하는 요인’으로 광고주를 1위로 꼽기도 했다. 

  기자에게 전통 매체인 종이신문의 위기란 생존권과 직결되기에 저널리즘을 차순위에 두는 행위는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광고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기자가 펜을 잡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으며, 인터넷 신문을 주로 사용하는 독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조회 수를 늘려야만 하는 게 현실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일단 저널리즘의 원칙은 광고를 내고 ‘어그로’를 끌고 난 이후에 생각해볼 문제인 셈이다.  

  그렇다면 생존권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학보사 중 하나인 중대신문은 진정한 저널리즘을 실현하고 있을까. 기자는 부끄럽다. 이번학기 에브리타임에서 중대신문 불만 글이 단기간에 많은 학우들의 공감을 받은 바 있다. 윤리에 어긋난 취재 과정을 거친 인터뷰가 여럿 존재했기 때문이다. 오보 기사도 일부 존재했으며, 기획 의도를 알 수 없는 기사가 더러 담기기도 했다. 기자의 기사를 포함해 제목은 거창하지만 읽어보면 내용은 제목과 관련 없는 ‘어그로성’ 기사도 꽤 됐다. 

  나에게 우선 묻고 싶다.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가. 취재원에게 떳떳한가. 해당 사람의 멘트만 인용해 작성해도 괜찮은 것인가. 녹취록 중 이 부분만 발췌해도 취재원 의도에 맞게 전달이 되는 걸까. 기사가 재밌어도 취재 과정에서 누군가 상처받았다면 이는 좋은 기사인가.  

  삭막한 저널리즘 시대에서 학보사의 가치는 진정한 저널리즘을 함께 찾아 나가는 과정에 있다. 일련의 과정 끝에 다져진 올바른 언론, 글, 취재의 틀을 기억해내는 데 그 무엇보다 의의를 둬야 한다. 

  진정한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함께 모색하는 방법은 단연 내부 구성원 간 ‘소통’이다. 올바른 저널리즘은 딱 무엇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에 당장 어디서부터 어떤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막막할 수 있다. 하지만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윤곽이 조금씩 잡히지 않을까. 신문을 만드는 목적, 주 타겟층 독자는 누구인지, 제일 우선순위로 둬야 하는 보도윤리는 무엇인지 등부터 통일하고자 소통의 장을 정기적으로 마련하며 말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맥주 깔개로 중대신문을 가져간다고 해도 펜을 내려놔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기에.  

김유진 문화부장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