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批評). 사물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를 분석해 가치를 논함을 일컫습니다. 정의만 들으면 비평은 학문에 큰 뜻이 있는 전문가들만의 전유물일 것 같은데요. 여러분들도 얼마든지 비평가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비평, 구조주의에서부터 같이 시작해볼까요? 김유진 기자 kyj8976@cauon.net 

차이로 규정되는 정의 
기호 범위, 언어에서 문화로 확장돼

인간의 의식을 체계의 산물로 바라봐 
명확한 과학적 방법론 제시해

“비록 오늘날에는 구조주의 방법론이 여러 가지 한계로 인해 영향력을 잃었지만, 구조주의가 보여준 과학성의 추구와 순수 차이의 존재론은 여전한 현재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개가 개인 이유는 고양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말이 당신을 난감하게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놀랍게도 여기에 함축된 개념은 프랑스 현대 사상사에 큰 획을 긋는 이론을 낳는다. 바로 ‘구조주의’다. 구조주의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유행으로 지식인의 장에 큰길을 열었다. 다음을 읽는다면 개가 개인 이유를 고양이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까닭과 구조주의 간의 관계성을 알 수 있을 테다.  

  구조주의는 특정한 학문 분야라기 보다 하나의 연구 방법론으로, 언어학·인류학·사회학·심리학 등에 활용돼 왔다. 구조주의 방법론의 시작은 19세기 스위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출발한다. 사실 소쉬르가 ‘구조’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고 그가 정립한 ‘체계’라는 개념이 이후에 구조의 역할을 하게 됐다. 제네바에서 소쉬르가 했던 <일반언어학강의>의 강의록이 그가 죽은 뒤 20세기 초에 출간돼 구조주의의 기원으로 뒤늦게 재발견된 셈이다.

  소쉬르의 언어학과 더불어 은유와 환유 개념을 이용했던 ‘로만 야콥슨’의 언어학 역시 구조주의의 중핵으로 여겨진다. 문학비평가 ‘롤랑 바르트’,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 등 많은 학자가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도출된 원리를 다양한 영역에 적용하면서 구조주의는 오늘날의 모습을 갖췄다. 

  소쉬르에 따르면 언어 기호는 ‘기표(시니피앙, signifiant)’와 ‘기의(시니피에, signifie)’라는 두 개의 층위로 나뉜다. 기표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 내지 ‘표시하는 것’을 뜻한다. 기의란 ‘기표를 통해 나타나는 의미’ 혹은 ‘표시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때 기의는 기표 간 차이를 통해 드러나게 된다. 이찬웅 교수(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는 소쉬르의 언어학이 구조주의의 기원이 된 이유를 소쉬르가 기호 사이 관계에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쉬르는 기호의 가치가 기호 간 차이, 대립, 관계에서 나온다고 설명했어요. 바로 이 점이 소쉬르가 구조주의의 이론적 원천이 된 이유죠.” 예를 들어 ‘빨강’이라는 음성이나 문자는 기표에 해당한다. 그런데 신호등에서 ‘빨강’이라는 기표가 ‘파랑’이라는 기표와 함께 있으면 ‘정지’라는 뜻의 기의를 갖게 된다. 이처럼 언어가 객관적 실체나 인간 의식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언어 자신만의 고유한 법칙과 원리를 가진다는 생각이 소쉬르 언어학의 요점이다.

  바르트는 소쉬르의 기표, 기의를 ‘1차적 의미’, ‘2차적 의미’ 개념으로 확장하는 동시에 기호의 범위를 언어에서 문화로 넓혔다. 1차적 의미란 글자가 명시적으로 나타내는 뜻으로, 기표와 기의를 합친 기호가 이에 해당한다. 2차적 의미는 1차적 의미가 지니는 또 다른 사회적 의미를 말한다. 여기서 글을 읽는 수용자의 감정이나 평가가 반영된다.  

  가령 제국주의 시대에 한 흑인 병사가 프랑스식 경례를 하는 사진이 있다고 해보자. ‘프랑스 제복을 입은 흑인’은 기호가, ‘그가 프랑스 국기 아래 약속한 충성심’은 기의가 된다. 이 둘이 합쳐진 하나의 기호 ‘프랑스식 경례를 하는 흑인 병사’가 1차적 의미가 된다. 이때 ‘인종에 관계없이 프랑스 군 복무를 할 수 있다’가 2차적 의미가 될 수 있다. 과거 식민지 출신의 흑인 병사가 프랑스에 봉사하는 열정이 담긴 사진을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적 통념을 바탕으로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의견을 무력화시킨다고까지 해석 가능하다. 이러한 1·2차적 의미가 혼합됐을 때 해당 사진은 그 당시에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구조주의는 어떤 대상을 그 자체만으로 파악할 수 없고 대상을 포함하는 큰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구조주의는 대상의 내부가 아니라 대상 간의 관계에서 규정이나 가치가 발생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는 인간의 의식이 인식과 실천의 능동적 주체라는 근대 철학의 공리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역할을 했다. 인간이 스스로 무엇을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화된 인류학적 규범이나 계급처럼 의식 바깥에 있는 구조의 산물일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구조주의는 자연과학에 버금갈 정도로 표준화된 연구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특징을 갖는다. 야콥슨, 레비 스트로스, 바르트 등의 연구에서 수학에 가까운 수준의 엄밀한 구조 분석이 등장한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주재형 교수(단국대 철학과)는 구조주의가 새로운 철학적 관점과 객관적인 방법론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구조주의는 인간의 의식마저 구조의 산물로 바라봤어요. 이는 중대한 철학적 관점의 전환을 함축하죠. 인문학에서 명확한 과학적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사실 역시 학문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집니다.” 

  구조주의 비평은 작품의 구조를 해명하는데 목표를 둔 비평론이다. 이 관점에서 작품의 본질은 작가의 의도나 수용자의 감상이 아닌 작품의 고유한 구조에 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에 따르면 구조주의 비평을 할 때 가장 유의할 부분은 A를 B로 치환시키고 해석하는 도식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 속 요소는 모두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이를 단선적인 해석의 틀에 넣는 순간 비평은 풍부한 함의를 상실할 수 있다. 

페르디낭 드 소쉬르, 롤랑 바르트,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구조주의 발전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페르디낭 드 소쉬르, 롤랑 바르트,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구조주의 발전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구조주의 비평은 다층적 의미를 지닌 메타포의 요소를 살려 진행할 때 의의가 크다. 가령 기생충 속 ‘냄새’, ‘선’처럼 말이다. 일러스트 출처 아트 디렉터 ANDREW BANNISTER
구조주의 비평은 다층적 의미를 지닌 메타포의 요소를 살려 진행할 때 의의가 크다. 가령 <기생충> 속 ‘냄새’, ‘선’처럼 말이다. 일러스트 출처 아트 디렉터 ANDREW BANNI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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