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정한 생활 모습이나 행동을 뜻하는 말입니다. ‘전통’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렸을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낯설고 어렴풋한 단어로 느껴지진 않나요. 전통에 대한 막연함을 생활면이 바꿔 드립니다. 다가오는 5월 19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 직접 화계사에 방문했습니다. 참된 나를 찾아 떠났던 템플스테이의 여정으로 지금 가볼까요! 서민희 기자 tjalsgml0928@cauon.net
 

화계사 대웅전 모습. 대웅전의 내부천장 및 건축 부재 장식은 조선 후기의 양식을 보여준다. 1986년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65호로 지정됐다.
화계사 대웅전 모습. 대웅전의 내부천장 및 건축 부재 장식은 조선 후기의 양식을 보여준다. 1986년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65호로 지정됐다.

"꽃은 꽃대로 아름다울 뿐이에요. 꽃이 나를 어떻게 해주지 않죠. 내가 꽃을 보면서 기쁠 뿐이에요. 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그 사실을 안다면 밖의 것을 가지고 괴로워할 필요가 없죠.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행복이 될 수도, 불행이 될 수도 있어요. 이게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랍니다." -명현 스님

화계사에서 보내는 하루는 어떨지 부푼 기대를 안고 북한산 자락으로 향한다. 화계사는 서울 시내에 인접한 도심 사찰이면서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어 이채롭다. 화계역에 내려 밖으로 걸어 나오니 질서정연하게 쭉 걸려있는 연등이 시선을 잡아끈다.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해 걸린 연등이 화계사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한다.

  부처의 세상을 만나다  
  절 어귀쯤에 우뚝 솟은 일주문이 보인다. 이 문을 경계로 세속과 구분된다고 하니 들어서는 순간부터 마음가짐이 경건해진다. 일주문을 통과해 조금만 더 걷다 보면 국제선 문화체험관이 나온다. 템플스테이 숙소가 바로 이곳에 위치한다. 방 배정이 끝난 후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된다. 다른 체험객들은 어떤 이유로 절을 찾았을까? 서민주씨(25)는 잡념을 멈추고 싶어 절을 찾았다고 말했다. “퇴사한 후 밤낮이 바뀌었어요. 밤에 누워있으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니까 힘들었죠.” 갈아입고 나온 수련복은 무척이나 편하다. 조끼 단추를 채워야 한다는 말에 황급히 단추를 채운다. 절에서는 깨끗하고 단정한 복장을 유지하며 지나친 화장품과 향수의 사용은 삼가야 한다. 이렇듯 절에서는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이 있는데 이를 ‘청규’라 부른다. 청규에는 복장 예절, 합장과 반배, 공양 등 다양한 내용이 있다.

  저녁예불 시간에 진행할 108배를 대비해 절하는 방법을 자세히 배운다. 큰절은 이마와 양 팔꿈치, 양 무릎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을 바닥에 대는데 이를 오체투지라고 한다. 설명만 들었을 때 느껴졌던 막연함이 몸소 삼배를 체험하면서 해소된다. 먼저 양발을 나란히 붙인 채로 합장과 반배를 한다. 합장한 채 몸을 숙여 무릎을 꿇고 바닥을 짚는다. 이때 이마와 팔꿈치, 무릎이 닿도록 절하고 엉덩이는 발꿈치에 바짝 붙인다. 이 상태에서 손을 뒤집어 귀에 닿을 만큼 올렸다가 다시 뒤집어 바닥을 짚고 무릎을 동시에 세우면서 합장해 일어나면 된다. 절은 엎드렸다 일어나는 단순한 동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면 섬세한 움직임으로 구성됐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사찰 소개가 이어진다. 화계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건물과 법당의 역사 이야기를 듣는다. 화계사는 고려 광종 때인 10세기 중엽, 국사를 지낸 탄문대사가 부허동에  세운 보덕암(普德庵)에서 시작됐다. 이후 조선 중종 때인 1522년 신월선사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짓고 화계사(華溪寺)라는 이름을 붙였다. 화계사의 대웅전은 1870년 흥선대원군의 지원을 받아 보수됐다. 대웅전은 부처님을 본존불로 모시는 공간이다. 화계사의 대웅전에는 부처님의 일생을 표현한 ‘팔상성도’ 벽화가 그려져 있다. 8개의 각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그림책을 읽는 듯 생동감 넘치는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주요 장면이 부처님의 일생을 효과적으로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사찰의 규칙, 건물을 익히면서 제법 화계사 속에 녹아든 기분이다. 

  화계사를 품은 북한산을 오를 시간이다. 목적지는 마당 바위.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종이 한 장을 들고 길을 나선다. 낯선 길에서 잠시 방향을 잃기도 하지만 동행자들과 머리를 맞대 마당 바위에 오른다. 처음 온 숲길을 헤치고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과정이 벅찬 성취감을 선사한다. 마당 바위에서 서울 시내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나의 일상이 살아 숨 쉬는 도시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니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하다.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이 멈춤 속에서 가만히 내면을 응시해본다.

  등산을 하고 나니 허기가 진다. 저녁 공양을 하러 대적광전 1층의 공양간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절에서는 술이나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고기 없는 식단이지만 버섯구이부터 단호박 찜까지 먹음직스러운 음식으로 가득하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숨을 고르다가 타종체험을 하기 위해 범종각으로 향한다. 타종은 의식의 시작을 알리는 등의 목적으로 새벽과 저녁에 치러지고 새벽에는 28번, 저녁에는 33번씩 종을 친다. 범종각의 대종에는 종을 매다는 부분에 포뢰라는 용이 1마리 있다. 명현 스님은 용왕의 아들인 포뢰는 겁이 많아 큰 고래가 나타나면 무서워 소리를 낸다고 이야기했다. “고래 모양의 추를 매달아 종을 울리는데 이 울림을 포뢰의 울음소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직접 종을 쳐보니 종소리와 함께 몸이 찌르르 울린다. 가슴 깊숙한 곳까지 종의 떨림이 스며들어 몸과 정신이 공명한다.

  타종체험과 곧바로 이어진 저녁예불 시간에는 연습했던 108배를 진행해 본다. 절을 1번 할 때마다 염주 알을 하나씩 꿰며 준비된 108가지 문장을 차례대로 되새긴다. 이 과정의 반복 속에 흘린 구슬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하다. 강지희씨(27)는 108배가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바로 잠에 곯아떨어질 만큼 힘들지만 확실히 보람있어요.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아요.” 

  회자정리 거자필반 
  밤 9시부터는 취침 시간이다. 새벽에 간신히 잠드는 평소 습관을 생각해보면 매우 이른 시간이지만 온종일 몸과 마음에 여러 자극을 준 덕인지 잠이 솔솔 찾아온다. 새벽예불에 가기 위해 맞춰놓은 알람을 듣고 몸을 일으킨다. 비몽사몽 법당으로 걸어가는 길, 새벽 타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산뜻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아 잠을 쫓는다. 고요하게 잠든 깊은 밤중에 혼자 깨어난 기분이었는데 법당에는 이미 수많은 스님과 신도들이 예불을 드리는 중이다. 새벽예불을 드리며 경건한 마음가짐이 차오른다.

  아침 공양까지 남는 시간 동안 방안에 준비된 다기를 이용해 직접 녹차를 우려서 마셔보기로 한다. 우선 물을 끓여 다기를 데우고 헹군다. 끓인 물을 숙우에 부은 후 녹차에 알맞은 온도인 60~70℃로 식힌다. 다관에 찻잎을 넣고 숙우의 식힌 물을 부은 다음 30초에서 1분 정도 우린다. 차를 입안에 머금어 굴리듯이 음미해본다. 순수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이후 찻잎을 문질러 찻잔를 씻고 뜨거운 물을 부어 행군다. 다도 과정이 꽤 번거롭지만 차에 오롯이 집중해 잡념을 떨칠 수 있다. 정성껏 우린 차가 입을 타고 속으로 흘러들면서 몸 안이 따뜻하게 데워지고 마음도 덩달아 개운해진다. 정갈한 마음으로 맞이해서인지 아침 공양이 유독 맛깔나게 느껴진다. 

  벌써 화계사에서의 마지막 일정인 스님과의 차담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를 끝으로 템플스테이가 마무리된다는 아쉬움이 남아 재방문을 다짐한다. 다음 템플스테이는 어떤 방식으로 임해야 좋을지 고민이 된다.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기회는 흔치 않기에 고민을 스님께 직접 질문해본다. 명현 스님은 템플스테이에서 다양한 체험에 참여해보기를 추천했다. “왜 이런 체험을 하나,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수 있어요. 현재 이 순간에 집중함으로써 자신의 망상과 번뇌를 조금씩 끊어낸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죠. 일상에 돌아갔을 때 의미가 있도록 자신의 생활과 삶을 깊이 사색해 스스로 변화시키면 좋겠어요.” 스님과의 차담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절에서 보낸 하루는 일상에 돌아가면 금세 잊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하루 동안의 경험 속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은 내 삶 속에 진한 향기로 남아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마당 바위에서 내려다본 서울 전경.
마당 바위에서 내려다본 서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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