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학술정보원에 희망도서 13권을 신청했다. 그중 6권은 처리상태 선정 불가로, ‘취소-만화자료(카툰류, 드라마, 그래픽 등)’라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20세기 소년』, 『그래픽 노블로 읽는 에드가 앨런 포 단편선』, 『사랑의 바다』... 모두 만화였다. 

  어린 시절 유독 만화에 푹 빠졌던 시기가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그대를 사랑합니다』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호상’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두고 호상이라 말하는 이들에게 ‘노인네가 오래 살다 죽으면 다 호상이냐’며 화를 내던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한 건지, 죽음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였던 건지. 만화의 줄거리는 흐릿한데도 그 장면은 유독 선명하게 남아있다. 예기치 않은 삶의 순간마다 그 ‘호상’이 떠오르면서 이 만화는 나의 일부분으로 녹아 들어갔다.

  독서는 책과 독자 사이의 상호작용이자 당시의 상황, 감정 등 여러 변수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떤 책이 어떤 영향을 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책에 대해 이뤄지는 공적 차원의 선별과 배제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요소를 다룬 책도 간행물윤리위원회의 기준에 따라 적절함이 인정되면 큰 무리 없이 도서관 서가에 놓인다. 그런데 왜 만화는 서가에 놓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까?

  학술정보원 희망도서 구입제한 목록에는 ‘만화/카툰류 (단, 교양/시사/학문적인 만화는 예외로 선정 가능)’ 라는 항목이 있다. 기본적으로 만화는 구입할 수 없으며, 교양이나 학문적인 가치를 입증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엄밀한 기준을 통해 대학의 특성에 맞는 도서를 갖추는 것 역시 대학도서관의 역할이다. 그러나 ‘도서관자료의 기준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범위에서 학칙으로 정한다’는 「대학도서관진흥법」 제12조 2항에 따라 관련 「대통령령」과 중앙대 학칙을 살펴봤을 때 특별히 만화를 규제하는 조항은 없었다. 그럼에도 만화책이 구매제한 목록에 선정된 것은 만화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따른 조치로 보인다.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거지’라는 말은 후진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마련이지만, 여전히 만화는 그 가치를 증명해내야 한다.

  웹툰 시장이 성장하고, 만화 소비가 늘면서 만화는 우리 삶에 깊게 침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계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가 교양도서보다 만화를 좋아할 때 자연스레 생기는 아쉬움과 공부에 소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 예다. 만화에 대한 가치 판단 기준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공적 기관에서 만화 규제 기준을 마련해 놓은 것은 특정 가치에 대한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만화를 희망도서로 신청하려고 한다. 만화가 사랑받진 않더라도 다른 책들과 같은 취급을 받길 바라며.

이혜정 뉴미디어부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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